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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쓴 Aug 18. 2020

말과 글 사이에서

충분히 취하고 싶은 것

술을 얼마나 못 마시냐면, 맥주 한 모금에도 얼굴이 빨개지고 반 캔에도 머리가 아프다. 맛있다고 느끼는 것도 순간에 가까워서 두 모금이면 다행이다.

지금은 조금 변했지만, 술을 마시지 못하면 대학생 취급을 하지 않던 시절에 대학에 입학했던 나에게 술은 오랫동안 호기심이나 동경보다 외면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잘' 마신다던 이들은 언제나 책임지지 못하는 말로 사건을 일으켰고, 술을 핑계로 상대의 육체를 만졌으며 원치 않는 '친구 먹기'를 강요했다. 개인의 영역을 중요시 여겼던 나라서 더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정신이 맑을 때 친구를 맺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맑게 생각을 나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느슨한 연대라는 것, 그것을 좀 해볼 수 있을까 갈급해하던 이 년 전쯤에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덕분에 독서모임에서 사람을 만나고 좀 더 맑은 정신에서 생각을 나누다가, 좀 덜 맑은 정신으로 기꺼이 함께 들어가는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부터 다시 술을 마셨다. 여전히 맥주 한 캔의 사 분의 일만 겨우 마시지만.




독서의 영역이 넓어졌던 때를 떠올린다. 고전으로 대표되는 소설에 아직 마음을 주지 못했을 때, 아마도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던 친구에게서 이야기의 매력을 배웠다.

아마도 나는 좋아했던 것 같은데, 밖으로 향하는 감정에 관하여서는 문외한이었던 시절이어서 그 친구의 표현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제나 도망쳤고 움츠렸던 게 다였다.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 무섭다던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빌려주기로 한 기한이 지났는데도 왜 돌려주지 않을까 궁금해했던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에 서툴렀던 게 분명했다.

결국 돌려달라고 싸우다 책은 찢어졌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나도 무서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인데, 분해되기 직전이 되어버린 책을 억지로 읽었다. 같이 느끼고 싶어서 힘겹게 감정을 쥐어짜 봤지만, 나에겐 슬픔 말고는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책에서 느낀 최초의 감정이입이다.

고마웠다. 더 넓은 취향의 독서를 취미로 만들었던 계기가 친구 덕분이어서. 본인의 지금을 만들어내는 일부분에 타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항상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고마운 이가 있다는 사실은 즐겁다.


말이 길어졌다.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 중요한 것을 놓칠 뻔했다. 독서모임에 이어서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볼까 한다. 말이라면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아파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이라면 마음껏 취하고 싶은 마음들을 모아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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