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의심의 굴레와 그 위험성

by 속삭이는 물결

오늘은 서울시 시내버스 파업의 날이다. 파업을 응원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시내버스는 적당한 간격으로 자주 오갔다. 적당한 시간을 남겨두고 도착한, 평화로운 아침.


오늘도 거북이 등 없이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발차기 연습부터다. 이제야 보니 다른 분들도 자유형 발차기 연습을 할 때 두 손으로 킥판을 잡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연습을 하고 계셨다. 오늘만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건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같은 연습 과제로 훈련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편해졌다. 평등한 게 좋다.


발차기를 시작하자 여전히 숨이 차올랐다. 어젯밤 유튜브에서 본 호흡법을 열심히 떠올려 봤다. 음-을 약하게 하거나 숨을 참아봐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똑같이 숨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 고개를 얼른 들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도 이미 여러 번 건넨 똑같은 피드백을 말씀하신다. 숨을 너무 부-앙- 하고 세게 내뱉지 말 것, 고개를 너무 끝까지 들지 말고 턱까지는 물이 찰랑거리게 들 것, 어깨와 몸에 힘을 뺄 것, 팔은 쭉 뻗고 어깨는 나란히 할 것. 다 열심히 따라 해 봤는데도 왜 나아지질 않는 걸까.


두어 바퀴 돌고 나니 이제는 고개를 내밀고 발차기 연습을 하라고 하신다. 호흡을 안 해도 되는 꿀 같은 연습이다. 그런데 오늘은 약간 힘든 느낌이 들었다.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 걸까, 요즘 영양제 먹기를 게을리해서 그런 걸까. 쓰면서 생각해 본다.


그런 다음에는 팔 돌리기 연습이 시작됐다. 음- 한 호흡에 두 팔을 돌린 다음, 정면을 보고 파-를 하는 것이다. 숨이 여전히 너무 찼다. 선생님한테 숨이 너무 차서 힘들다고 하니 숨이 왜 차냐고 하셨다. 한 팔을 돌릴 때 음- 다른 한 팔을 돌릴 때 참기, 그다음 파-를 하라고 하셨다. 음-을 아무리 약하게 해 봐도 숨을 참아 보아도 여전히 질식할 것 같았다. 가다가 멈추기를 여러 번, 코로 얕게 물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 바퀴 반 정도밖에 못 돈 것 같은데 선생님이 밖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지난주에 예고하셨던 옆으로 숨 쉬는 방법을 배우나 보다. 선생님이 벽을 잡고 상체를 숙이더니 먼저 시범을 보이신다. 오른손잡이가 맞냐고 물으시더니, 오른손잡이는 보통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호흡을 하는 게 편하다고 하셨다. 왼팔을 먼저 돌린 뒤에, 오른팔을 돌리는데, 오른팔이 출발하는 동시에 고개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오른팔이 허벅지 옆에 도착하면 그때 파- 를 한다. 고개는 거의 왼팔에 기대듯이 사선 뒤를 바라보며 돌리고, 얼굴의 1/3 면적은 물속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팔이 뒤에서 다시 앞으로 돌아올 때 고개도 같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게다가 그렇게 지상에 있는데도 내가 어깨에 너무 많은 힘을 주고 있다고 한다. 왜일까. 나도 몰라. 어렵다.


이번에는 풀에 들어가서 벽을 잡고 연습을 해본다. 발차기도 없이 팔 돌리기와 숨 쉬기만 연습하는 건데도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약간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렇게 5분쯤 연습을 한 것 같다. 물속에선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그 이상을 했을 수도 있다.


선생님은 다른 초급반 분들에게 앉아서 평영? 발차기를 시키셨고, 안 그래도 나 말고는 세 분밖에 안 오셔서 레일이 여유로웠는데, 더 여유로워진 틈을 타, 내게는 팔 돌리며 걸어가기 과제를 내주셨다. 걸어가기가 더 어렵다. (실제로 중고급반 레일 할머니들은 중간에 걸어가기 과제를 받으시는 걸 목격!) 걸어가면서 왼팔 돌리며 음- 오른팔 돌리며 오른쪽으로 고개 틀어서 파-를 연습하는데 고작 걸어가는 것만 하는데도 숨 쉬기가 정말 벅차고 콧속으로 입속으로 물이 조금씩 들어와서 힘들었다. 오른팔을 돌리기 시작하자마자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어 파- 하며 숨을 들이마셔야 하는데 숨도 너무 차고 물은 물대로 들어오려고 하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어서 유튜브에서 보았던 연습 과제가 주어졌다. 왼팔은 킥판을 잡고 오른팔은 허벅지 옆에 붙인 채 몸을 아래로 향한 채 음- 발차기,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서 완전히 옆을 보게 기울인 채 파- 발차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눈과 귀로 예습한 동작을 하게 되어서 조금 신이 났지만, 역시 어려웠다. 선생님은 이것만 능숙해지면 이제 자유형은 쉬워질 거라고 하셨다.


사실 오늘은 수영장에 들어서기 전 샤워장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나는 조금 느리게 씻는 편이고, 늘 머리를 먼저 감은 뒤 머리를 묶어놓는 편이다. 바디워시가 머리카락에 닿아서 다시 씻어야 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집에서 씻을 때도 모발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한다. 머리를 다 감은 뒤에 묶어놓고 몸도 거의 다 씻었을 무렵, 두 할머니가 내 옆 자리에 섰다. 그런데 갑자기 한 자리 건너뛰어서 선 할머니가 구내방송이라도 하듯이 아주 큰 목소리로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머리를 꼭 감아야 해요~ 라며 이유를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설마 나를 겨냥해서 하는 말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머리를 매우 꼼꼼하게 감았기 때문에 당당한 마음으로 수영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께서 나에게 머리 안 감은 것 같은데?라고 하셨다. 감았는데요? 언제? 샤워하기 전에 감았어요.라고 하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수영장 물은 모든 사람들의 입과 코에 닿기 때문에 머리를 꼭 감아야 한다고 하셨다. 네, 감았어요. 나는 아랑곳 않은 척, 수모를 썼고, 수모는 어김없이 계속 빗겨 나갔다. 나도 모르게 아이씨, 하고 중얼거렸지만 그 할머니한테까지 들렸을진 모르겠다. 저 할머니는 내가 머리를 감지 않는 걸 본 적도 없으면서 왜 함부로 의심부터 한 걸까? 그것도 그렇게 큰 목소리로? 나 바로 옆에서 씻고 먼저 수영장으로 들어간 수영장 동료분께 증언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아니 누구라도 본인 몸을 씻으면서 남이 머리를 감는지 안 감는지까지 챙겨 보리란 확신도 없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여기서 저 할머니랑 언쟁을 벌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나는 저 할머니의 성미가 우리 할머니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이해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다음에 또 만나서 비슷한 시비를 걸어오신다면 어떻게 대꾸할 것인지도 10번 이상 생각하게 됐다.


이 해프닝은 오늘 하루 내 기분을 매우 침울하게 만들었다. 물론 수영을 배우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 집중을 못하고 힘겨워한 것 같기도 하다.


그 할머니의 얼굴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같은 시간대 수업을 듣는지가 궁금해 중급반 레일을 살펴보기도 했다. 어떤 할머니가 눈을 마주친 내 얼굴을 보곤 옆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을 가리키는 손짓을 하면서. 하. 학창 시절에나 했을 법한 신경전을 수영장에서 할머니들과 벌이다니. 피곤하다, 정말. 몇 달 다니고 말 곳이지만, 살짝 정이 떨어진 느낌.


아무튼 오늘은 선생님 한 분만 계신 날이었다. 내가 그 마지막 연습 과제를 수행하는 걸 가운데 레일 앞에서 지켜본 선생님은 내가 또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쭉 뻗어서 발차기를 한다고 하시며 이미 여러 번 본 흉내를 내셨다. 뻗쩡 다리로 힘들게 움직이는 모습. 그걸 본 중앙 레일의 할머니들이 웃음을 터트리셨다. 선생님의 열정적인 흉내가 단순히 웃겨서일 수도 있지만.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핵심은 하나다. 아, 제발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아니, 날 가장 가만히 내버려두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의심을 낳는다. 마치 거짓말처럼. 나는 거짓말을 무척 싫어한다. 그런 만큼 의심의 촉을 오랫동안 발달시켜왔는데, 그 의심이 오래 쌓여 바깥세상으로 표출하면, 그 의심은 원래 운명대로 불운으로 이어진다. 이런 내 의심의 사고 과정까지 의심하다 보니, 사실은 그 의심이 나의 착각이었는데 그 의심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인 게 아닐까 하는 자책도 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근 한 달간 품어 온 괴로움의 근원이다.


이 일을 잊고자 수영을 시작한 것인데, 또 수영을 하면서 의심의 굴레에 발목이 잡혔네. 참 별 일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5월에는 주 1회 진행되는 한국무용 수업도 들어볼까 고민이 됐다. 수영을 재등록하면서 수업 문의를 했다. 나는 몇 명이나 들으시냐고 물었을 뿐인데, 직원 분은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주로 듣는다고 하셨다.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나이가 있으신 분들과 또 얽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국무용 수업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작은 좌절.


그렇다고 침울함에 잠식될 수 없어. 수영 수업이 끝나고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직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며칠째 검색에 검색을 해오던 책을 찾기 위해서다. 일단 나 자신을 어떻게 잘 포장할 것이냐가 주요 목적. 나는 브랜딩, 마케팅, 새로운 시대의 업무 방식 따위를 아우르는 책을 찾아보았다.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됐지만, 어떤 면에서는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나와는 너무나도 정반대인 막무가내 스타일이어서 자괴감만 들었다. 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성공의 요건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람일까?


한참을 책을 읽다가, 춥고 배고파서 더 이상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왔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정말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지, 했지만. 나는 또 깊은 잠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저녁께 깨어나 이 글을 쓰면서, 도서관에서 수영 관련 도서를 단 한 권도 찾아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아니다, 나는 무슨 종류의 호더인가. 선생님의 설명과 유튜브 영상 몇 편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차피 나는 그 이상을 소화할 역량이 없다.


선생님의 마지막 설명을 생각해 보자. 선생님은 다정하게도 마무리 체조가 다 끝나고도 한 명 한 명에게 피드백을 주셨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처음에 뭐라고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는 하면 할수록 숨이 차고 코로 물이 들어온다고 조언을 구했다. 아니 투정을 부린 것인가. 선생님은 점점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니까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첫날 설명하셨던 것처럼 코로는 들이마시지 말라고 하셨다. 그럼 코를 막아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셨다. 입으로만 들이마시라고. 음- 하며 뱉을 땐 코로만 뱉고, 파- 하며 들이마실 땐 입으로만 들이마셔야 한다.


하지만 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그걸 세심하게 조절할 새가 없다. 코는 자동으로 움직이고야 만다. 평생 코로 숨 쉬며 살아왔는데 본능이 먼저 발동될 수밖에. 게다가 숨이 차는 그 타이밍에 말이다. 어제 영상에서 본 키친타월로 호흡 연습을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오늘 해야 할 일을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는 걸. 길게도 썼네. 참 쏟아낼 게 많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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