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커피를 오랜만에 많이 마신 탓인지 새벽 3시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깨 있었다.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오늘 아침. 아무래도 간밤에 지인으로부터 얻은 위로와 공감이 천연 카페인 효과를 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비슷한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준다. 나도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서 예외는 아닐 테지만. 큰 파도가 친 뒤에는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 희생자가 꼭 나오는 법.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은 그렇게 흘러간다. 사필귀정이라는 아주 오랜 성어처럼.
어제는 오른팔이 아파 경추 근처에 침을 맞았다. 맞을 때는 아무 느낌 없었는데, 밤이 되자 팔 근육이 이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뭉친 승모근을 풀고 싶고 고관절을 유연하게 하고 싶어서 몇 가지 스트레칭 동작을 했더니 팔뚝에 무리가 간 것 같다. 테이블 자세에서 팔로 살짝 체중을 지탱하는 정도였는데. 설거지를 하면서 더 심해졌다. 팔이 부쩍 예민해진 느낌. 아무래도 팔을 가만히 두었어야 했나 보다. 불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이 되자마자 팔뚝에 근육통이 생겨 있었다. 아픈 팔 고치려다 더 심한 통증 얻은 바보 여기 있어요.
컨디션은 좋은데 오른 팔뚝만 아픈 날. 어제 기껏 배운 팔 돌리기를 오늘은 못 하려나. 어차피 선생님이 다른 날이라 안 배울 가능성이 컸지만. 버스에 타선 한의원에서 배운 손가락 접기를 괜히 해봤다. 잘 접히지 않는 새끼손가락. 너는 뭐가 문제니. 평소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지만, 역시 사람이 많다. 에어로빅 반 분들로 가득 찬 탈의실. 샤워실은 한산해서 다행이었다. 일찍 도착한 만큼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수영장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햄스트링 위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 어김없이 시작되는 수업. 이제는 제법 어색함을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발차기 연습을 시작한다. 달팽이를 탈출해 거북이가 됐기 때문에 두려움도 사라졌다! 어느 정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오히려 나보다 더 느리게 가시는 분들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꼴찌는 아니었어! 할머니 몇 분 이겼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어제 코칭으로 들었던 무릎 굽히기를 신경 쓰면서 가다 보니 몸도 잘 뜨고 속도도 제법 나는 느낌이다. 여전히 수업 초반에는 숨이 차서 겨우 헉헉대며 두어 바퀴를 돌았다. 그러고 나니 선생님이 거북이 등을 가져다주신다. 거북이 등이 있으면 이제 레일 끝까지 갈 수 있다! 한참을 왔다 갔다 반복 연습. 아주 기본적인 음-파-음-파와 발차기만 해도 죽겠는데, 더 어려운 동작을 연습하는 사람들은 숨이 훨씬 더 많이 찰 것 같다. 심폐지구력은 매일매일 꾸준히 연습해도 이틀 이상 쉬면 말짱 도루묵인 듯하다. 장기적인 레벨업은 불가능한 것 같다. 결국 모든 몸이 타고난 상태를 기점으로 아주 약간만 나아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또 연습을 하다 보니 선생님이 이제는 킥 패드 앞쪽을 잡고 고개를 들고 해 보라고 하셨다. 내가 발차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균일하게 차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양다리를 골고루 같은 세기로 차야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처음 배울 때도 소리를 들으라고 하셨었는데, 일주일 동안 깡그리 잊었네! 아무튼 그 전날보다 어제보다 고개 내놓고 발을 차는 게 훨씬 더 잘 되는 느낌이다. 다리 차는 것도 많이 힘들지 않고 속도도 더 올라간다.
연습을 하다가 오른발 검지와 중지가 뻐근하게 느껴졌다. 왼 발가락이 낫자마자 오른 발가락이 말썽인 걸까. 착지를 이상하게 한 적도, 도약을 하면서 발을 헛디디지도 않았는데 이상할 노릇이었다. 잠시 멈춰서 발등을 꺾으며 달래주어야 했다. 다들 내게 쥐가 났냐고 물었지만, 쥐가 나는 일은 고도의 경지에서 일어나는 해프팅일 듯했다. 쥐가 어떻게 나는 거죠? 그게 아니라, 발가락이 뻐근하다는 나의 말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들렸을 것 같다.
그다음 과제는 5초 동안 음- 하고 2초 동안 파- 하는 것. 그동안 발차기는 10번 넘게씩 해야 한다. 여전히 발 차는 소리도 들렸다. 숨이 찰수록 소리는 점점 관심 밖으로 사라졌지만. 그리고 곧 다음 과제가 주어졌다. 이번에는 킥 패드의 꼬리 부분만 잡고 가보는 것이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잘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어제 고관절 강화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이 아닐까? 팔뚝의 희생이 있었지만 운동하길 잘했다! 가끔 다리가 경직되면서 무릎 굽히는 걸 깜빡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몸이 기울어지는 것 외에는 꽤 잘 나아갔다.
문제는 나아가는 방향이 왼쪽으로만 기울거나, 오른쪽으로만 기울거나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오른쪽으로만 나가는 게 문제였는데, 이제는 왼쪽으로 기울기도 하니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졌다고 생각해야 하나. 물론 오른쪽으로 기울 확률이 훨씬 커서 벽과 부딪히거나 레일 사이의 구분 선과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한쪽 다리의 차는 힘이 더 세거나 약한지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만으로는 달라질 게 없었다.
아무튼 레일 끝까지 가보는 일은 기분이 꽤 좋다. 거북이 등 덕분이긴 했어도 사흘째 처음부터 끝까지 왕복했다는 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서도 이제 중심을 잃지 않고 출발하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
이 수업에선 유독 한참을 쉬시는 분이 계신데, 오늘 같이 쉬면서 어떤 걸 연습하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코로나가 터지기 전 한 달 반 정도 수업을 들으며 자유형, 배영까지 배웠고 그걸 다시 연습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실 들어도 아리송했다. 자유형 팔 동작을 하면서 숨 쉬기가 얼마나 힘든지 설명하셨는데, 선생님이 마지막 한 번만 더 힘을 내서 돌리면 완주라고 알려주셔도 본인은 그게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럼 나도 두어 달 정도 들으면 배영까지는 배우는 걸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분은 금요일에는 자녀분의 성화로 포켓몬 빵을 사러 가야 해서 못 온다고 하시며, 저 끝까지만 갔다가 먼저 씻으러 가겠다며 인사를 하셨다.
수업도 무난히 마친 하루. 연습 방법을 바꿔가며 골고루 배워본 시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탈수기 순서를 기다리며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가히 진귀한 대화가 들려왔다. 할머니들 간의 수다였다. 형님, 예전에 00 아파트 살던 그 키 큰 언니 기억나? 그 언니가 며칠 전에 00암으로 죽었대~ 그런데 건강 검진을 00년 동안 안 했다는 거 아냐~ 아유 그럼 소용없지~ 초기에 잡아야 하는 건데 00년 동안이나 된 거면 말야~ 암인 거 알고 공기 좋은 경기도 00로 이사 갔었나 봐~ 어휴 아무렴 소용없지~ 오늘이 발인이래~ 죽음과 암에 관한 대화가 너무나도 태연하고 평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같은 톤에 누군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이야기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작은 이별에도 절절히 아리고 아프다면 그건 아직 젊어서일까. 언젠가는 큰 이별도 누군가의 죽음도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저렇게 다정한 말씨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이다.
마무리를 하고 밖으로 나와서 걷는데 어제 치료가 성공적이었는지 고관절 운동의 효과가 뛰어난 건지 고장 난 발목도 산뜻하고 가볍디 가벼웠다. 날이 어찌나 화창하고 좋은지. 나는 산책을 결심했고 꽃이 진 자리에 피어난 초록 잎은 노래를 지저귀고 있었다. 발가락이 여전히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 빼고는 아주 좋은 산책이었다.
내일은 다시 팔 돌리기부터 연습하는 날이다! 팔뚝이 오늘 다 나아서 내일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 휴,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마음은 너무 바쁜데, 몸은 피곤하고 너무 한가롭다. 수영을 시작한 지 2주는 훌쩍 지난 것 같은데 아직 일주일이 살짝 넘은 정도다. 그래도 4월이 벌써 2/3가 지나갔다.
수영 커리큘럼을 찾아보며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체크하기
수영에 관한 지식을 글로 습득하기
수영 유튜브를 보면서 심상 요법으로 연습하기
피아노 치기(팔뚝 아파서 잠시 포기)
좋은 영화 보면서 위로받기
인터넷 유랑하며 최신 트렌드 파악하기
책 읽기
유튜브 보기
(뭐든지 과도한 콘텐츠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중)
이직 준비하기 = 공고 확인하기 + 지원할 기업 조사하기 + 이력서와 자소서 준비하기
프로젝트 일감 모으기
고관절 강화 운동과 스트레칭
경추 긴장 완화 운동과 스트레칭
셀프 클래스 앳 홈
다시 다닐 클래스 알아보기
탄단지 구성 탄탄하게 해서 잘 먹고 잘 지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