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포켓몬은 아니지만, 진화!

by 속삭이는 물결

어제보다는 살짝 가벼운 마음으로 기상. 그러나 지각. 정신없이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수영장엘 들어가자 준비 체조가 한창이다. 조용히 뒤쪽으로 걸어 들어가 물속으로 풍덩. 정각으로부터 3분이 지났다. 거의 다 끝난 체조를 따라 하고 허우적대고 본 수업이 시작됐다. 나는 오늘도 마지막에 서서 출발하기를 기다렸고, 선생님은 거북이 등을 가져와 내게 건네셨다. 오늘은 처음부터 거북이 등을 차고 하나 보다.


오늘은 어제보다 숨이 덜 차네, 조금 늘었나 싶었는데 지금 쓰면서 생각해 보니 거북이 등 덕분이었다. 그래도 숨이 아주 안 차는 건 아니다. 중간쯤 가서 헉헉대면서 유턴할 기회를 엿봤더니 선생님이 끝까지 가라고 손짓하신다. 아, 그래서 거북이 등을 주셨구나. 오늘은 거북이 등 덕분에 조금 더 수월하게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아니, 그전에 이상하게 수경 속으로 물이 계속 들어왔다. 수경이 밀착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눈으로 물이 계속 들어오니 호흡도 발차기도 모두 엉망이 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수경은 작다 싶은 느낌으로 꽉 끼게 써야 하는데 내 수경이 너무 커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이상했다. 나는 지난주에 처음 써본 수경이 너무 타이트해서 눈가에는 패인 주름이 생기고 눈알은 막 튀어나올 것 같아, 지난주 오늘 수업이 끝나고 수경 끈을 넉넉하게 조절해 놓은 터였다. 내 머리가 이렇게 컸던가, 자책하면서 말이다. 그런 뒤에도 일주일 동안 잘 썼는데 오늘만 갑자기 물이 들어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잘 바르지도 않던 로션을 어젯밤 듬뿍 바르고 잔 탓인 것 같다. 수영 들어오기 전에 얼굴에도 비누칠을 해서 모든 화장품을 지워야 하는 모양이다.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수경 끈을 조여주셨다. 수경은 다시 타이트해졌고 덕분에 눈은 더 조여왔다. 혹시 이것 때문에 안압이 높아지진 않을지 쓰다 보니 갑자기 걱정이 든다.


선생님의 코칭 타임. 내가 여전히 왼 다리만 차서 온몸이 찌그러진 상태로 움직이고 있다. 오른 다리도 찰 것. 너무 많이 차려고 하지 말고 부드럽게 꾸준히 차려고 할 것. 무릎을 조금 굽혀도 되니 여유롭게 차라고 하신다. 나도 모르게 또 다리를 쭉 뻗은 채 용을 쓰고 있었나 보다. 삐그덕 삐그덕. 그리고 고개를 너무 많이 들면 그만큼 다리가 가라앉기 때문에 살짝만 올라오라고도 하셨다. 이제부턴 같은 지적을 또 듣고 또 들으면서 잘못된 동작이 습관으로 굳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여튼 며칠째 중간까지만 갔다가 유턴해서 돌아와야 했는데, 이제는 끝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게 됐다는 성취감이 생겼다. 아무리 거북이 등 덕분이라도. 확실히 여유가 있어서 교통 방해도 덜한 느낌이다. 물론 중간에 몸 방향이 좌측으로 쏠리면서 중앙 차선으로 침범해 다른 분과 부딪힐 뻔한 해프닝도 있었다. 선생님은 중앙으로 가면 어떡하냐고 말씀하셨고, 나는 웃으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뒤뚱거렸다. 방향 조절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깊은 바닥을 겨우 쳐서 글라이딩을 새롭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번에는 오른발을 더 찼기에 왼쪽으로 갈 수 있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발차기를 하도 하다 보니 허리가 아파 왔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꺾어서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에게 발차기를 많이 해서 허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운동하러 와서 허리가 아프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골반 전방 경사 때문에 허리가 아플 수 있다는 지식은 수영장에선 소용이 없을 터였다. 선생님은 내가 온몸에 힘을 주고 과도하게 경직된 상태로 발차기를 하기 때문에 허리가 아픈 것 같다고 하셨다. 몸에 힘을 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 몸짓을 흉내 내셨는데, 내가 하는 동작을 스스로 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도 거울을 보는 듯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유쾌한 마음이 먼저 들었고, 더 잘하고 싶어졌다. 나는 속으로 복근에 힘을 더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생님은 이제 고개를 들고 저 끝까지 갔다가 와보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엔 무려 팔 돌리기를 배워보자고 말이다. 오! 드디어 팔을 배워 보다니! 약간 신이 났다. 고개 들고 발차기는 어제 수업이 끝날 때쯤 연습했던 거다. 고개를 들면 하체가 가라앉기 때문에 다리 힘이 더 세야 한다. 각각 다른 선생님에게서 세 번째 듣는 설명이다. 나는 생각보다 무탈하게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이번에는 고개를 든 덕분인지 허리는 아프지 않았고 대신 왼쪽 엉덩이 아래가 뻐근하게 당겨왔다. 엉덩이 힘을 쓰는 건 문제가 없는 일이겠지?


내가 한 바퀴를 돌고 오는 사이 다른 분들도 앞쪽에 모여들었고 선생님은 그분들께 새로운 과제를 내주고 계셨다. 나는 그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 다른 분들을 추월해 한 바퀴를 더 돌고 올까 말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추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느린 속도를 낼 수밖에 없으면서 말이다.


선생님은 내게 지상으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수영복 차림으로 물 밖에 서 있는 건 조금 많이 뻘쭘한 일이다. 어제, 그제 이틀에 걸쳐 무언가를 많이 먹은 나 자신을 살짝 책망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물가에서 팔 돌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상태에서 한 팔을 배꼽 쪽으로 천천히 내리면서 골반 옆까지 붙인다. 이때 물을 밀어내려면 어쩔 수 없이 팔꿈치가 살짝 꺾인다. 나중에는 더 꺾어야 하지만 일단 지금은 더 뻗는 느낌을 유지한다. 팔이 골반 옆으로 오면 어깨를 열어준다. 그런 다음 팔을 뒤쪽으로 돌려 옆쪽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온다. (선생님이 가까이서 팔 모양을 만들어주시는데 곡물이 발효된 향이 강하게 풍겨 와서 살짝 당황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기념이었을까. 새벽 몇 시까지 달리신 걸까. 그 기운을 받아 오늘 더 한 명 한 명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팔 돌리기를 물속에서 걸으면서 연습하라고 하셨다. 걸으면서 연습하면 속도가 너무 더뎌서 진로 방해가 심할 텐데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인원이 많지 않은 날. 분명 지상에서 설명을 들었을 땐 100% 체득한 것 같은데, 막상 혼자 해보려니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헷갈렸다. 나는 어깨를 틀 때마다 시선을 어깨 아래로 향하며 팔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연습하고 있었더니 선생님이 시선은 앞을 향하라고 하셨다. 어설프게 흉내내기의 몰락. 아직은 최대한 덜 움직이며 연습할 시간인가 보다. 그리고 두 손은 벌리지 않고 가지런히 모으고, 손가락도 펼치지 않고 붙여야 한다. 손등이 하늘을 보게. 손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내야 한다. 살짝 비행기 놀이 하는 초등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대망의 마지막 연습 과제 시간. 킥 패드를 잡고 거북이 등도 메고 발차기를 하면서 한 팔씩 돌리기다. 음-하는 동안 한 팔을 돌리고 파-. 다시 음-하며 다른 팔을 돌리고 파-. 킥 판을 원래 잡던 방식으로 잡으려니 킥 판이 계속 떨어질 것 같았다. 절반쯤 가니 선생님이 킥 판을 잡는 방법을 다시 알려주신다. 팔 돌리기를 할 때는 킥 판의 끝만 잡는 것이라고 한다. 한 팔씩 열심히 돌려가며 음-파-음-파도 해보기. 무척 헷갈린다. 고장 난 로봇처럼 팔 돌리기 따로 호흡 따로 발차기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연습하다 보니 벌써 끝날 시간인가 보다. 고급반 선생님의 구령 소리가 들린다. 나는 처음 어설프게 끼어들었던 수심 깊은 자리에 뻘쭘하게 서서 고개만 겨우 내밀고 체조를 따라 했다. 오늘은 팔 돌리기도 배웠으니, 10초 동안 물속에 들어가 팔다리를 흔드는 동작도 조금은 덜 바보같이 수행했다. 다리를 껴안고 10초 동안 잠수하는 동작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마무리 체조가 끝나고 힘겹게 레일 앞쪽까지 걸어가는데 선생님이 마무리 칭찬을 해주셨다. 오늘 내가 잘했으며 무엇을 더 주의하면 좋겠다는 따뜻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 주의사항들이 기억나질 않는다. 팔 돌리기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나냐고 물으셨고 나는 당당하게 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셨다. 나에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으니까 연습하다 보면 감각을 찾겠지.


아무튼 새로운 걸 추가로 배워서 기쁜 하루다.


샤워를 한 뒤에 샤워 타월과 수영복을 함께 탈수기에 돌리기로 했다. 앞뒤로 탈수기를 사용하고 있던 할머니들 손에 들린 샤워 타월을 보고 용기를 얻은 것이었다. 어찌 됐건 할머니들 사이에 서 있으려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 와중에 어떤 백발 할머니께서 내가 화장실 입구에 서 있자 아주 정중한 귀족처럼 잠시 여기 좀 지나갈게요(아니 이보다 훨씬 더 정중하고 친절한 표현이었다.)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향이었다면 여 좀 비켜봐라, 라던가 와이래 길을 막고 서 있노, 라고 말을 걸거나 아무 말 없이 툭 치고 지나갔으려나? 인터넷에 떠도는 귀족 영애 화법이 생각났다.


아무튼 할머니들과 탈수기 경쟁을 하기엔 간이 콩알만 했다. 탈수기가 잠시 빈 틈을 타, 수영복과 샤워 타월을 넣고 1분 30초 정도 돌렸다. 아직 10~20초 정도가 남았을 때, 어떤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이거 다 끝났냐고. 아직 돌아가고 있는데 왜 물으시는 걸까. 나는 조금 쫄아서 탈수기를 바로 껐다. 바로 껐지만 원심력 때문에 탈수기가 멈추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탈수기가 고장 나면 안 되니까 최대한 뚜껑을 닫고 완전히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버렸지만 어느 정도 뽀송하게 마른 샤워 타월과 수영복을 만지니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건강한 점심을 챙겨 먹었다. 기대되는 공연도 예매했다. 그리곤 다시 우울한 생각이 덮쳐 왔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가득 뒤덮은 우울한 생각을 잠시 잊고자 이 글을 썼다. 집중과 배출의 힘. 큰 도움이 되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는 매몰차게 잊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쉬이 돌아서진 않는다. 오늘은 한 번 더 한의원을 방문에 치료를 받아보려 한다. 몸의 아픈 곳이 나아지는 것보단 뭔가 다른 곳에 혼을 빼앗는 일이 내 지금 마음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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