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우울의 늪에서 다시 한번 숨 쉬기

by 속삭이는 물결

전날 밤, 나는 치킨을 먹어버렸다. 반 마리를 양념으로. 조리 시간 15분을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가까운 마트에서 무알콜 맥주를 두 캔 사 왔다. 우울감에 패배한 채 우걱우걱 씹고 또 씹다 보니, 닭고기가 신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선하지 않은 고기는 완전한 만족감을 줄 수 없다. 살코기 두께에 비해 얄쌍한 뼈에도 검은 부분이 보였다. 이 먹는 행위는 그 충동성만큼이나 위독스러웠다. 우울감은 더 오랫동안 내 몸을 지배했다. 아침까지도, 아니 오늘 밤까지도.


발차기를 연습하는데 유독 숨이 차고 힘들었다. 다른 날보다 더더욱. 배도 더부룩했다. 치킨 탓을 안 할 수가 없는 컨디션이다. 아니, 치킨이 무슨 죄야. 맛있는 죄밖에 없지. 선생님은 음-을 더 오래 해야 한다고 하셨다. 7초를 세고 파-를 하라고 하셨다. 질식할 것 같았다. 그래도 약간의 발전은 있었다. 오늘은 거북이 등 없이 킥 패드만 잡고 레일 끝까지 오고 간 것이다. 중간 지점을 넘어서면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 때 바닥을 짚어 도약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끝없이 발차기를 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중간에 멈추면, 정말로 물에 빠진다. 빠지는 건 좀 오버고 발이 겨우 땅에 닿기 때문에 드는 굴욕감이 무서워서다.


선생님에게 팔 돌리기를 배웠다는 말을 언제 건네볼까 고민하던 차에 선생님은 호흡에 대한 코칭을 계속해주셨다. 먼저 음-을 길게 하면서 음-파-를 대여섯 번 반복하면 레일 끝에서 끝까지 편도로 도착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길게 하려다가 죽을 것 같았고, 너무 숨이 차서 내가 음-파-를 몇 번 하는지도 셀 수가 없었다. 다시 선생님은 내가 음-을 너무 세게 내뱉는다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약하게 내뱉을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공기가 살짝만 뽀글뽀글 올라와야 하는데 멀리서 보면 내가 엄청난 거품을 내뿜고 있는다고 하셨다. 나는 대게인가.. 숨이 차니까, 더 심하게 내뱉을 수밖에 없다. 계속 그렇게 호흡을 길게 하다 보니 머리가 조금 아파오는 듯했다. 그렇게 대여섯 바퀴는 돈 것 같다. 시간이 몇 분이 지났는데 왜 그것밖에 못 돌지..


선생님은 나를 풀 밖으로 소환하셨다. 유아 풀로 직진이다. 내게 앉으라고 하시곤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나는 그동안 얕게 호흡하는 음-파-를 연습하고 있었다. 유아 풀로 돌아오신 선생님은 호흡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셨다. 호흡을 깨치는 타이밍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발차기를 7번(어떤?) 정도 하고 나면 호흡을 깨우치고 어떤 사람은 호흡을 먼저 깨우치기도 한다고. 들이마시는 느낌이 잘 나면 호흡을 깨친 거라고 설명하셨다. 나는 숨이 차서 파-할 때 호흡을 너무 격하게 들이마시게 되는 것 같다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들이마시는 느낌이 나는 건 좋은 신호라고 하셨다. 우리가 평소에 숨 쉬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처럼, 수영을 하면서도 들이마신다는 인지 없이 지나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물속에서 숨을 그렇게 오래 내쉬는데 어떻게 들이마시는 걸 의식하지 못할 수가 있을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죽을 듯이 힘들어서 숨을 들이마시는데.. 급격히 숨을 마신다면 그 전 타이밍까지만 음-을 하고 올라오라고 하셨다. 그럼 7초를 못 채웁니다만? 7초는 그냥 의식적으로 느끼기 위해 제시한 시간이고 5초가 충분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방금 내가 4초 정도밖에 음-을 못한다고 하셨지.. 연습을 하다 보면 는다고 하니까, 조급해하지 말자!


풀 밖에 서서 팔 돌리기를 배웠다. 선생님은 내가 이미 배웠다는 사실을 아는 눈치였는데, 그러건 말건 기초부터 다시 알려주셨다. 우선 내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물으시더니, 오른손잡이라는 대답에 그럼 왼팔부터 시작하라고 하셨다. 팔뚝은 늘 귀 뒤에서 대기. 한쪽 팔로 물을 밀어내면서 허벅지 옆까지 도착, 도착하자마자 어깨 롤링, 여기서 손등을 위로 가게 살짝 들어서 팔 뒤에서 옆으로 앞으로 가져오기. 어제 배운 것과 살짝 다른 느낌이다.


이제 유아 풀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가서 벽을 잡고 음-파-를 하면서 팔 돌리기를 연습하라고 하셨다. 오늘은 발차기를 하지 않는다. 열심히 반복 연습했다. 괜찮으면 7초 동안 양팔을 모두 돌리고 파-를 하고, 힘들면 한 팔씩 돌릴 때마다 음-파-를 하라고 하셨다. 발차기를 하지 않으니 숨이 차지 않아서, 7초는 거뜬했다. 팔을 돌리면서 어제 배운 앞팔 내미는 느낌을 살려보려고 했다. 그럴수록 몸은 기울었고 발끝으로 바닥을 치면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유아 풀을 찾은 선생님은 내가 팔을 돌릴 때마다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예전엔 팔을 무조건 위로 들어 올려야 했지만 이제는 옆으로 들어 올리는 것도 허용이 된다고 했다. 영법에도 트렌드가 있는 모양이다. 지난주 주말 선생님은 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분들에게 위로 들어 올리지 말라는 코칭을 했었는데, 정말 가르쳐주는 방법도 선생님마다 다르구나. 선생님은 이제 마무리 체조를 하러 가라고 하셨다. 마무으리 체조! 오늘은 조금 색다른 동작을 많이 한 것 같다. 벽이나 경계선에 다리를 올리고 스트레칭하는 것도 포함이었는데, 이건 내가 맨날 하는 동작이다.


샤워를 하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역시나 다음 수업을 위해 오신 분들이 내가 맡은 자리에서 샤워를 하고 계셨다. 아니, 몸에 물만 묻히고 수영복을 입으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한가하니까 뒤에 얌전히 서 있었다. 그랬더니 그 바로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내 자리에 서신 분을 치며 나의 존재를 상기시키셨다. 어떻게 그렇게 조용히 기다리고 서 있냐며, 두 분이서 꺄르르 소녀처럼 웃으셨다. 어딜 갔다 왔냐며, 금방 옷만 입고 비키겠다고 하시면서 내가 참 예쁘다고 하셨다. 나는 수줍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대답했지만 거울 속의 나는 퉁퉁 부은 붕어빵처럼 못생겼을 뿐이다. 역시 나이가 들수록 뭐든지 예뻐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튼 오늘은 날이 흐린 탓인지 더 우울했다. 점심을 건너뛸까 싶었지만 결국 헛헛한 마음에 밥을 차려 먹었다. 그래도 불필요한 소비는 참았다. 대신 설거지거리가 싱크대 한가득이다. 너무 귀찮다. 방도 금방 더러워졌다. 방의 정리 상태는 인간의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는 말, 너무 맞는 말이다. 나는 흐트러진 정신으로 더럽혀진 방을 방관하고 있다. 내일은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수영 일기를 자정 너머께 쓰기 시작하다니. 내일 수업을 못 갈까 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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