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 가까스로 초고속 레벨업 (복구본)

by 속삭이는 물결

지난주 우울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주말엔 모처럼 기력을 찾긴 했지만, 공허함과 허무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책이라도 실컷 읽었으면 좋았으련만, 숙면을 취하는 틈틈이 수영 유튜브라도 열심히 보았다. 국내에도 훌륭한 수영 강습 콘텐츠가 많지만, 해외에는 더 많았다. 무용은 콘텐츠가 정말 없어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70년대에 제작된 몇 시간짜리 홈 비디오를 시청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과연 수영은 수요가 훨씬 많은 운동 분야인 듯하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서양의 고전 무용은 자신을 채찍질하기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빠져들 확률이 크지 않을까 하는 가정이다. 그에 비하면 수영은 더 많은 이들에게 열려 있지 않은가. 물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땡땡이의 유혹이 아주 심했다. 새벽 4시에 잠시 깼을 땐 정신이 똘망똘망했는데, 일어날 시간에 다시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왜 점점 가기 싫은 마음이 커지는 걸까. 이 감정을 분석하려 들지 말자, 그저 해가 뜨고 달이 뜨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어쨌든 나는 훌륭하게도 그 마음을 이겨내고 갔으니까 지금 이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을 칭찬하고 아껴주기.


오늘은 날이 뿌얬다. 미세먼지인지 습기인지, 꼭 베이징에 온 듯한 낯선 풍경. 선선했던 어제보다는 부쩍 더울 것 같았다. 새벽의 추위가 무색하게.


점점 샤워 시간도 길어진다. 극초반에는 5분 컷으로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요즘은 8분은 쓰는 것 같다. 머리 감기도 몸에 비누칠하기도 세월아 네월아.. 선생님의 구령 소리를 들으며 수영장에 들어서는데 늘 들리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각에 입수를 하고 고급반 선생님의 리드에 따라 체조를 따라 하다 보니, 어딜 둘러봐도 항상 계시던 선생님이 보이질 않았다. 오늘은 고급반 선생님이 초급반까지 커버하시려는 걸까? 체조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년의 선생님이 등장하셨다. 또 새로운 선생님이신가?


체조가 끝나자 낯선 선생님이 모두를 지상으로 소환했다. 킥판을 들고 수심이 가장 깊은 곳까지 걸어가라고 하셨다. 모두가 어리둥절. 접영까지 배운 사람, 평영까지 배운 사람을 차례대로 손 들게 하셨고, 나는 배영까지 배운 사람에 손을 들었다. 그런데 저는 팔 돌리기까지만 배웠어요!라고 강조하면서. 모두가 레벨 순서대로 두 줄로 서서는 음파 발차기를 시작했다. 뒤에서부터 입수해서 나아가기. 자유형까지 배운 사람들도 모두 함께. 갑자기 낯선 동선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오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 번 정도는 했겠지? 유튜브에서 본 대로 엉덩이 힘을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그다지 오래가진 못했다.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편을 가르기 시작했다. 레인을 반으로 갈라 자유형까지 배운 사람들은 수심이 얕은 앞쪽, 그 이후도 배운 사람들은 모두 수심이 깊은 쪽에 서게 한 뒤에 미니 레인으로 경계선을 쳤다. 나에게 잘하더라고 칭찬해주신 분이나 다른 분들 모두 "어우, 진작에 이랬어야지" 하며 새로운 환경을 반겼다. 발차기 연습이나 숨 쉬기 연습을 하시는 분들 때문에 반은 걸어야 했던 지난날의 환경에 다들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곤 레인 옆쪽에 킥판 2개가 서로 기대어 ㅅ 모양이 되도록 세웠다. 총 2개의 ㅅ이 표지판 역할을 했다.


선생님은 먼저 자유형 4바퀴를 시키셨다. 무슨 기준인지 몇몇을 골라 선두에 세우셨다. 가야 할 거리는 훨씬 짧아졌는데, 나는 이 그룹에선 꼴찌인 데다, 중간 지점에서 최심 지점까지 오가는 게 낯선지라 우왕좌왕했다. 아까 한 음파 발차기로는 워밍업이 그닥 되지도 않았고, 쉴 틈이 없으니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항상 킥판 잡고 팔 돌리기 연습부터 한 뒤에 킥판을 뗐는데, 단계적 훈련 없이 바로 자유형에 돌입하려니 감도 잘 안 잡히는 듯했다. 고개는 지난주보다 훨씬 띄운 채로 파-를 했고, 어이없는 순간에 물도 먹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모두가 4바퀴를 돌고 나서 서 있을 때 나는 사실 3바퀴만 돌고 섰다.


선생님은 우리가 서 있는 쪽을 조금 더 넓혀주셨다. 레인 고리를 조금 더 앞쪽으로 단 것인데, 내가 선생님의 요청으로 고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평영 가능한 사람은 평영 발차기, 나머지는 배영 발차기를 했다. 나머지라 해 봤자 나와 다른 한 분뿐이었지만. 평영이나 배영 발차기 속도는 그게 그거라 앞쪽에 섰다. 평소보다 물이 콧속으로 더 들어오긴 했지만, 무난했다.


중간중간에 걷기도 시키셨다. 걷기는 너무 어렵다..


이제는 배영 팔 돌리기. 나는 늘 그랬듯 킥판을 잡고 돌리기를 연습했다. 왼팔에 비해 오른팔 손등 꺾기가 이상하게 됐다. 선생님은 내가 팔을 굽혀서는 안 되며, 허리도 더 펴야 한다고 지적해 주셨다. 나도 모르게 팔을 구부리면서 했나 보다. 킥판을 잡지 않고 배영 팔 돌리기를 하는 다른 분에게는 한 팔이 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돌아오는 동시에 다른 팔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셨다.


그렇게 두세 바퀴 정도 돌았을까, 선생님은 내게 갑자기 킥판을 놓고 팔 돌리기를 하라고 하셨다. 거북이 등도 거치지 않고 이렇게 바로 간다고? 한 번도 안 해봤는걸요? 당황해하자 선생님은 두 팔깍지 끼기(정확하게 기억이 잘 안 난다?)부터 시작해서 똑같이 돌리면 된다고 하셨다. 큰일 났다,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웬걸 생각보다 잘 됐다. 몸이 가라앉지도 않고. 문제는 물이 많이 얼굴로 침투한다는 것.. 당황해서 몇 번을 멈춰 서서 코와 입에 고인 물을 뱉어낸 것 같다.


한 바퀴를 돌고 오자 선생님은 또 내가 어깨와 등을 굽힌 채 움직인다며, 몸을 완전히 펴서 침대에 누운 것처럼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니 물이 더 많이 튀었다. 어쩐지 지난주 목요일 이후로는 물도 안 튀고 잘 된다 싶었는데, 잘못된 자세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더 수평으로 맞추기 위해 고개를 젖혀서 (지난주에 코멘트 들은 대로) 코와 입만 나오게 하니 물이 콧속으로 더 많이 들어왔다. 아까 유심히 들은 타인의 피드백을 받아 더 빠르게 팔을 교차해 봤다. 코가 맵고 눈이 매운 문제만 빼면 나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뒷사람에게 추월당하는 일은 잦았지만 말이다. 내일이면 또 감을 찾고 편안하게 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배영 연습을 마무리했다.


선생님은 다시 모두에게 걷기를 시켰다. 나는 돌아오는 걷기가 정말 너무 힘들어서 매번 두 팔을 크게 흔들며 뛰듯이 걸어야만 이동이 가능했다. 선생님은 뒤처진 나를 보더니 뒤에 독특한 릴레이 대회를 여셨다. 사람들을 반으로 가르고 갈 때는 걷기, 돌아올 때는 달리기로 다녀오라고 하셨다. 나는 마지막 주자였는데, 갈 때도 뛰었더니 뒤에서 걸어야 한다는 소리가 막 들렸다. 걸으면 난 정지밖에 할 수가 없어요. 돌아올 때 뛰어도 꿈쩍도 하질 않았다. 파란 타일 선을 밞으면 미끄러워서 마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남자분이 내 손을 터치하시더니 마지막 주자를 자처하셨다. 돌이켜보니 분명 내가 마지막이었는데, 뭔가 배려를 하신 것 같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자유형 1바퀴를 돌라고 하셨다. 2분이 남아 있었다. 자유형이 끝나고 마무리 체조가 시작되었는데, 선생님의 모션이 너무 모호해서 무슨 동작을 하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치껏 따라 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 했다. 이런저런 동작이 끝나자 선생님은 두 명씩 짝을 지우셨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전개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나의 짝은 친해지는 시간이냐며 꺄르르 웃었다. 두 손을 맞잡고 팔 돌리기, 밀어주기, 갑순이와 갑돌이처럼 뒤돌아서 마주 보며 손뼉 치기 등등 희한한 동작을 했다. 과연 운동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흥겨운 일이었다.


체조가 끝나고 나머지 연습을 시작했다. 역시, 몸이 덜 풀렸다. 58분이 되자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부셨다, 모두 나가라는 신호다. 나는 수영장을 나오면서 나와 짝을 해주신 분께 유튜브에서 본 영법을 이야기했다. 2비트 킥에 대해 들어봤냐며. 수영 강습을 오래 들으신 것 같았는데, 2비트에 대해선 처음 들어본다고 하셨다. 몸에 힘을 빼는 방법이 발차기를 덜하는 거라는데 그건 고급자에 해당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며, 우리는 발차기를 많이 해야 한다고만 배우기 때문에 발차기를 하면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샤워 줄을 기다리면서도 모두 오늘의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선생님이 너무 좋다며, 이렇게 그룹을 나누는 방식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이곳을 가장 오래 다니신 듯한 그리고 내게 잘한다고 칭찬해주신 할머니는 이 선생님이 원래 몇 개월 전에 수영을 가르쳐주셨는데 너무 잘 가르쳐서 선물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선물을 드리자마자 수영을 더는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너무 유능한 나머지 다른 스포츠 종목도 가르치시는 듯했다. 골프, 배드민턴 수업에서도 이 선생님을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날은 아무래도 원래 담당하시던 선생님이 휴가를 쓰셔서 대체된 것 같다고 하셨는데 동시에 기존 선생님에 대한 불만도 속속 나왔다. 놀기만 한다는 과격한 혹평부터 진도를 잘 내지 않는 것, 그룹핑을 안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폭발을 했다. 할머니는 건의를 해봤지만 개선되는 게 없었다며, 젊어서 그래, 하셨다. 확실히 진도를 나가는 데는 소극적이시다. 그러나 인원이 너무 많고 눈치코치까지 부족해 감당을 못하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설명은 가장 과학적으로 잘해주시는 것 같은데.. 이미 잘하는 사람에겐 코멘트를 별로 주지 않고 방관하는 듯한 느낌에 이런저런 불만이 쌓인 모양이다. 역시 사람 느끼는 건 다 똑같고, 다들 말을 아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곧 재등록을 해야 한다. 한 달 더 배우면 평영도 배울 수 있으려나..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 혼자서 마구 달리다가 혼자 빨리 질리는 버릇, 문제다 문제야. 그리고 갑자기 골프 수업도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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