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도 토요일은 알아본다. 치열했던 한 주가 끝나고 그제야 숨통을 트고 느긋하게 시작하는 하루, 여유로운 오후 햇살이 존재만으로 위로를 건네 오는 요일이다. 평생을 그렇게 지냈으니, 정오가 되면 배가 고픈 것처럼 몸에 익은 것이다. 늦잠이 허용되는 날이지만, 왠지 눈이 일찍 떠질 때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다른 날이었다면 침대 속에 그대로 누운 채 폰을 만지다가 다시 잠들곤 했을 것이다. 이번 주부터는 다르다. 오늘도 설레는 수영 강습이 있다. 주 6파 초보의 야심 찬 스케줄!
거리도 유난히 따뜻하고 여유롭다. 타야 할 버스도 함께 여유를 부린다. 둥둥 뜬 기분. 버스가 늦어지자 또 마음이 조급해진다. 토요일 아침이니까 수영장에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잘못하면 샤워할 자리가 없을 수도 있겠는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불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향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탈의실이 한산하다. 샤워장에 들어갔더니 훨씬 더 한산하다.
화목에 나오시는 선생님이 토요일에는 안 나오신다고 했다. 그럼 누가 가르치는 걸까? 수업 시작 3분 전인데도 수영장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도 없었다. 일단은 가장 끝 레일로 향했다. 한쪽 끝 레일만 넓은 게 아니라, 끝에 있는 레일은 양쪽 다 넓구나, 안 보이던 게 보인다. (수영장 입구 계단에 놓인 목욕 바구니도 보였다. 분실 위험 때문에 이곳에 놓고 들어가는구나, 뒤늦은 발견과 깨달음이었다. 여유가 있어야 시야도 넓어지는구나.)
끝 레일로 갔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킥 패드 없이는 연습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타일 끝에 걸터앉아 발차기나 연습해본다. 어제 처음으로 식간에 단백질 쉐이크를 먹어봤는데 그 덕분인지 아침에 체중이 살짝 줄어 있었다. 내 몸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골반 스트레칭도 열심히 해줬더니 다리도 부쩍 날씬해져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거의 매일 상주하신 선생님이 등장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네셔서 나도 안녕하세요 하고는 멋쩍은 마음이 들어 바로 물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할머니가 먼저 미소를 보이셔서 어색한 인사를 했다.
물속에서도 딱히 할 게 없어서 괜히 다리 스트레칭과 고관절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준다. 수업에 겨우 3분 일찍 왔을 뿐인데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가다니!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니, 드디어 체조가 시작되었다. 체조가 거의 다 끝나가는데도 선생님은 보이질 않아서 오늘은 저 선생님이 다 가르쳐주시나 보다, 싶었는데, 체조가 끝나고 사람들이 레일 앞으로 몰려오자 젊은 선생님이 등장한다. 여기서 본 선생님 중에 가장 젊다. (그리고 희한하게 모든 선생님이 남자다.)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자유형 2바퀴, 배형 2바퀴를 돌라고 하셨다. 속도가 나지 않아 두려웠던 나는 구석에 서서 모든 분들을 먼저 가시라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처음 오셨냐고 물으신다. 이번 주에 처음 왔는데 앞으로 잘 나가질 않는다고 했다. 일단은 절반까지 가서 돌아오는 걸 해보자고 하셨다. 숨은 숨대로 차고 발차기는 이상하고 몸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유턴해서 돌아오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걸어서 돌아가라고 하신다. 또 좌천인가. 선생님은 내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아직 물이 무섭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처음 듣는 코멘트다, 유레카. 그리고 맞는 말 같다.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니까 계속 멈추는 거겠지?
이번에는 벽을 잡고 발차기를 연습해보라고 하신다. 손가락으론 타일 끝을 잡고 팔꿈치는 벽에 바짝 붙여서 몸이 뜰 때까지 기다리기. 그런 다음 발차기를 연습한다. 선생님은 내가 엉덩이를 띄워야 한다고 코칭하셨다. 이건 처음 듣는 지적이다! 허벅지로 발차기를 하는 건 맞지만 너무 힘을 많이 줘서 다리 전체가 경직되면 안 된다. 다리 힘은 무릎을 펴는 정도로만 줘야지 그 이상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리에도 힘을 빼고 상체에도 힘을 빼야 한다. 나는 되물었다. (상체에 해당하는) 팔뚝에 너무 힘이 들어가요. 그건 지금 벽을 잡고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상체는 몸통이었고, 이 몸통에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복근이랑 코어 전반 근육에는 힘을 꽉 주고, 다시 한번 엉덩이는 높이 들고! 몸이 가라앉지 않도록! 이 발차기 연습은 30초씩 하고 잠시 쉬고를 반복해, 20분까지 하라고 하셨다. 물속에서 시간은 정말 빠르게 간다.
중간중간 팔뚝이 너무 아파서 팔 스트레칭을 막 했더니 선생님이 팔이 많이 아프냐고 물으셨다. 당연하죠 선생님. 아무래도 5일째 하고 있는 거라 더 아픈 것 같았다. 나는 팔을 펴고 연습할 순 없냐고 물었는데, 그럼 몸이 안 뜰 걸요?라고 하셨다. 수영 선생님들은 안 되는 경우를 꼭 몸으로 체득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 번 팔을 펴서 해보세요,라고 하셔서 팔을 쭉 폈더니 전신이 촤라락 가라앉았다. 어떤 자세를 하면 몸이 뜨고 안 뜨고가 정해져 있는 게 참 신기하다. 새삼.
이번에는 킥 패드를 잡고 나아가면서 발차기 연습하기. 2분만 쉬다가 출발하라고 하셨는데 그 사이에 교통 정체가 발생해 훨씬 더 오래 쉬게 됐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지적 사항을 약간 동냥질했다. 팔을 움직일 때 등 뒤에서 위로 올리면 어깨가 많이 아플 거라고, 등 뒤에서 옆으로 움직이면서 앞으로 와야 한다고 하셨다. 손바닥인지 손등인지가 하늘을 봐야 한다고도 하셨다. 이건 초급반 전체가 함께 듣고 있었다. 우와, 나는 저걸 언제 배울까? 궁금하긴 하지만 조급하진 않다. 그저 수영이란 배울 게 무궁무진한 분야구만, 하는 생각뿐! 어떤 할머니는 자기도 그렇게 하면 안 되냐고 묻자 회원님은 이미 잘하시니까 팔 꺾기를 하셔도 된다고 대답하셨다. 내가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다. (지금 이 일기를 쓰면서 기분 좋게 말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다. 음-파-를 반복하며 엉덩이는 들고 발차기는 쉼 없이. 역시나 잘 안 된다. 물속에서 버티는 건 어떻게 해보겠는데, 파-를 하자마자 너무 숨이 차서 무엇도 할 수가 없다. 계속 멈추기 일쑤. 유턴을 하고 돌아오자 선생님이 또 코칭을 주신다. 엉덩이가 계속 가라앉는다고. 호흡을 할 때 얼굴을 다 들 필요가 없으니 조금만 들라고. 그리고 다리가 계속 안쪽으로 엉키면서 차진다고. 수영에선 그걸 가위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고장 난 가위의 가위질인가 보다. 그리고 며칠째 계속 듣고 있는, 왼쪽 다리만 차고 오른쪽 다리는 영 차질 못한다는 지적도 하셨다. 저는 계속 오른 다리도 열심히 차고 있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내가 이 말을 한 걸 기억하셨는지 나중에 수업이 끝날 때쯤 연습할 때는 내가 하고 있는 느낌을 믿지 말고 물 밖에서 보는 사람이 보는 게 맞다고 그걸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선생님은 그 사이에도 돌아오는 회원 분들에게 한 명씩 코칭을 해주고 있었다. 언제 한 명씩 다 보고 계신 건지 정말 신기하다. 이 선생님은 설명을 해주시면서 잘 웃는 편인데, 듣는 사람도 덩달아 웃게 만드는 것 같다. 웃으면 긴장도 풀리고 더 편한 마음으로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 바퀴 돌고 돌아온 수강생 분들이 먹이를 기다리는 참새처럼 "선생님 저는요? 저는요?" 하면서 지적 또는 칭찬을 바라고 있었다. 선생님의 열정적이고 친절하고 밝은 (게다가 젊은) 기운이 이렇게 면학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니. 나는 순간 웃으면서도 정확하게 지적해주시는 내 최애 중 하나이신 무용 선생님을 떠올리며, 티칭의 힘과 유쾌함의 힘을 생각했다.
계속해서 연습을 하다 보니 처음만큼 숨이 많이 차진 않았다. (그럼에도 둘째 날 선생님이 내 폐가 건강한 거라고 말씀해주신 건 아무래도 정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내가 여전히 엉덩이를 들지 못하고(그런데 이건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지적하셨다, 이 선생님은 엉덩이 들기를 중요시하는 것 같았다.) 숨쉬기(파-)를 할 때 발차기를 멈춰버린다고 하셨다. 몸에 여전히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발차기를 내가 계속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실제로는 안 하고 있거나 매우 느리게 한다는 걸 계속 생각하면서 발차기를 쉬지 않고 해야 한다고 하셨다. 몸에 힘을 주는 것도 발차기를 멈추는 것도 아무래도 물이 무서워서인 것 같다고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내가 너무 못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허리춤에 부표를 차고 해보라고 하셨다. 벨트를 최대한 엉덩이 쪽으로 차서 꽉 매야 한다. 부표(정확한 명칭 아님)를 차고 하니 훨씬 편하다. 이번에는 호흡이나 발차기를 멈추지 않고 중간지점까지 쭉 달려 나갔다. 뿌듯했다. 내가 잘해서 잘된 건 아니지만, 발차기를 멈추지 말라는 코멘트는 매우 명심했으니까!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여 분 정도만 더 있으면 곧 끝날 시간이다. 어쩜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까.
선생님은 다시 한번 발차기가 원래 제일 어렵고 힘든 거라고 알려주시면서,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몸에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셨다. 대뜸 그만둔다는 사실을 고백하신 선생님은 당신께서 다음부턴 봐줄 수 없으니 늘 어떤 동작을 배우건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걸 떠올리라고 하셨다. 오늘 처음 뵈었기 때문에 어디 좋은 데 가시냐 묻기도, 퇴사를 축하드린다고 말씀드리기도 뭣해서 어떤 말도 못 해 드린 게 조금 죄송하다. 나는 놀란 눈을 하고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친절한 선생님이 오늘 처음 보자마자 이별이라니. 아쉬운 마음일 뿐. 다른 수강생 분들도 아시려나.. 할머니들의 반짝이던 눈이 생각난다. 이 소식을 알았다면 무척 슬퍼하셨을 텐데. 이곳은 선생님 이름이 공개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떠나고 새로 만나는 일도 그냥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걸까.
마무리 체조를 하고 벽에 붙어 발차기 연습을 조금 더 하다가 수영장을 떠났다. 아무래도 수영 유튜브를 많이 보면서 심상 훈련을 많이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월요일 아침에 두려움만 이겨낼 수 있었어도 오늘이 6일째였을 텐데, 아쉽다. 이제 일요일 하루는 건너뛰고 다시 월요일부터 재시작이다. 그동안 홈트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오늘은 정신이 어디 가있는지 일기가 영 노잼이다.. 쓰면서도 노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