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by 속삭이는 물결

일요일, 수영이 없는 하루의 달콤한 휴식. 아침에 잠깐씩 깨다 폰을 만지다 다시 푹 잠들기를 서너 번 반복. 점심께 일어나서는 무기력한 기분에 싸울 힘이 샘솟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 며칠째 징그럽게도 쌓인 설거지를 거의 대부분 해치웠고, 오랜만에 고사리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유기농 스파게티 면보다 더 푸짐하게 넣은 고사리에서는 고소한 소고기 맛이 났다. 점심을 먹자마자 떠난 곳에서는 생각에 꼬리를 물게 하는 좋은 작품을 만났다. 저녁에는 아주 맵고 채소가 풍부한 요리로 영양 보충을 했으며 소화를 잘 시킨 뒤에 오랜만에 바 클래스를 따라 했다.


월요일, 드디어 수영 강습이 있는 요일이다. 이제는 수영장에서도 무난하게 잘 지낸다. 호흡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상한 현상 빼고는. 수영을 오래 한 지인은 호흡이 잘 안 되는 건 모두 마음의 문제라며 도인 같은 조언을 건넸다.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마음이 편해지려면 좋아하는 책을 읽고 햇살 좋은 날 식후 산책을 즐기고 명상을 해야 하는 걸까. 결국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아마도 아닐 거다. 그냥 물을 덜 무서워하게 되기. 물과 친해지기. 의외로 단순한 해결책일 거다. 태초의 엄마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신생아는 본능적으로 수영하는 법을 안다고 한다. 신생아를 물속에 살짝 던져놓으면 잠깐 허덕이다 금방 평온을 찾고 배영을 한다. 이 장면만으로 피드를 가득 채우는 외국의 수영 강사 계정을 본 적이 있다. 아기의 표정은 인류가 갈구하는 평화 그 자체였다. 나도 물이 아직 무서운 걸까. 아기 때 기억을 떠올리기엔 너무 나이가 든 걸까.


나는 분명 물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한 것 같은데, 왜 그런 진단이 나오는 걸까. 첫 주 토요일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호흡이 잘 안 되는 건 물이 무서워서라고. 가끔은 내가 의식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몸에는 괜찮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매우 자주 그렇다. 우리는 대부분 문제적 활동을 꾹꾹 참으며 버티고 해 나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병이 난다.


숨이 차다고 생각할수록 숨이 더 차오르는 것 같았다. 이제 발차기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고 고개도 충분히 숙이고 있다. 호흡만이 잘 안 된다. 음-을 조금 더 약하게 하라는 지난날의 선생님 말씀을 실천해보려는 시도조차 실패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이런, 또 마음의 문제다. 숨이 너무 차서 음-을 세게 해 볼 여력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가다 보니, 레일 끝에서 끝까지 편도로 달리는 데 약 2분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간에 쉬기도 하니까 고작 세 바퀴 도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호흡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파- 할 때 발차기를 더 세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원래는 음-과 파-의 발차기가 모두 균일하게 세야 하지만 아직 호흡이 익숙하지 않으니 상체가 떠 있어서 다리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동안에는 발차기를 더 세게 하는 것을 의식하라고 말이다.


고개를 밖으로 빼고 발차기로만 나아가는 연습도 이어서 했다. 호흡을 할 필요가 없으니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는 있었지만, 월요일이라 그런지 발차기가 일정하게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역시 백수도 월요일은 탄다니까. 아주 오랫동안 주 5일제로 살아온 인간의 근육에 습관으로 배어있는 것이다. 몸이 점점 더 가라앉는 느낌이 나고 밀려드는 파도에 타이밍을 잘못 맞춰서 코로 약간의 물을 들이마시기도 했다. 심각하진 않았지만, 살짝 매운맛에 의욕도 절로 꺾였다. 그래서 진퇴양난..


중간에 어떤 분이 왜 고개를 물속으로 집어넣지 않냐고 물으셨다. 발차기 연습을 하기 위해서 자주 하라고 하셨다고 설명해 드렸다. 그분은 처음부터 잘하셔서 이런 연습은 따로 안 해보셨나 보다. 이 연습도 세 바퀴 정도 왕복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호흡은 훨씬 편했지만 허리가 조금 아파왔다. 지금까지 곱씹으며 몸에 입력시키려고 했던 모든 코칭 포인트가 오늘은 어딘가 빗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 선생님은 거북이 등을 주시면서 팔 돌리기 연습을 지시하셨다. 왼팔 오른팔을 모두 하고 파-를 하거나 힘들면 한 팔씩만 한 뒤에 파-를 하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라고 하셨다. 분명 몸이 이상해질 테지만 해보는 데까지 해보라고 하신 것 같았다. 어쩌다 보니 레일 끝까지 갔다! 팔 돌리기를 하면서는 늘 중간 지점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와야 했는데. 거북이 등의 힘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무언가가 해제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팔 돌리기를 하면서도 발차기를 쉬어선 안 된다고 피드백을 주셨다. 이제 해볼 만하다, 싶을 때쯤 수업이 끝나버렸다. 수심이 제일 깊은 곳에 있을 때 마무리 체조 구령이 시작되어서, 중간 지점까지는 연습을 하면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물에 빠지니까.


숨이 차서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용을 쓴 걸까. 기운이 쭉쭉 빠졌다. 꽉 찬 샤워장에서 빈자리가 날 때까지 서 있는 동안에도,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뛸 수 있는 거리임에도 뛰지 않고 초록 신호를 보내고 버스를 보냈다. 집에 돌아와 호흡 잘하는 방법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너무 많이 내뱉지 말라는 게 요지였다. 그리고 '파'라는 호흡이 한글에서처럼 마냥 내뱉는 호흡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곧 집중력을 잃고 다시 시청하기를 나중으로 미뤘다.


무기력을 극복하려면 무기력한 이유를 통찰해보라는 글을 봤다. 나는 이 이유를 너무나도 오랫동안 생각해서 정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무기력을 이겨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카페인, 알코올도 일시적인 효과 외엔 부작용만 가득하다는 걸,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온갖 자기계발서적 조언이 난무하지만, 그런 조언을 보면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죄책감만 깊어질 뿐이다. 어떤 일이라도 잘 되면 그때는 당당하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허풍을 늘어놓을 수 있겠지.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루저의 궤변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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