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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온도, 괜찮나요?

반사하고 싶은 당신의 말

by 이너프

사람의 말에는 온도가 있다.

남이 내뱉은 차가운 말에 계속 노출되면,

이로움과 해로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감정의 온도까지 잃게 된다.


특히 상하 관계가 명확한 직장에서는 더 그랬다.

막내 작가 시절, 무섭기로 소문난

예능 프로그램의 선배들 밑에서 혹한기를 보냈다.

지금은 효율성을 위해 선배에게 보도 자료나

대본을 파일로 전달하면 되지만

라테 시절에는 프린트해서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타와 비문은 없는지 10번 이상 검토하고

수정해 A4용지 두 장 짜리 보도 자료를

선배의 손에 직접 건넸다.


”언니, 시간 되세요? 보도 자료 드려요. “

”빨리도 썼다. 왜 방송 다 끝나고 주지 그래? “

”죄송합니다 “


뾰족한 그녀의 말 한마디에

피부가 따끔따끔하다.

작은 책꽂이 건너편에 앉은

그녀의 눈동자를 따라 내 눈도 바삐 움직인다.


‘아직 도입부를 읽고 있구나.’


글 쓸 때보다 더 긴장되는 시간이다.

그녀의 입에서 원고를 뚫은 만큼의

깊은 한숨만 새어 나왔다.


”막내 작가를 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

넌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긴 한숨)

너 그래서 서브 작가로 올라갈 수 있겠어?”

처음에는 경각심을 가지라는 뜻에서

선배가 일부러 더 화내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말의 가시로 깎아낸 그녀의 얼음 화살은

잘 숨겨놓았던 내 마지막 자존감까지

아내 관통했다.


“이러니 근본 없이 배웠다는 소리 듣지.

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냐?”


선배의 손에서 원고도, 나도 갈기갈기 찢겼다.

그녀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감정에 독을 넣어 나를 무능력하고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너무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나 싶으면

사람들 앞에서는 내 칭찬을 하며

후배 잘 챙기는 좋은 선배라는 것을 증명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툭툭 뱉은

말들의 씨앗은 내 가슴에 콕콕 박혀

다양한 감정으로 자라났다.


나쁜 x. 잠수. 퇴사. 보복.


그때 내가 할 수 있던 건

가장 나쁜 상상의 싹을 틔우는 것이었다.

일의 결과물이 곧 ‘나’인 것만 같았기에

선배의 말에 매번 KO 당하곤 했다.


말 한마디로 사람 전체를 부정하는 걸까?


지금 같았으면 선배에게

때려치우겠다고 했을 텐데....

당시에는 6개월밖에 못 버틴 막내 작가를

누가 받아 줄지 걱정이 앞서

버텨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배와 함께하던

프로그램이 조기종영되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새 프로그램에서 만난 선배들의 태도와 말이

주눅으로 얼어있던 나를 녹여줬다.

혼내는 방식도 달랐다.


선 칭찬, 후 피드백


그 순서 하나로,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에 대한 것만 혼낸다는 것이다.

새로 만난 선배들에게 아무리 살벌한 피드백을

들어도 ‘나의 온도’는 유지할 수 있었고

조언을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서브 작가가 될 수 있겠냐고 걱정했던 나는

어느덧 메인 작가가 되었다.

시집살이당한 며느리가 자신의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군다고.... 나도 혹여 조언이랍시고

독을 숨겨서 말하지는 않았을까 조심히 돌아본다.

내가 깨닫지 못할 뿐, 간혹 그 선배의 얼굴이

되어 있었을 거다.


그녀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후배에게 조언할 때 지키는 규칙이 생겼다는 거다.


“따뜻하게 말하지 못할망정,

차가운 감정은 배제하자!”


말과 말 사이에 쉬는 긴 한숨조차

폭력이 될 쉬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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