지워졌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

by 쓴쓴

어린 시절이 다사다난하지 않은 사람 찾기 어렵다. 그래서 자아성찰까진 아니어도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면 본인도 몰랐던 기억들을 알게 되는데, 가끔 좀 외롭고 속상한 것이 있어서 살아온 날들이 기적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내가 죽음 이후의 기억들에 관하여서 재밌는 믿음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잊어버렸거나 관심을 쏟지 못해 넘겨버린 경험의 순간들은 어떻게 기록될까, 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컴퓨터를 배우면서 느낀 저장의 중요성 때문에 그랬던 걸까. 사건과 사건 사이에 무언가 나타나지 않아도 매끄럽게 연결시키고 마는 기억 체계의 결핍에 집착을 했다. 그리고 그 집착은 사후세계로 이어졌다.

당시 나는 죽음에 관하여 관심이 많았는데, 기억 사이에도 단절이 있듯이 잠깐의 끊어짐 뒤에 삶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의 시작과 단 한 번의 끝.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고 다음이 있다는 믿음. 삶의 터전이 어디가 되든 이곳보다는 나은 곳일 거라 추측했다. 그러자면 두 개의 간단한 조건이 필요했는데 첫째, 내가 그곳이 더 나은 장소라는 것을 알려면 나의 기억은 유지가 되어야 했고 둘째, 더 나은 장소가 되려면 기존의 기억은 보완되어서 완벽에 가까워져야 했다. 이렇게 되면 당연하게도 사후세계는 기억저장소의 역할도 하게 되어서, 그곳에서 기억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이후 희망했던 구체적인 모습들은 조금 사소하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일들은 침대 옆 탁자 위 액자 안에 사진으로 보관되어 있다든지, 감탄을 자아냈던 풍경들은 시간별로 사진첩에 보관이 되어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삶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촬영을 해두어서 언제든 알고 싶은 시공간을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신경 쓸 수 없는 영역의 기억에 관한 걱정거리는 처리될 수 있었다. 신적인 존재가 나의 모습 전부를 모든 각도에서 영원히 남겨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픔, 그리움, 외로움, 기쁨, 사랑, 애정, 환희 모두를 다 기억해내고 싶었고, 그래서 내 역할이 중요하다 여겼다. 혹시라도 빼먹어선 안 되고 훗날 못 알아채도 안 되었다. 색채가 어떠하든 소중한 것이라면 기억해야 한다는 신념이 마음 한가운데 꽤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고, 남겨질 기억들의 책임은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탓도 있었다. 사실 기억하는 일은 나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남들이 사소하다고 치부하는 조그만 것까지 마음에 품고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이 어린 나의 자랑이었고 혼자 간직했던 뿌듯함이었다.




나이를 먹고 대학을 다니면서 오래 지속했던 만성화된 뿌듯함은 송두리째 날아가버리기 시작했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는 과학 잡지를 보고 나서였는데, 아직도 그 순간의 감정이 떠오른다. 호기심, 비웃음, 깔봄, 놀람, 부정, 당혹. 대략 이 순서였던 것 같다. 이제야 이런 회고도 그리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심리적 현상이 별로 놀랍지 않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나는 열병을 앓는 것처럼 줄곧 힘들어했다.

기억은 곧 나라는 믿음을 소유하던 인물은 기억이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해석에 가깝다는 현상을 마주하면서, 이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나의 과거를 반추하는 만큼이나 상대의 판단과 감정을 골라서 받아들였다. 지금의 너는 조금 후의 너와는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물론 그런 이유로 나의 연속성이 생각보다 허상에 지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얼룩져 있는 유년 시절의 사건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현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인정하게 되기도 했다. 괴롭힘에 대하여 분노하고 괴로워하고, 그런 이유로 사회적 태도를 보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어릴 때의 경험을 껴안는 행위라면, 내게 더 어울리는 색채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더 자주 칠해보는 게 다양한 경우의 현재를 펼쳐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과거에 형성되었던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추론은 당연한 것이었다. 과거의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워지거나 무언가에 덧입혀져서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게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기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오늘 발견한 아름다운 색깔이 있다면 어떻게든 옮겨놓아야 했다. 사라지고 싶지 않은 욕망이었을까. 자기애가 강한 걸까. 이 세상을 경험한 마음의 셀 수 없는 면면들을 다 기억해내고 싶었다. 그러자면 기록이 답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 사람은 다시 아프고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소중했다고 여긴 것에 배신당하기도 하고, 관계에 속아서 착취당하기도 하는 경우를 만난다. 너무 어려울 때 사람은 기록할 수 없고 기억을 하기 싫어서, 스스로 생각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우울을 알아왔던 특정 기간의 기억은 휘발되었다. 놀랍게도 당시에는 내가 모든 사건을 월 단위로 기억했었다는 사실만 떠오를 뿐이고, 달이 지나며 쌓인 일련의 사건들의 여파가 당시의 모든 세부사항을 드러내듯 사라지게 했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기록할 수 없었고, 기억해내기 어려운 어느 기간의 나는 사라진 셈이 되었다. 자신을 남기는 일에 집착하던 이전을 생각해보면, 분명 나는 지금 애도의 곡을 불러야 마땅하겠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은 내가 왜 스스로를 남기는 행위에 매달렸는 가다.




남긴다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읽어주고 떠올려주기를 바라는 목적 지향적인 행동이다. 비석을 세우고 글자를 새기듯이 펜을 들어 내 시선을 남기는 것은 분명한 욕구를 반영한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까. 사후세계를 생각하면서까지 기억의 고리를 연결 짓고 싶었던 어린이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인간의 기억이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상치 못한 문제들로 일부 데이터가 유실되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기록하려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지 스스로도 파악하기 어렵다.




지워졌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자주 되뇌는 문장이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말이긴 하지만, 이 문장의 주어는 따로 있다. 나. 나라고 지칭되는 모든 것들이 이 말의 주어다. 이 문장을 만들고 난지 한참이 지난 요즘이 돼서야, 어린 시절에 떠올랐던 욕망이 타인에게까지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