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잘하고 계시니까 천천히 하세요

by 속삭이는 물결

아침에 비가 왔다. 수영 등록하고 처음 내리는 비였다. 비 오는 날이면 버스보다 지하철이 국룰인데,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고 선생님도 같은 버스를 타셨다. 같은 곳으로 가는 듯한 할머니들도 언제나 함께, 있는 힘껏 모른 척해드렸다. 내릴 때쯤 갑자기 비가 마구 쏟아져 내렸고 우산은 쓰나 마나인 것 같았다. 옷도 다 젖었다. 오래된 나무 락커 속에서 이상한 냄새나 배겠지, 마르기나 할까, 의심을 품으며 샤워장에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비가 오니 사람들이 좀 적게 오지 않을까 생각한 건 나의 오산이었다. 비가 오니 수영 생각이 더 간절해졌을까.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열심히 다니고 있다. 벌써 5주를 다녔네. 물속에서 걷기 연습을 하는 분과 인사를 하며, 걸으면 좀 도움이 되냐고 물었다. 그분은 연골이 파열된 이후로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고 하셨다. 수영밖에는..


깊은 곳으로 가다가 준비 체조가 시작됐다. 물이 너무 깊어서 제대로 체조를 할 수 없는 나는 열심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물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얕은 곳으로 나오는 게 훨씬 힘들고 어렵다는 걸. 물속에선 걷는 것보다 수영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도.


오늘도 새로운 것은 없었다. 킥판 잡고 자유형 발차기 2바퀴, 배영 발차기 2바퀴 모두 순조로웠다. 배영 발차기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게 작은 성과였다. 천장 타일이 조금 더 빠르게 흘러갔고, 기억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도착했다.


그다음은 킥판 잡고 팔 돌리기 2바퀴. 바로 거북이 등을 찰까 싶어서 거북이 등과 혹시 몰라 땅콩볼을 가지고 왔다. 소심한 마음에 땅콩 볼로 먼저 1바퀴를 돌고 와서 거북이 등을 차려고 하니 선생님이 8자 모양 당근을 가져오셨다. 다른 분께 하나 쥐어주면서 나에게도 하나 주셨다. 이것만 들고 하라신다. 거북이 등은 없이! 오 마이 갓!


하기사 어제는 맨손 맨몸으로 했는데 무슨 상관이랴. 사실 이건 잡나 마나이기 때문에 물이 입가에 차오르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이 들어갈 것 같으면 입만 벌리고 숨을 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럼 음파 음파 호흡 두 번을 하고는 질식할 것 같아서 수영을 멈춰야 했다. 그러다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선생님은 지금 잘하고 계시니까 천천히 하시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셨다. 참 고마운 말씀이다.


나는 숨을 안 들이마시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러면 물속에서 음-을 충분히 뱉으라고 하셨다. 숨이 모자라면 자동으로 들이마시게 된다고 말이다. 나는 숨이 모자라면 숨 쉬는 걸 멈추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오늘 들은 피드백은 이게 다였다. 평화롭고 느긋한 수업이었다.


마무리 체조가 끝나고 맨손 맨몸으로 편도 0.5바퀴를 달려보았다.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때가 가장 신나는 것 같다. 당근을 잡고 할 때보다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팡- 팡- 손등 치는 느낌도 잘 나고.


아까 유아풀로 가셨던 이 레인 내 최고급자 분은 오늘 처음 접영을 배우셨다고 한다. 유튜브에서만 봤던 접영을 보니 너무 신기했다. 그럼 배울 건 다 배우셨네요! 하니 아직 못하는 게 너무 많다고 겸손해하셨다. 나는 배영이라도 잘 마스터하고 나가면 좋을 것 같다.


수영이 끝나고 나오니 비는 그쳐 있었다. 어제는 나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서 계단 아래로 떨어져서 죽을 뻔했는데 살겠다고 잡은 난간에 송진이 가득해서 손이 완전히 찐득해졌다. 매일 이런 작은 일들이 생기는데, 결국은 정신력 문제다. 오늘은 평화롭게, 잘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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