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남긴 생존 기술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다

by 이너프

밀라노 동계올림픽 소식에 문득 12년 전 소치의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날카롭게 스치는 듯하다. 내게 올림픽은 스포츠의 축제가 아니라, 인간이 어디까지 처절해질 수 있는지 시험했던 '생존 훈련소'였다.

‘올림픽 현지 파견'이라고 하면 제법 근사하게 들린다. 하지만 실체는 전혀 딴판이다.

방송사에서 결성한 TF팀에 차출되어 한 달간 낯선 땅에서 매일 대본 한두 개를 뽑아내야 하는 '유배'에 가깝다. 회사는 본전을 뽑아야 하기에 현지 팀에게 무리한 주문을 쏟아붓고, 우리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식 멘털을 강제 장착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나였다. 스포츠의 ‘ㅅ’자도 모르던 내가 올림픽 팀에 막차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민폐가 될까 봐 비행기 안에서 종목별 가이드북을 달달 외웠지만, 백지상태에서 욱여넣은 지식이 얼마나 갈까. 나는 어설픈 본모습을 감춘 채 불안한 마음으로 러시아 소치에 입성했다.


우리의 진짜 전쟁터는 화려한 경기장이 아닌, 국제 방송 센터(IBC)였다. 전 세계 언론사가 지불한 돈만큼 공간을 할당받는데, 부스 크기가 곧 방송사의 자본력이자 자존심이 되는 냉정한 비즈니스의 현장이다.

사람들은 경기를 많이 봤냐고 묻지만, 사실 작가에게 경기장은 없다. 온종일 IBC에 박혀 올림픽 방송 서비스(OBS)에서 송출해 주는 영상을 8개의 모니터 앞에서 하이라이트를 정리하고, 한국과 섭외 사항을 확인하고 몇 시간 뒤 방송될 대본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피디들은 현장에서 메달 유망 선수와 가족을 찾아내 인터뷰하는 게 임무다. 1차 팀이 들어와 편집하면 2차 팀이 나가는 릴레이 시스템이었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한국팀이 깨어 있으면 우리도 깨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이틀처럼 살았다. 모든 것이 부족했고, 모든 것이 돈이었다.

가장 심각한 결핍은 음식이었다. 한국에서 공수한 김치와 김은 일주일 만에 바닥났고, 심지어 누군가 슬쩍해 가는 일도 발생했다. 숙소 조식 뷔페는 화려했지만, 며칠 지나자 혀가 먼저 파업을 선언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뇌’를 속이기로 했다. 떡진 머리로 동료들과 마주 앉아 무미건조한 베이컨과 양상추를 입에 넣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건 삼겹살 상추쌈이다, 옆에 있는 물은 사실 소주다."


간절하게 세뇌하며 씹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런 맛이 나는 것 같았다.


파견의 정점은 '아사다 마오 섭외 사건'이었다. 피겨왕 김연아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를 인터뷰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 팀엔 일본어 통역사가 없었다. 피디와 나는 무작정 일본 방송 부스 문 앞을 지키는 '현대판 망부석'이 되어 이른바 '뻗치기'에 들어갔다.

두 시간이 흐르자, 한계에 다다른 내가 먼저 철수를 제안했다.

"피디님, 만나도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데 의미가 있을까요?"

"일단 문 열리면 들어간다. “


그의 말투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렸고 우리는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당황한 아사다 마오 앞에서 피디는 의외의 무기를 꺼냈다. 인터뷰 질문지가 아니라, 자신의 휴대폰이었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휴대폰을 아사다 마오의 귀에 대주었다. 알고 보니 한국에 있는 그의 아내였다. 일본어가 유창한 아내를 실시간 국제전화 통역사로 기용한 것이다.


생방송보다 더 긴박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무대뽀도 이런 무대뽀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경외심마저 느꼈다. 무모했지만, 결국 그는 아사다 마오의 인터뷰를 따냈다.


현장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 별다른 구성안 없이 현장으로 뛰쳐나가며 피디가 내뱉던 말이 있다.


“이너프 작가, 걱정하지 마. 현장에서는 내가 알아서 할게.”


한국에서는 각자의 팀에서 경쟁하던 사이였지만, 타지에서 만난 그는 '원 팀'의 든든함을 온몸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 말은 세상 그 어떤 계약서 보다 믿음직했다.


지금도 올림픽 종목의 룰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눈 뜨고 보기 힘들었던 피디의 처절한 보디랭귀지와 삼겹살이라 믿고 씹었던

차가운 베이컨의 맛만 선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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