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선택] 오늘도 운동 가기 싫은 나에게
해야 할 일들을 매일 양팔 저울의 접시에
올린다. 늘 기우는 접시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차지한다. 급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엔 “발등에 불이야”를
외치며 울면서 하곤 한다.
반복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지금의 나’에게 질문하기.
“가장 당장 중요한 게 뭐야?
정신 차려!!! 지금 해”
어떨 땐 너무 혼잣말로 중얼거려서
옆에 있던 사람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
적도 있다. 이렇게 빨리 처리해야 하고,
중요도를 나눠서 해야 할 일을 끝내면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
투 두 리스트에 꼴찌로 남아있다.
나에게 그런 일이 바로 '운동'이다.
20대엔 다이어트한다고, 30대엔 오랫동안
일 하고 싶어 체력을 기르려고 했던 운동이
40대 접어들면서 목적 자체가 달라졌다.
살기 위해서다. 아니,
죽기 싫어서다. 너무 극단적인가?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부족해져서
골절과 수명에도 영향을 준다”
수많은 의사와 무시무시한 논문이 운동의
중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너무나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결심과
다르게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1주일에 한두 번 PT 가는 게 운동 끝이다.
자본주의를 투입시켜 강제성을 추가했지만
운동의 참맛은 제대로 못 느끼고 있다.
또, 며칠 운동을 빼먹는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한 달 전, 산책하다가 구경이라도 할 겸
구민체육관에 들어갔다가 덜컥 요가 수업을
신청하고 왔다. (실천은 주로 충동적이다.)
'신청한 김에 열심히 해 보지 뭐....
생존을 위해 활동량이라도 늘려보자! '
첫 수업이라 선생님의 자세가 잘 보이는
앞줄에 서고 싶어서 여유 있게 도착했다.
그런데 첫 줄은 이미 70대 할머니들이
점령했다. 요가나 댄스 수업의 자리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첫 번째 줄은 그곳을
오래 다녔거나 베테랑들이 선점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오래 다니셨나 보네'
수강생들의 연령대가 꽤 있어서 초보 딱지를 뗀
나 정도의 실력이면 앞 줄에 설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이다. 할머니들의 스트레칭 자세를
보는 순간, 두 번째 줄이 아니라 맨 마지막째 줄로
도망가고 싶었다. 다리를 컴퍼스처럼 쫙~ 벌리더니
자유자재로 찢고 귀 옆으로 넘기고!
보면서도 감탄했다. 건강한 할머니들은
여기에 다 모여있는 거 같았다.
(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해야겠네!!!)
무림의 고수들을 만난 것처럼 갑자기 설렜다.
존재감 있는 어흥이 무늬 레깅스를 입은
요가 선생님까지! 포스가 남달라 보였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도 있는데~ 어려운
동작일 수도 있는데 잘 따라와 주세요.
발가락 체조를 할 거예요 “
허리 꺾고, 다리 찢고 이런 것도 아니고
고작 발가락 운동이요?
너무 소극적인 동작 아닌가...
발가락 체조는 잘 사용하지 않은 근육을 쓰면서
발의 아치를 세우고 무뎌진 감각을
돌이키는 연습이라고 했다.
'두 번째 발가락을 들라고 하는데
세 번째는 왜 따라오냐?'
분명 내 발가락인데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장난하나?...'
산만한 덩치가 넘어질 듯 말 듯하면서
낑낑대고 있으니 보다 못한 선생님이
하이에나처럼 달려왔다.
어흥이 무늬 레깅스 때문에 순간 더 쫄았다.
긴장한 내 발가락을 손수 주무르고 발가락이
제대로 놓여야 하는 위치를 정정해 주셨다.
"몸에 많이 힘이 들어가서 많이 굳어서
그러는 거예요 꾸준히 연습하면
한 달 뒤에는 부드러워질 거예요 “
‘꾸준히 연습‘이라는 말에 숨이 켁... 막혔다.
(선생님... 그 말하면 도망가고 싶을지도...)
운동에는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서인지
시작도 하기 전에 부담감이 더 커진다.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수는 없다.
살아야 하니까. (최근 수술까지 해서
운동을 하긴 해야 한다. 고로 피할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운동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살짜리 아이를 달래듯
운동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말로 바꿔본다.
"나는 절~대 운동하러 가는 게 아니다.
그냥 힘 빼러 가는 거다!!! "
언제까지 이 주문이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요가 수업에 참여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 정도면 절반은 성공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