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부터 생각했다. 어서 내일이 와서 수영을 다녀오고 집으로 와 누워있고 싶다고. 천상 게으름뱅이의 발상이다. 나는 지금 몸이 지친 게 아니라 마음이 지친 거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지만,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여드름 하나라도 지독한 놈으로 잘못 걸리면 살짝 착색이 되거나 자국이 남곤 한다. 근육을 다치건 인대를 다치건 몸의 어디를 다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상처는 생기게 돼 있고, 상처는 흉터로 남을 운명을 떠안은 채 생긴다.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다루고 치료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한 가지 터득한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몸을 어딘가에 몰입시킴으로써 마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운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고 건강이라는 보상까지 가져다준다.
지친 마음을 가득 떠안은 채 잠들었지만, 의외로 일찍 잠들었고 요즘에 비해 숙면을 취한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많이 괴롭지도 않았다. 더 일찍 나가서 준비하자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건강한 하루의 시작이다. 지각도 곤란하지만 너무 일찍 가는 일도 내키진 않는다. 여유롭게 길을 나섰고 가는 길에 애플 워치가 있으면 수영장에서도 시간을 볼 수 있고 운동량도 체크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아주 느리게 가는 버스를 탄 덕에 수업 시작 20분 전쯤 도착했다.
훨씬 익숙해진 탈의실 풍경. 제법 능숙하게 샤워실로 향해 수건은 입구에 걸고 샤워장에는 세면도구를 가져다 놓고 샤워를 시작했다. 매일 가져갔지만 귀찮아서 바르지 않은 바디로션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바디로션을 발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안 봐도 여유롭게 남았을 테지만, 샤워장에 남은 사람 수가 적어지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누구보다 일찍 들어가 있고 싶은 생각에 수영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수영장 입구 계단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앞 수업이 아직 덜 끝난 모양이다. 어제는 마무리 운동의 존재를 알지 못해, 마무리 운동을 따라 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나오는 실례를 범했다. 다음 수업이 벌써 시작된 건데 혼자 알지 못했던 것인가 하고 말이다. 킥 패드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발걸음을 떼자마자 선생님이 모두들 수고하셨다며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냥 수업을 일찍 땡땡이친 불량 학생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체조 전에 집에 간 사람들도 많았다.) 수업 시간이 끝나도 마무리 체조를 한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앞 수업 수강생들의 박수 소리가 끝나고 나도 사람들을 따라 물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4~6번 레일이 초보자 레일일 것이다. 6번 레일로 들어가기 전 시간 여유가 있는 듯해 고관절 운동을 실시했다. 그저께 한의원에서 배운 제기차기 운동이다. 약해져 있는 고관절 근육을 키우는 데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아침저녁으로, 수영 전에도 꼭 하라고 해서.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답답하지만. 기다리던 도중 그저께 본 젊은 남성 수강생이 갑자기 코를 풀고는 타일 위에 비벼댄다.. 네? 제가 지금 뭘 본 거죠? 아무리 수영장 특성상 모두의 타액과 분비물이 섞일 수밖에 없다 해도. 그걸 타일 위에 비비면 사라지나요..?
아무튼 앞 수업 선생님은 키가 크고 젊은 남자였는데 수업이 끝나고도 할머니 수강생들의 자세를 봐주며 이것저것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언제 와도 항상 수영장을 지키고 있는 안경 쓴 선생님이 그들의 동태를 살피다가 수업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체조. 이 선생님은 체조 동작을 짧게 보여주고 구령만 외치시는 편이다. 물속에서 점프하는 동작은 여전히 잘 되지 않는다. 스스로가 바보 같은 마음과 귀찮은 마음이 공존한다.
체조를 하던 도중 등장한 초급 담당 선생님은 조랭이 떡을 크게 불린 것처럼 생긴 도구와 더 작은 사각형 패드를 가져다 앞에 놓으셨다. 체조가 끝나자 선생님은 조랭이 패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자유형 어쩌고 하며 지시했는데 내 귀에는 그게 외계어처럼 들렸다. 선생님은 설명 도중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옆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다. 암요, 초보자는 얌전히 기다려야죠.
내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벨트가 달린 작은 사각형 패드를 건네며 허리춤에 차라고 알려준다. 이게 있기 때문에 물속으로 가라앉을 일은 없으니 안심하라고. 그리고 팔꿈치를 벽에 붙인 채 타일 끝을 손으로 잡고 몸을 띄워보라고 하신다. 거기서 다시 음파음파 숨쉬기를 복기해본다. 분명 어제도 했는데, 어딘가 어려워진 느낌. 숨도 더 많이 찬다. 이제 숨을 쉬어가며 발차기를 해본다. 고개는 푹 숙이고 어깨와 상체에 힘 빼고 발은 똑바로 일자로 차기. 허리가 꺾이지 않게 무언가를 앞으로 밀어내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엉덩이를 밀어야겠지? 정신없으니까 일단 시키는 대로 쭉쭉. 숨쉬기와 발차기의 조합이 썩 쉽지가 않다.
이제는 킥 패드를 잡고 레일을 다닐 차례다. 어제도 배웠지만 오늘도 다시 배운 킥 패드 사용법은 팔꿈치를 패드 아랫부분에 꼭 붙인 채 팔을 위로 뻗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팔이 짧은 나는 손의 위치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은 킥 패드를 한 손으로만 잡고 다른 한 손은 출발 지점의 타일을 붙잡는다. 상체는 숙이고 두 발은 벽에 꼭 붙여야 한다.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몸은 중심을 잃은 채 이상한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허리에 찬 패드 덕에 가라앉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여전히 겁이 났다.
허리 패드를 믿고 레일 끝까지 가보자고 하신다. 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단은 걸어가기. 중간쯤 오자 여기가 1.3m라고 알려주신다. 더 가보자고 하신다. 한 손에 킥 패드를 잡고 걷고 있었는데 점점 발이 닿지 않는다. 당혹스러워하며 선생님을 쳐다보자 깡총깡총 뛰면서 움직이라고 하신다. 제일 깊은 곳에 가까워지자 옆에 레일을 잡으며 깡총깡총 뛰라고 하셨지만, 나는 발이 닿지 않을수록 더 이상 뛰는 게 힘들어졌다. 레일에 겨우 의지한 채 바보처럼 끝까지 도착했다.
어쨌든 출발은 해야 한다. 발이 닿지 않는 이 끝에서 말이다. 아까 배운 대로 두 발은 벽에 붙이고 상체는 숙인 채 뻥 차자마자 킥 패드를 양손으로 붙잡고 글라이딩을 한다. 이제 음파음파를 적용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전진이 잘 되지 않는다. 음파 한 번 할 때마다 멈추게 된다. 파를 물속에서부터 천천히 하면서 턱을 들라고 하신다.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처들고는 발차기도 멈춰버린다고.
이래저래 숨쉬기 요령을 더 알려주시지만 모든 걸 해내기엔 정신이 너무 없다. 물이 깊다는 공포와 약간 달라진 숨쉬기 방법..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 마침 귀마개를 깜빡해서 귀에 물이 들어오는 낯선 기분, 쉬지 말아야 하는 발차기.. 이 모든 것이 엉망으로 뭉치면서 나는 급기야 숨 쉬던 도중에 물을 마셔버렸다. 당황해서 기침을 콜록콜록. 선생님은 물을 마신 거냐며, 나를 잠시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셨다. 물론 숨을 쉬어야 하는 방식과 타이밍을 친절하게 한 번 더 알려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끝까지 가지 말고 1.3m 부근까지만 왔다 갔다 하며 연습하라고 하신다. 물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며 나를 애써 위로해주시는 듯했다. 그리고는 계속 반복 연습이 이어졌다. 중간중간에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와 다리를 일자로 찰 것, 발등은 뒤로 차내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밀어내는 것, 숨쉬기를 한 세트 할 때마다 멈추지 말 것 등등을 알려주시며 코칭해주셨다. 코칭은 물론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졌는데,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소리로 외치시는 것 같았다. 어떤 할머니께서는 선생님을 지켜보며 '무서워..ㅎ'라고 혼잣말처럼 속삭이셨다.
연습만이 살 길이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앞으로 잘 나아가질 않고 계속 한 자리에 정체돼 있는 바람에 선생님이 가끔 다가와 앞으로 몸을 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자율 학습으로 이뤄졌기에 나의 더딘 속도는 다른 수강생의 진출을 막아서곤 했다. 내 발가락이 다른 분들에게 닿을 때마다 멈추어서 죄송하다 사과를 하고 길을 내주었다. 제가 너무 느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다들 죄송할 필요 없다고 우리도 다 똑같다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돌고 돌다 보니 어떤 수강생은 배영을 연습하기도 하고 어떤 수강생은 다른 희한한 걸 연습하기도 하고 여러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수업에서 레일 끝에 서서 지쳐 보이던 분들의 심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잠깐 들이쉬는 동안에도 우리의 폐는 충분한 공기를 빨아들인다는 이론과 다르게 숨이 정말 많이 찼다. 나는 숨쉬기를 정말 못하기 때문에 중간에 계속 쉬면서 요령을 부리며 연습했지만, 다른 분들은 더 어려운 동작을 휴식 없이 쭉 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 훨씬 힘들 것이다. 어제 그분들은 집에 가고 싶어서 가만히 서 계신 것도 있었겠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느새 수업이 끝날 시간. 아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연습해보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마무리 체조 시간. 오늘도 어렵다. 이번에는 좀 신기한 동작도 했다. 레일을 잡고 그 위에 누워선 허리를 레일 위에 대고 왔다 갔다 마사지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허리춤에 부표가 있었기에 허리 마사지 효과는 없었지만 뒤로 누워 있으니까 기분은 째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나는 부표 때문인지 계속 아래로 꼬르륵 내려오게 됐다.
이번에는 더 신기한 걸 시킨다. 물속으로 들어가 무릎을 껴안았다가 올라오라고 한다. 부표 때문에 몸이 계속 떠오르는데, 그 사이 이 반에서 가장 중급인 사람들을 어린이 풀에 데리고 가서 무언가 알려주고 계시던 선생님이 돌아오셔서 자기 쪽으로 와보라고 한다. 지금 하는 동작은 어릴 때 많이 하는 새우등 동작인데(나는 어릴 때 이런 동작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몸을 웅크리고 무릎을 감싸면 등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하면서 몸이 뜬다고 한다. 부표를 벗고 해 보기로 한다. 몸이 뜨는 느낌이 좋았다. 여러 번 반복하면서 물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인가 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정말 잘했지만, 왼쪽 다리가 계속 일그러지고 제대로 뻗어내질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왼쪽 골반이 안 좋은 내 몸의 상태가 어쩜 이렇게 여과 없이 들통난 걸까. 세상에 숨길 수 있는 건 없다. 다리가 골반을 축으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자연스럽지가 않고 무릎 아래만 써서 문제라고 하셨다. 축을 똑바로 세우고 다리를 같은 범위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도. 이렇게 간단한 스윙 동작이 왜 안 되는 건지. 지금까지 무용은 어떻게 배운 건지. 처참해진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다리가 기본적으로 잘 돼야 팔도 더 잘, 보기 좋게 쓸 수 있다고. 나는 '원리만큼은 무용이랑 너무 똑같네'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골반의 문제를 고치려고 붙잡다 보면 1년도 더 걸릴 거라고, 그럴 수는 없으니 조만간 팔도 배울 예정이라고 알려주셨다. 골반 고치기가 어려운 것조차 무용이랑 똑같다.
내 골반은 왜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걸까. 속상한 마음이다.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어르신들이 많이 보는 건강 프로그램에서 왜 그렇게 골반 순환 노래를 부르는지 잘 알 것 같다. 나는 아직 노인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왜 골반이 이 모양일까. 휴...
수업이 끝나고 어제 본 유아들이 줄지어서 어린이 풀로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 아기 수영단인가 봐. 오늘도 역시, 너무 귀엽다! 샤워하고 몸을 닦고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고 다시 짐을 챙겨서 나오는 일도 이제 정말 일상처럼 익숙해졌다. 탈의실에서 어떤 할머니는 수영 끝나고 만나기로 한 상대와 전화 통화를 하는데 남성분이 확진이 되어버렸다며 허허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다 들렸다. 다들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는구나. 머리를 말리다 보니, 할머니들이 멋을 내기 위해 구르프를 열심히 말고 집에서 가져온 브러시 고데기로 머리 모양을 내는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다들 멋 내기에도 열심히구나. 나는 바디 로션도 오늘 처음에서야 겨우 발랐다. 오늘은 심지어 수영 끝나고 얼굴도 물세수만 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내가 제일 게으른 것 같았다. 이렇게 또 자책을 하며 센터를 떠났다.
한의원으로 향했다. 갑상선 치료를 위해 엉덩이 골에 침을 먼저 맞았고, 이어서 배와 발목, 발가락에 침을 맞고, 다시 돌아누워 뭉친 허리 쪽에서 피를 빼면서 등과 종아리에 부항을 떴다. 하지만 오늘은 차도가 없었다. 발도 그대로 아팠고, 골반도 다른 곳도 편안해진 구석이 없었다. 그저께 첫 방문을 하면서 다이어트 약에 대한 상담도 받았는데, 이 선생님은 다른 다이어트 한약처럼 대사를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사를 조절하면 반드시 요요가 오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다른 방식을 사용한다고. 몸에 지방에 붙는 건 단백질이 부족해서이기 때문에,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는 알약과 물약을 처방해줄 수 있다고. 내가 어떤 침을 맞아도 다르게 느끼는 점이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나의 근육이 워낙 약해져 있어서 감각 신경도 무뎌져 있는 것 같다고, 결국엔 그 약을 먹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백수이기 때문에 큰돈을 쓰는 데 주저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주제와 벗어난 이야기니까 일단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