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몸에 좋은 게 마음에도 좋아요

by 속삭이는 물결

그러니까 나는, 고백건대, 또, 간밤에 컵라면을 먹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고, 점심 외에는 먹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배가 아주 많이 고팠던 것도 아닌데 마음이 라면을 불렀다. 양심상 양파 반 개를 가득 넣어 조금은 밍밍하고 달콤하게. 잠이 오질 않아 새벽 세 시까지 깨 있었으니 소화시킬 시간은 충분했으리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 꽤 상쾌한 기분으로. 배가 꾸룩꾸룩 아파왔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다. 지난주에 처음 만난 주말 선생님이 퇴사를 고했으니. 어떤 분이 오실까? 크게 기대가 되진 않았다. 벌써 수영에 대한 설렘을 잃었나. 수영은 겨우 11일 차에 지난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샤워장 거울로 보니 몸이 퉁퉁 부은 게 느껴진다. 수영장에 거울이 없어서 다행이다. 있었으면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수영장에는 매일 보던 고급반 선생님만 계신다. 준비 체조가 끝날 때까지 뉴페이스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 선생님이 모든 회원들을 케어하려는 모양이었다.


같은 라인에 서 계신 다른 분들은 자유형 두 바퀴, 배영 한 바퀴를 돌게 됐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배영은 아직 안 배우셨죠? 자유형 발차기 연습하세요. 하고 말했다. 자유형 팔 돌리기 배우셨나요? 배웠다고 하니 그건 나중에 하자고 하셨다. 오늘도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미치겠다. 이것도 라면 탓을 해야 하는 건지. 왜 점점 힘들어질까. 아주 많이 쉬어가며 네 바퀴 정도 돈 것 같다.


선생님은 이제 팔 돌리기를 하라고 하셨다. 옆으로 보는 팔 돌리기도 배웠냐고 물으시길래 그건 안 배웠다고 하니 그럼 오늘은 앞으로 보는 팔 돌리기만 하라고 하셨다. 원래 배우던 선생님에게 배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신 걸까? 아니 그냥 새로운 걸 가르쳐주기가 귀찮았을 수도 있겠다.


거북이 등 없이 해서 그런지 그냥 오늘 호흡이 힘들어서 그런지 잘 되질 않았다. 선생님은 딱 한 번 피드백을 주셨다. 발차기가 주가 되어야지 팔이 주가 되면 안 된다고. 음-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것도 어려운데 몸이 계속 꼬르륵 가라앉아 가누기도 힘들었다. 팔 돌리기를 양쪽 하고 나면 음-파-도 두 번이나 한 것인데 숨이 너무 차서 계속 멈춰야 했다. 팔 돌리기를 할 때는 몸을 못 가누기 때문에 중간에서 유턴해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연습할 때 한참 동안 교통 정체가 발생하기 때문에 나는 멍청하게 서 있기보다는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에서는 고개를 내밀고 발차기만 연습하기로 혼자 결심했다. 속도도 훨씬 잘 나아가진다. 음-파-음-파를 안 해도 되니 참 좋았다.


선생님은 계속 수영장 전체를 돌기만 하시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시진 않는 듯했다. 선생님의 지도 방식은 전체 분위기를 아주 크게 좌우한다. 다른 회원 분들도 덩달아 의욕이 없어 보였다. 재미가 없는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엔 정말 열정적인 분위기였는데.. 다음 주에도 계속 이 선생님이 해주시는 걸까? 그렇다면 토요일은 거의 자율 복습의 느낌으로 와야 할 것 같다.


마무리 체조할 때 레일 위에 누워서 발차기를 하고 허리를 마사지했다. 지난번엔 거북이 등 때문에 못 느꼈던 동작이라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시원하진 않았다. 샤워장도 무척 한산했다. 어느 자리에 설까 둘러보자 코너 쪽에서 샤워를 하고 계시던 어떤 할머니가 여기 와서 서라고 한다. 같이 샤워를 하자는 제안은 아니실 테고, 뭐지..? 할머니가 어리둥절한 내 눈동자를 읽고는 여기가 물이 잘 나오니까 여기 서라고~ 하신다. 수압이 정말 세고 수온도 뜨끈했다. 사람도 적어서 여유 있게 샤워를 즐기기 좋았다. 아- 쾌적하다. 그렇다고 기분이라는 수조 위에 낀 기름때가 쉬이 사라지진 않는 것 같다.


나의 몸이 무거운 데는 라면의 영향뿐 아니라 생리주기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몸이 수분을 저장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오늘 점심엔 잘 참았다. 마라샹궈를 시킬 뻔하다가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먹었다. 전과 두부 부침. 그다지 건강에 좋은 음식 같진 않지만 그래도 배달 음식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 몸에 좋아야 마음에도 좋다. 마음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바보처럼 아무것도 못하겠다. 수영이라도 꾸역꾸역 다녀온 나 자신을 칭찬해줘야겠다. 랜선 요가 선생님이 말하는 것처럼, 오늘 이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준 나 자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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