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선택] 비번이 뭐였더라
얼마 전, 스마트폰을 업데이트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업데이트를 했고,
유심 비밀번호를 걸어놨던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매번 쓰는 번호인데 왜 안 되지?
여러번 누른다는 것이 락이 걸려버렸고
전화와 메시지 불통에 화면도 고정된 상태에서 멈췄다.
이미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했다.
살릴 수 있어!
이럴 땐 똑똑한 친구에게 물어봐야지
PC를 켜고 AI에게 여러 가지 버전으로 물어봤다.
결국 원하는 대답은 얻지 못했고
대리점을 찾아가라는 답변만 들었다.
금요일 밤에 일어난 일이라 월요일 오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누군가와 신나게 통화를 하고
쇼츠를 보며 도파민 터지는 불금을 보냈을 텐데...
달라진 건 딱 하나!
모든 이들이 초연결 시대의 축복을 누리고 있지만
나만 정전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외출할 때도 휴대폰을 들고 가지 않고
주말 동안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금단 현상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려는데,
음악을 들어볼까? ‘아, 나 오늘 휴대폰 없지’
길 찾아야 하는데... ‘아, 휴대폰이 없지’
내게서 단지 스마트폰 하나 없을 뿐인데
그동안 의존했던 디지털 습관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내 취향,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것이
스마트폰 하나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곧 '나'인셈이다.
그 우려는 며칠 후 현실이 됐다.
메모 앱을 새로 설치하다
기존에 사용했던 앱 아이콘이 2개가
되었길래 하나를 지웠다.
웁스... 기존에 5년간 메모했던
기존의 앱이 사라진 것이다!!!!!
아주 어이없고 황당해서 한참을 웃었다.
놀란 마음을 달래며 다시 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일단 휴지통을 찾자. 디지털인데 설마
복구가 안 되겠냐!’
5년 동안 쓴 일기와 메모,
그리고 병원 일지가 있는 중요한 앱이었다.
또 AI에게 물었더니 백업해 놓지 않은 이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답은 대체 언제 줄거니?)
디지털 관련 업체에도 문의를 했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게 5년의 기록이 고스란히 날아갔다.
백업의 습관을 들이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또 디지털이니까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디지털을 사용하는데 그 값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더 이상 디지털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고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온라인 백업 공간이 부족해 자꾸 결제를
유도했던 구글사에 눈물을 머금고
내 카드를 내어주었다.
디지털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하면 앞뒤 보지 않고
돈부터 쓰게 된다. 돈이 내 자료를 지켜주겠지...
예전에 이슈가 됐었던 디지털 LG 광고가 떠오른다.
할머니가 손님에게 휴대폰을 보며
그게 뭐냐고 묻자 “디지털 세상이잖아요”라고 답한다.
그게 뭔지 모르는 할머니는
“뭔 돼지털?”이라고 반문한다.
당시 디지털의 등장을 잘 표현한 CF를
웃으며 칭찬했다.
24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속도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돼지털에게 굴복당하지는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