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쉬고 있을 때였다. 통장에서 텅장이 되어갈 때 아는 피디가 달콤한 제안을 했다.
“휴먼 다큐멘터리 1시간짜리인데, 할래요?”
메인 작가 자리였다. 늘 짧은 구성 대본만 쓰던 내게 60분짜리 다큐는 쉽지 않은 벽이었다.
그래도 오르고 싶었다. 나는 앞뒤 재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약속 장소는 30층 사무실. 문을 열자, 창문 너머로 한강이 펼쳐졌다. 비서가 상주하고 있었고, 스페셜티 커피가 고급 찻잔에 담겨 나왔다.
'이런 곳이라면 다큐가 아니라 대하드라마도 쓰겠는데?'
잠시 후 담당 피디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입술 한쪽에만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마치 썩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내 표정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은퇴하신 방송국 국장님이었다. '대선배'라는 말조차 가벼운, 하늘 같은 존재다. 그분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는 한우가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고문이었다.
그 고요 속에서 유일한 전우는 파견 나온 편집 피디였다. 우리는 전쟁터의 낙오병처럼 빠르게 전우애를 쌓았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국장님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탈출'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짐을 싸며 내게 유언 같은 한마디를 남겼다.
“작가님, 여긴 버뮤다 삼각지대예요. 빨리 도망가요!”
퇴사를 권유하는 피디라니. 나는 그의 진심을 읽어야 했다. 공짜 스페셜티에 눈이 멀어 내 영혼이 갈려 나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를 소개해 준 분의 얼굴과 '제대로 복귀해야 한다'라는 서글픈 욕심이 책임감으로 묶어 그 자리에 무겁게 앉혔다.
마지막 관문은 60분 분량의 내레이션 대본이었다. 마감까지 단 3일! 관련 서적을 산처럼 쌓아두고 코피 터지게 글을 썼다.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컴퓨터 앞에서 밥 대신 사과를 씹으며 밤을 지새웠다. 드디어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나갈 첫 장편 다큐 대본이 완성되었다.
국장님은 조용히 원고를 넘겼다. 서걱거리는 종이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예쁜 말이 많네,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놨구먼.”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가 공들인 문장들이 한 번에 부서지고 공중분해 됐다. 충격이 다 가시기 전에 카운터 펀치가 날아들었다.
“시간 없으니까, 내가 쓴 걸로 출력해”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대본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나는 3일 밤을 새워 '정답 옆에 놓일 오답'을 만든 셈이었다. 프린트 버튼을 누르며 국장님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제 글이 그렇게 별로인가요?"
하지만 내 손으로 출력한 국장님의 대본을 읽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십 년 현장을 누빈 고수의 문장은 달랐다. 화려한 수식어는 없었지만, 문장마다 묵직한 삶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내 대본에는 없는 단정한 매력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다큐가 방송되던 날,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셨다.
“우리 딸, 글 잘 썼네”
작가의 엄마는 영상보다 글에 집중한다. 그런 엄마에게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스크롤에 내 이름이 지나갔다. 하지만 거기엔 나는 없었다.
여전히 한 줄을 버리고, 또 한 줄을 쓰며
나만의 문장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