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by 속삭이는 물결

일요일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실 토요일 수업이 끝나고 불쾌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집주인의 연락이었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 누군가가 화장실에서 종종 담배를 피우며 전날 새벽과 전전날 새벽에는 천장을 향해 물건을 쳐서 쿵쿵거리는 소음을 계속 냈으며, 현관문을 쾅쾅 닫으며 다닌다는 확신을 가지고는, 내게 따지고자 연락해온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고 있던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의심이었다. 의심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나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으려는 집주인의 목소리를 붙잡고 화를 냈다. 내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아닌 존재하지도 않는 동거인을 의심한 것이니 기분이 나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이상 대꾸할 필요도 없는 무논리의 일관이었다. 공동주택에서의 예의를 지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 처사와는 정반대의 의심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괴롭고 허탈한 일이다. 바로 직전에 일했던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과 오버랩되며, 우울감은 마음 깊은 속까지 파고들었다. 머릿속으로는 종결된 일임을 되새기면서도 여파가 내 몸을 뒤덮었나 보다. 그동안 멀리하고자 했던 가공 식품에 손을 댔다. 그래 봤자 편의점에서 파는 인기가요 샌드위치, 새우 버거, 돈까스 김밥, 컵라면 따위다. 천천히 조금씩 나눠 먹긴 했지만, 내가 이 모든 걸 먹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낮에는 계속 잠을 잤고, 마음을 다스리고자 저녁께 반신욕을 성공적으로 한 뒤에도 나는 무언가를 더 먹어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있을 수업이 걱정이 되었지만, 나의 가라앉은 기분은 내 식욕을 잠식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찜질 팩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곤 배 위에 한참을 올려두었지만 소화가 금세 될 리는 없었다. 여전히 기분은 축 처져 있었다. 수영을 가는 날 중에 가장 몸과 마음이 무겁고 힘든 날이었다.


수영장에는 여유 있게 도착했다. 월요일 아침도 사람이 많은 날인가 보다. 절반쯤은 에어로빅 수업을 들으러 오신 분들 같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탈의실을 비집고 들어가 옷을 벗고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은 아직 한산한 편이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무거운 마음을 조금 덜어내는 듯했다.


오늘은 첫 번째 레일에 서는 날이다. 벽을 붙잡고 발차기 연습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스트레칭을 했다. 햄스트링과 고관절을 쭉쭉 늘려주었다. 정각이 되자 선생님이 체조를 시작했다. 체조가 끝나자 사람들이 줄지어 연습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꼴찌를 자청했다. 먼저 출발해봤자 어차피 추월당한다. 선생님의 별다른 코멘트는 없었다. 그냥 쭉 같은 연습을 반복했다. 글라이딩을 하고 숨 쉬며 발차기를 끝없이 하는 것. 오늘은 그냥 이렇게 반복 연습으로만 한 시간여를 꽉꽉 채운 것 같다.


처음엔 숨이 너무 차서 힘들었다. 수업 초반에는 늘 숨이 차는 것 같다. 호흡을 두 세트만 해도 헉헉대느라 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지만, 반복하다 보면 심폐지구력이 느는 듯했다. 다음날이면 초기화되는 것이 문제지. 그래도 지난주보다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게 느껴졌다. 지난주에는 너무 느려서 진로 방해꾼으로서 꽤 큰 활약을 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고 열심히 하다 보면 금방 풀 중간까지 가는 것 같았다. 엉덩이를 계속 드는 일도 의식했다.


중간에 받은 피드백 하나는 내가 여전히 오른발을 차지 않는다는 것이고, 왼다리만 차기 때문에 계속 몸이 오른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이것 외에는 별다른 코칭이 없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마무리 체조가 시작될 무렵, 선생님은 갑자기 나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레일 중간 지점에서 킥 패드 앞쪽을 꽉 잡고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발차기만 해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는 것이었다. 수심이 깊기 때문에 발차기를 멈추면 물속에 빠진다는 것을 명심하며 끝까지 가라고 하셨다. 열심히 전진했다.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아서 중간에 두어 번 선생님이 패드를 끌어 속도를 내주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데 멈추지 않고 끝까지 잘 도착한 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도착했더니 선생님이 벽을 잡으라고 하셨다. 나는 가까스로 벽을 잡고 고개만 겨우 빼꼼 내밀었다. 선생님은 발이 닿냐고 물으셨고 나는 겨우 닿는다고 대답했다. 다행이라는 듯 끄덕이시더니 이제 여기서 출발해서 중간 지점까지 가라고 하셨다. 벽에서 손을 떼고 출발하려니 허둥지둥 몸이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맨 처음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왔을 때 배웠던 출발 방법을 해보려고 했지만 30% 정도밖에 흉내 내지 못했다. 그래도 출발에 성공했고, 아까보다 조금 더 잘 나아가게 됐다. 중간 지점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발차기 연습은 중요하기 때문에 자주 해줘야 한다고 하셨다. 몸에 힘을 빼기 위해 글라이딩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글라이딩을 하는 동안에는 긴장이 덜 되기 때문에, 몸에 힘을 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글라이딩을 반복해보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몸에 힘 빼!라고 해서 몸에 힘이 빠지진 않으니깐 말이다.


오늘은 수영복 탈수기를 처음 사용해봤다.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큰 소리로 뭐라고 하신다. 여럿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질 못해, 제가 처음 사용해 보는 거라 잘 모른다고 하니, 그게 아니라 수영복을 골고루 펼치지 않으면 기계가 고장 난다는 것이었다. 기계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긴 했다. 나는 탈수기를 끄고 수영복을 피자 반죽처럼 퍼뜨리곤 다시 기계를 돌렸다. 아까보다 안정적인 소리가 났다. 수영복은 뽀송뽀송하게 잘 말라 있었다. 탈수기를 왜 이제야 처음 썼을까! 그동안은 낯을 가렸다고 해보자. (조금만 더 말리면 바싹해질 수영복을 보니 수영복 세탁 방법이 궁금해져서 커뮤니티에 검색해보기도 했다. 수영복은 수돗물에 담가 염소를 빼주거나 염소 제거 세제를 이용해서만 세탁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세탁기에 돌렸는데.. 이것도 모두 시행착오겠지. 삶처럼.)


나오는 길에 보니 할머니들이 재등록 전용 기계 앞에 줄을 서 계셨다. 슬쩍 돌아보니 수강료가 50% 할인된 금액이었다. 아, 65세 이상의 시니어에겐 더 많은 할인이 들어간다. 이게 복지구나, 싶었다. 수강료가 워낙 저렴한 덕분에 나도 이미 복지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말이다. 할머니가 되어서 동네 체육문화시설에서 다양한 즐길거리를 해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일까.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나이 들어서도 재밌는 인생을 살기 위해, 아직 더 열심히 버텨보자고.


열과 성을 다한 오늘의 수업. 컵라면을 괜히 사두었던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컵라면 생각이 났다. 기분은 여전히 다운이다. 컵라면과 어제 남긴 버거와 샌드위치를 함께 먹었다. 많이 먹었는데도 많이 먹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위가 밤새 커진 걸까. 어제 본 다이어트 관련 다큐 방송을 또 틀어놓고 먹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다가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정말 곤히, 꽤 오랫동안 낮잠을 잤다. 나는 지금 잠이 무척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바닥을 치고 나면 다시 오를 날이 있을 것이다.


혹시 이 우울한 기분의 원인이 생리 전 증후군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면서, 생리가 오면 어떻게 수영 수업을 갈지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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