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고맙게도 먼저 연락을 주었다.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성격에 궁금해도 먼저 묻지 못하는데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가 있어 감사할 일이다. 친구를 만나니 마음도 편해진다. 누가 뭐라 말할 필요도 없이 어느새 같이 걷고 있다. 답답한 요즘 사는 이야기를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끊임없이 토해낸다.
정신없이 떠들어대다가 대화에서 맡았던 각자의 역할이 몇 달 새 바뀐 것 같았다. 이전에 먼저 묻고 질문하던 내 역할을 친구가 받았다. 계속 경청해주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고마웠다. 그리고 받아주는 친구의 모습에 괜히 뿌듯하다. 이런 친구가 나에게 있다니 하고 말이다.
한 끼 식사를 함께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비슷한 방향이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아 함께 걷는 길이 가볍다.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가 대화 중에 담겨도 심각한 단어는 없다. 의도치 않았지만 친구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 거 아닌 일에도 크게 웃는다. 밤이 만들어낸 감성 일지 모르겠지만 중간의 침묵들에도 괜스레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인다.
갈림길. 소탈한 인사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걸어간다. 발걸음이 마음만큼이나 느려진다. 흔들린 사진의 초점처럼 흐린 눈빛은 희미한 정신 때문이 아니다. 괜찮다고 말해주던 친구, 그리고 잘 되길 바란다고 응원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보고 걷는 이 길 구석구석이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