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완전한 자유가 성립하는 곳이 있을까. 그것도 인류 사회에서 말이다. 인간은 끝없이 고뇌하고 갈등하며 선택하고 후회하며 그 사이에 발생하는 작은 쾌락을 행복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자유를 스스로 취하건 타의에 의해 취하건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잠시 고용인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선택한 뒤, 그 자유를 만끽하고자 주 6일 수영 수업에 등록한 내가 있다.
평소 성정으로 보아 자유가 주어지는 날이면 주로 새벽에 활동한 뒤 오후가 돼서야 기상하는 아주 어그러진 생활 패턴이 어울린다. 웬일인지 새벽 한두 시쯤 잠드는 버릇은 고칠 수 없지만 수영 수업 덕분에 아주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다. 수영은 새롭게 느끼는 행복이기도 하지만, 자유가 낳은 또 다른 속박이기도 하다. 이렇게 유난히 몸이 무겁고 생각이 많은 날도 있는 법이지.
그런데 내가 탈 버스는 왜 맨날 늦게 오는 건지, 오늘은 아주 대지각을 하고야 말았다. 버스가 전 정류장에서 10분 이상 정체하다 늦게 온 만큼, 앞으로의 길은 빠르게 달려주었으나 제시간에 도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찍 가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 많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입장했다. 7분 지각이다. 체조는 이미 끝났을 것이고 다들 연습이 한창이다. 천천히 걸어가다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거북이 등을 차라는 듯한 시늉을 하셨고, 나는 거북이 등을 챙겨서 열심히 묶으며 수영장으로 진입했다.
먼저 자유형 발차기를 연습했다. 자유형도 자유처럼 모순적인 구석이 있다. 자유형은 영어로도 freestyle이다. 래퍼들이 즉흥으로 랩을 하는 광경이 떠오르는 문구지만, 자유형 수영은 팔다리가 움직이는 방식이나 숨 쉬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 '자유'라는 이름이 처음 배우기 좋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긴 하고, 실제로도 처음 배우는 영법이지만, 그만큼 깐깐한 영법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다른 영법은 배'영', 평'영', 접'영' 등 모두 '영'으로 끝나는데 자유형만 혼자 '형'으로 끝난다. 그런데 자유영도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다. 그 유래에는 타당한 히스토리가 있지만, 여기서는 굳이.. 생략. (그런데 또 배영과 평영과 접영이 자유형에 속하는 영법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이름으로 초보자를 낚으려는 속셈이려나. 아무튼 자유로운 용법의 자유형이다.) 이래도 좋구, 저래도 좋쿠.. 이름부터 제법 자유로워 보이는 자유형. 꼭 혼돈에 빠진 나를 보는 것 같다.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 몸이 좌우로 기우는 현상도 낯설지가 않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쭉 피고 포인해 가며 발차기를 하기도 하는데, 의식적으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나 보다. 이게 습관으로 굳으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그렇게 되면 무용 수업에 다시 갔을 때도 무릎을 굽혀가며 움직이려나? 지각한 만큼 뇌가 굳었는지 더 경직된 생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중간중간에 다리를 들려고 하니 엉덩이가 아래로 빠진다거나, 내가 파-를 너무 세게 한다는 피드백을 주셨는데, 뭔가 잘 들리지가 않았다.
두세 바퀴 돌고 나니 선생님이 이제는 고개를 들고 발차기를 연습하라고 하셨다. 이제 그 정도는 끄떡없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나가 졌다. 한 바퀴 정도 겨우 돌았을 때 선생님이 지상으로 소환하셨다. 유아 풀로 직행이다. 이번에는 좌천이 아니라 업그레이드를 위한 이동!
그저께 배운 팔 돌리기를 하면서 걸어 다니는 연습이 시작됐다. 걸어 다닌다고 하기엔 수심이 워낙 낮아 차라리 기어 다니는 수준이지만. 쪼그려 앉아서는 팔로 물을 밀어내는 느낌을 살려서 부드럽게 움직여야 한다. 팔이 골반 옆에 왔을 때 어깨 트는 것 잊지 말고! 쪼그려 앉아서 움직이려니까 힘들다. 손이 엉덩이 옆으로 왔을 때 손바닥은 천장을 봐야 한다. 다시 한번, 물을 밀어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받기!
이번에는 글라이딩과 발차기를 동시에 해보는 연습이다. 글라이딩하고 몸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발차기 시작, 계속 음- 또는 숨을 참으면서 오른팔 돌리기 한 번, 왼팔 돌리기 한 번, 하고 파- 호흡이다. 숨이 너무 금방 찬다. 숨 쉬기가 힘들어서 중간에 물을 먹기도 했다. 혼자서 연습하다가 요령이 생겼다. 계속 음- 하면서 내뱉지 않고 숨을 참으면서 팔 돌리기를 연습하면 조금 더 버틸 만하다.
선생님이 돌아오셔서는 세로 방향으로 움직여 보라고 하신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 쉬지 말고 하라고 하신다. 숨 참는 게 제일 힘들다. 이것 때문에 당황하기 시작하면 몸이 경직이 되고 다리도 가라앉고 발차기도 멈추게 되고. 하여간 총체적으로 힘들다. 연습하는 동안 바깥을 살펴보니 유아 풀에서 훈련하던 유아들이 큰 풀에서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우와.. 작은 인간들이 저 깊은 곳에서 어떻게 뜰 수 있는 거지?
이번에는 다시 큰 풀에서 연습해볼 시간이다. 똑같이 반복하는데 중간 지점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기. 그 사이 다른 분들은 다 같이 천장을 보고 누워서 다리를 접었다가 돌리는 신기한 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하셨다. 내 것을 배우는 것도 재미지지만 남의 수업을 훔쳐보는 것도 묘미다. 저 특이한 모습을 보니 롱드쟘 앙레르 동작이 생각났다. 다들 한두 바퀴 돌더니 나란히 앉아서 발차기만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풀을 혼자 쓸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오늘도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다음 시간에는 팔을 돌리고 나서 고개를 같이 옆으로 돌려 숨 쉬는 방법을 배울 거라고 하셨다. 내가 볼 때마다 늘어 있어서 진도를 빨리 나가는 편이라고 하셨다. 어떤 분들은 두 달 동안 발차기만 연습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거의 매일 수업을 나가 연습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인 복습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칭찬을 들으니 의욕이 더 생겼다. 내일은 다른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다. 내일은 먼저 팔 돌리기를 배웠으니 연습하게 해달라고 물어볼 작정이다.
샤워도 마치고 머리도 말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상하게 온 몸이 침울해졌다. 마음보다 몸이 더 무겁게 가라앉는 기분. 편의점 간편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곤 친구와 원격 수다를 떨었다. 몸이 더 축축 처진다. 어제 적은 해야 할 일 리스트가 오늘은 더 멀어져만 갔다. 모두.. 망했어요.. 무슨 물에 빠진 시체처럼 2시간 낮잠을 잤다.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이런 걸까? 운동량이 유독 강했던 것도 아닌데. 오타도 작렬이다. 저녁 일정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다. 제발 열심히 살자, 고 다짐하며.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굿 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