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무료하다. 버스가 오기로 한 시간보다 더 늦게 올 때는 더더욱. 이제 겨우 나흘 차인데 매일 가고 있는 덕분인지 2주는 다닌 듯한 기분이다. 오늘은 또 어떤 걸 배울까.
분명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는데 탈의실과 샤워장이 배로 붐빈다. 인파를 뚫고 수영장으로 진입했다. 생각보다 여유가 있는 풍경이다. 그저께 본 수강생들도 먼저 물에 들어가 몸을 푼다. 다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하는데 나는 왠지 부끄러워서 연습을 할 자신이 없다. 물밖에 서 있는 것도 이상하고.. 물안에서 멀뚱멀뚱 서 있으면서 몸을 조금 움직여본다. 5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체조가 시작됐다. 물속에서 하는 체조는 뭔가 신기하면서도 재밌는 동작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원탑은 상체를 숙여서 어깨를 흔드는 동작이다. 일단 물속에서 무게 중심을 제대로 잡고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아 바보 같은 기분이 매우 자주 든다. 특히 무릎 돌리기나 골반 돌리기를 할 때면 내 몸이 저 멀리까지 나갈 것만 같다. 바닥을 손으로 짚고 올라와서 박수 두 번씩 치는 건 언제쯤 익숙해질까? 남들 10번 할 때 나는 아직 5번 정도밖에 못 한다. 사실 하기 싫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성인 취미란 이래서 위험하다, 내 멋대로 하려는 요상한 마인드..
가만 보니 첫 번째 레일이 가장 넓은 것 같다. 체조가 끝나고 킥 패드를 한 명씩 나눠 갖는다. 나는 3번 타자였다. 선생님이 초보인 나를 못 알아본 건 아닐 텐데 별 코멘트가 없어서 그냥 줄 선 순서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날 여기 선 사람들 다 비장해 보여.. 사람 수도 꽤 많았다. 내가 무척 민폐를 끼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어제도 배우고 그제도 배운, 글라이딩을 하면서 발차기를 반복하는 일. 속도가 정말 안 나간다. 뒷사람에게 벌써 미안해진다. 얼마 못 가다 보니, 사람들이 알아서 나를 앞질러 가운뎃길로 지나간다. 공간이 넓은 덕분이다. 알아서 비켜주시니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물이 점점 깊어지기에 나는 멈춰 서서 유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끝없이 줄지어 지나가기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3명, 4명을 다 보내고 끼어들자, 하며 가운데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나를 보고 가운뎃길로 쭉 걸어서 앞으로 가라고 하신다. 퇴장당하는 건가? 아니면 물이 너무 깊어 보여서 조금 더 앞으로 가라는 걸까? 걷는 속도도 너무 느리다. 나도 나 자신이 답답해요. 몇 걸음 못 갔더니 선생님이 다시 글라이딩 발차기를 해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했다. 나는 분명 했는데, 몸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숨이 차서 멈추자, 선생님이 이제 앞까지 쭉 걸어서 가라고 하신다. 쭉 걸어서 앞까지 왔더니 나오라고 하신다. 아, 퇴장이다.
나와서도 멀뚱거리니까 유아 풀로 가라고 하신다. 암요, 그래야지요. 이렇게 좌천이다. 킥 패드를 들고 유아 풀로 직진. 선생님의 지시대로 타일 끝에 걸터앉아서 위로 발차기 연습을 한다. 몇 번 하고 나니, 다시 가운데로 가서 그저께 배운 엎드러 뻗쳐 자세로 발차기를 해보라고 하신다. 벌서는 건 아니라고 나름 농담을 치신 것 같은데 발차기 동작 설명을 바로 이어하셔서 귀 기울여 들을 새도 없었다. 연습할 때는 힘차게 세게, 진짜 풀에서는 작고 빠르게. 그저께도 들은 설명이라 정말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이게 들을수록 헷갈린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하냐? 힘차게 세게 빠르게 하라고 하신다. 헷갈리는데요..? 일단 연습이 더 중요하니..
그저께 설명하신 것처럼 몸은 앞으로 나가려고 해야 하고 발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계속 연습을 하다 보니 허리가 너무 아프다. 그럴 때마다 등허리를 말아서 긴장을 완화해보려고 했지만, 동작을 다시 시작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허리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고 싶지만 유아 풀엔 나 혼자만 있어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혼자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다년간의 운동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허리가 아픈 이유는 복근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다. 게다가 엉덩이도 분명 더 빠져 있을 것이다. 천천히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본다. 엉덩이가 빠지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일자로 만들고 코어에 제대로 힘을 주자. 흠.. 이게 아닌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몸은 더 힘들지만 혼자만의 공간에 있으니 교통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내가 안 되는 동작과 자세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마음은 되려 편하다.
그 와중에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과제는 발차기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빠르고 힘차게. 왜 빠르고 힘차게가 잘 되지 않을까? 나름 무용을 몇 년 동안 취미로 배우면서 웬만한 다리 동작은 해봤고 완벽하게는 못하더라도 못하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다리를 추처럼 흔드는 발랑수와 동작이나 드미 롱 동작을 떠올려보지만, 뭔가 연관성이 느껴지진 않는다. 아, 그럼 이걸 차라리 쁘띠바뜨망이라고 생각해보자. 쁘띠바뜨망과도 닮은 구석은 별로 없다. 그럼 바튀라고 생각해볼까? 다리를 살짝 안짱으로 모은 채 빠르게 차는 동작이다. 이렇게 상상했더니 발차기가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가만히 있던 상체도 이제 앞으로 나가려는 것 같다.
그리고 어젯밤에 찾아본 수영 유튜브 속 꿀팁도 떠올려봤다. 발이 마치 부채처럼 폈다 굽혔다를 반복하면 발차기가 훨씬 좋아지고 속도도 빨라진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물고기 꼬리처럼. 그 팁을 상상하면서 쁘띠바뜨망을 속으로 계속 외치다 보니 동작이 훨씬 매끄러워졌다. 마침 선생님이 돌아오셨고,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번에는 수심이 가장 깊은 곳으로 가서 글라이딩을 반복하는 연습. 이번에는 고개를 먼저 숙이고 음- 상태로만 글라이딩을 해본다. 출발한 직후에 고개를 입수하는 게 아니라, 고개를 먼저 물속에 넣고 출발을 하는 것이다. 살짝 달라진 방법에 약간 혼란이 왔지만, 시키는 대로 해본다. 그저께 들었던 지적이 한 번 더. 점프가 아니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 다른 동작은 안 하고 글라이딩만 하면 무난하게 칭찬을 듣는 편인 것 같다. 글라이딩을 하면서 1/2 지점까지 가고, 한 번 더 해서 1/2 지점까지 가라고 하셨는데 2/3 지점까지 가버렸다. 아무튼 잘했다는 말과 함께 이제 발차기도 더해본다. 고개 숙인 채 글라이딩을 하고 속으로 2초 정도 세거나 다리가 물 위로 뜨는 걸 느낀 다음 발차기를 하는 것이다. 발차기는 쉬지 않고 반복해야 한다. 어금니 꽉 물고!
다시 발차기가 어그러진다. 마구마구 어그러지고, 몸이 균형을 잃고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내가 왼다리만 열심히 차고 오른 다리는 잘 못 찬다고 한다. 어제는 분명 왼쪽이 찌그러져있다는 코멘트를 들었는데, 왼다리에 집중한 탓에 오른 다리가 버려진 걸까, 아니면 어제와 똑같이 하는데 선생님의 설명 방식이 다른 걸까? 어쨌든 반복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선생님은 글라이딩을 하고 발차기를 하면서 벽 끝까지 가보라고 하셨지만, 발차기를 쉬지 않고 중간 지점까지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발차기를 왼오왼오왼오 정도만 하고 나면 다리가 푹 가라앉아서 발끝으로 땅을 짚고 다시 출발해야만 했다. 선생님의 기대치와는 완전히 다른 용법. 선생님은 힘들어도 쉬지 말고,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발차기를 열 번씩 더 한 다음 올라오라고 말하셨다.
저기, 한 번에 열 번 채우기도 힘든데요?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차라리 선생님이 있을 때 처음 한두 번 해본 게 나았다. 혼자서는 하면 할수록 이상해졌다. 아까 연상법으로 활용했던 쁘띠바쁘망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서 글라이딩하고 발차기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하면 할수록 몸은 찌그러지고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선생님은 분명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왕복으로 왔다 갔다 하라고 하셨는데, 나의 한계점은 땅을 살짝 딛고 재출발하는 치팅을 해서도 겨우 2/3 지점이다. 나머지 1/3 지점은 걸어서 끝까지 가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한 번은 중간 지점에서 약간 더 앞으로 가서 멈추게 됐는데, 그 정도 걷는 게 너무 귀찮은 거다. 그래서 반 정도만 더 가보자고 생각하고 글라이딩을 했다. 약간 잘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마자 꽈당! 머리를 박고 말았다. 킥 패드가 물이 아닌 다른 곳(타일)으로 도달한 걸 알아채지도 못한 채 머리가 먼저 벽을 들이받고 만 것이다. 아프지 않았냐고? 당연히 아팠다. 근데 그 순간을 다른 선생님에게 포착당했다. 정수리를 감싸며 고개를 드는데 다른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너무 창피해서 선생님이 모른 척해주길 바랐는데, 이쪽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괜찮냐고 물으신다. 네, 괜찮아요, 선생님. 오늘 처음 보는 그 선생님은 내가 한 번 더 글라이딩과 발차기를 하는 걸 보시더니 (해보라고 시키신 것 같은데 필름이 끊긴 것 같다) 나더러 "수영 빨리 배우고 싶어요?" "배워서 수영 선수 할 거예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두 번 다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필름이 끊겨서 정확히 뭐라고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가 열심히 하려는 게 보이는데, 마음이 더 앞선 것 같다며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보라고 하셨다. 그 와중에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에 물을 마셔버려서 콜록대고 있었다. 또 마셨네, 맛있냐..
선생님은 침착하게 나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셨다. 내가 너무 열심히 하려는 마음 때문인지 다리부터 발끝까지 너무 쭉 뻗어서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서 잘 나아가질 않는 거라고. 어젯밤에 본 그 유튜버와 똑같은 설명이다. 다리가 분절이 되어서 더 자연스럽게 굽혔다 펴면서 움직여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그렇게 안 하고 있었나? 무용을 연습할 때 버릇이 몸에 밴 것 같은데, 그걸 나의 지나친 의욕으로 봐주시네. 무용할 때는 끝까지 펴는 게 중요한데, 물론 끝까지 펴는 걸 늘 못해서 지적을 많이 받았더랬다. 수영에선 그걸 반대로 유연한 방식으로, 물고기 지느러미, 유연한 오리발처럼 움직여야 한다. 무용에서 폴드브라를 연습하듯이 말이다. 무용에선 튼튼한 하체와 코어에 하늘하늘한 상체 움직임을 구현해야 하는데, 수영에선 그게 반대인 걸까? 상체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한 채 다리를 한들한들 움직여야 한다고. 새로운 선생님의 코멘트를 듣고 연습을 하니까 바로 잘 된다. 역시 선생님을 다양하게 만나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계속 듣던 지적도 똑같이 해주셨다. 왼쪽 다리는 많이 차는데 오른쪽 다리가 잘 안 차진다고. 오른쪽 다리를 더 힘 있게 차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왜 안 되는 걸까요?
너무 뻣뻣하지 않은 다리를 상상하면서 오른쪽 다리를 신경 쓰면서(하지만 영문 모름) 다시 연습에 매진. 원래 담당 선생님께서 돌아오셨다. 이번에는 고개를 든 채 글라이딩을 하면서 발차기를 연습해보라고 하신다. 아까 한 건 음- 발차기 연습, 지금 하는 건 파- 발차기 연습이다. 고개를 들면 하체가 뜨는 힘이 없어 다리를 움직이는 게 훨씬 무거워서 발차기가 어려워지지만, 발차기만을 연습하기엔 이 방법이 좋다고 하신다. 발차기 바보인 나는 시키는 대로 한다. 대신 킥 패드는 더 앞으로 잡을 것. 킥 패드를 앞으로 잡아서 물을 꾹 누르는 느낌을 주자 다리가 뜬다! 대신 허리는 다시 아프다.
아까 그 선생님이 잠시 들러서 나의 상태를 잠시 봐주셨다. 고개를 들고 반복 연습을 하고 있자, 상체를 들면 하체가 뜨는 힘이 부족해 더 어려워진다는 원리를 다시 설명해주셨다. 설명을 하시다가 내가 일부러 그 연습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신 것 같다. 여전히 오른쪽 다리의 차는 힘이 부족하다며, 천천히 연습하라는 말씀에 감사하단 대답을 하곤 다시 연습에 매진. 두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체를 쓰는 게 훨씬 더 어렵다. 나 자신이 더 바보 같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다시 등장해서 이번에는 풀을 세로 방향으로 쓰면서 저 끝까지 가보라고 하신다. 잘 될 리가 없다. 저 끝까지 갔더니 자리를 떠나신 줄 알았던 선생님이 어제 본 그 조랭이 떡 모양의 패드를 들고 돌아오신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무작정 발차기만 시키니까 답답하시죠? 하면서 어떤 느낌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고 연습하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르다고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그래서 그 느낌을 알기 위해서 조랭이 떡 모양의 패드를 허벅지 사이에 끼고 발차기 연습을 다시 해보자고 하신다. 조랭이 떡 패드는 손으로 잡는 게 아니라 다리 사이에 끼는 거였구나, 하는 새로운 배움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조랭이 덕분인지 다리가 훨씬 더 잘 뜨고 발차기도 안정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도 훨씬 좋아졌다. 우와, 이거 되게 좋은 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선생님은 이제 느낌을 알았으니 다시 조랭이 떡 없이 가보라고 하신다. 조랭이 떡을 끼면 느낌을 알긴 좋지만, 허벅지 아래만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발차기 연습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신다. 그래서 조랭이 떡 없이 발차기 연습을 다시 해봤다. 여전히 잘 되지는 않지만, 약간은 나아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연습에 매진한다. 아까 머리를 꽝 부딪힌 덕분인지 헛웃음이 막 터져 나온다. 조랭이 떡의 느낌도 이제 까먹어버렸다. 연습을 하면서 혼자 빵 터져서 실실 대고 있었더니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함께 웃으신다. 이럴 땐 물속이라 마스크가 없는 상황이 난감하다. 마스크 속에서 숨어서 웃고 싶은데! 선생님은 발차기가 원래 힘들다고 위로 같은 설명을 곁들여주셨다. 몸이 계속 흔들린다고 하니, 처음엔 원래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고. 그러니까 연습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연습을 하다 보면 발차기도 안정화되고 몸도 흔들리지 않게 될 거라고.
선생님은 발차기 연습이 중요하긴 하지만 50분 동안 발차기만 연습하면 재미가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시계를 가리킨다. 벌써 정각으로부터 50분을 띄우고 있는 시계. 이제 끝날 시간이니 마무리 체조를 하러 가라고 하신다. 고개를 들어 보니 사람들이 정면을 바라보고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다. 멀리서 보니까 머리만 물 밖으로 빼꼼 낸 채 한 지점을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나는 선생님에게 왜 발차기가 잘 안 되는 건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정확히는 어느 부위의 근력이 부족한 거냐고. 허벅지 근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하시기에, 그게 앞 허벅지냐고 되물었다. 선생님은 허벅지 뒷근육의 힘도 중요하다고 하신다. 그러자 지상으로 올라가 정리하려던 발걸음을 제지하곤 다시 과제를 내주신다. 물속을 저 끝까지 뛰어서 왕복 완주하라고 하신다. 원래도 달리기는 젬병인데, 물속이라 훨씬 더 느리고 굼뜬 움직임으로 허우적거렸다. 선생님은 근력이 좋다면 훨씬 더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50분 내내 발차기만 하면 심심하니까 가끔 이렇게 뛰어다니는 운동도 해보라고 알려주시면서 말이다. 지상에서도 엎드려 발차기 같은 연습을 하면 좋다고는 하셨지만 너무 빠르게 대충 말씀하셔서 (아무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거란 걸 예상하신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냥 혼자서 웹 검색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지금 수영만이 삶의 목표인 백수라 열심을 다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게 마음뿐이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문제지만..
마무리 체조를 하러 물속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는데 함부로 끼어들면 실례일 것 같아 망설인다. 그냥 지상에서 스트레칭을 따라 하기로 하고 뻘쭘하게 서서 상완근을 늘리는 동작을 해본다. 몇 동작 안 했는데 체조가 끝이 났다. 물속에는 충분히 있을 만큼 있었다. 그냥 샤워장으로 바로 가기로 결심한다. 입구 근처에 서 계시던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다.
금요일이라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인가? 아까보다 훨씬 더 붐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씻다 보니, 다음 수업을 위해 오신 분들이 자리가 없어서 서성일 정도로 북적거렸다. 코로나고 나발이고 다들 신나게 수다를 떨면서 씻고 계신다. 집단 감염이 일어나도 이제는 역학 조사도 하지 않을 테고, 뭐 될 대로 돼라. 내 옆에 서신 할머니께서 내게 말을 거신다. 내가 개인 지도도 받고 좋겠다며 약간 신기해하는 눈치셨다. 아 제가 이번 주에 처음 등록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오늘이 4일 차거든요. 그랬더니 자기가 여길 20년을 다녔는데 선생님들이 개인 지도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으잉? 전혀 그럴 것 같진 않은데.. 선생님이 내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좋게 보셔서 개인 지도도 해준 것 같다며, 나중에 커피라도 사드려야겠다고 하신다. 응?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고급 선생님께서 내가 머리를 찧는 걸 보고 오셔서 봐주신 걸 보고 하시는 말씀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선생님께서 이곳에서 20년 넘게 근무하셨다는 의미인가? 아무래도 앞뒤가 안 맞고 이상한데?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나만 너무 못해서 진로방해죄로 나머지 공부를 한 격이지만, 단체 수업 도중에 개인 지도를 따로 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긴 하다.
오늘은 조금 더 익숙해졌는지, 내가 풀장을 일찍 떠난 덕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귀가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다시 귀찮아서 머리에 린스도 안 하고 몸에 로션도 안 바르고 머리만 대충 말리고 나오긴 했다. 로션은 집에 와서 발랐다. 수영은 나를 부지런하게 해. 수영이 너무 재밌어서 취직을 일찍 하게 돼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살짝 든다. 구직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 주제에 말이다. 다음 달까지는 마음 놓고 수영에 전념해볼까, 하는 나태한 생각도 한다. 동시에, 오늘 오전에 송금한 월세도 떠오르고. 취직하면 새벽반이나 저녁반을 다녀야 할 텐데, 새벽엔 일어날 자신이 없고 저녁은 시간이 안 맞을 텐데. 의미 없는 잡념의 연속. 쓸데없는 걱정은 뒤로하고 봄맞이 옷장 정리나 하자.
이렇게 길게 쓰는데도 선생님이 알려준 팁이나 지적 사항을 꼭 몇 개씩은 빼놓는다. 오늘 있었던 일인데도 일의 앞뒤 순서나 정확한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많다. 한 시간의 경험을 무려 두 시간이라는 시간에 걸쳐 풀어내고 있는데. 기록이란 얼마나 주관적인 일인가를 생각하며. 우선은 내일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