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 수요일은 수영일!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by 속삭이는 물결

수요일도 수영이다. 수수수수수수일요일로 구성된 나의 하절기. 마침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다. 매일 수영으로 과로하고 집에 와서 밥을 챙겨 먹고는 쓰러져 자는 패턴에 패배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문화가 있는 하루만큼은 조금 다른 일을 해 보자, 전날 밤부터 계획을 했더랬다. 그러느라 또 새벽에 잠든 것은 무슨 일인고.. 장안의 화제인 전시를 보기로 마음먹고, 취소 표 예매는 실패한 채 수영을 갔다.


선생님은 이제 무엇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원래 그러셨는데 내가 이날 유독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걸까? 자유형 발차기, 배영 발차기, 그리고 자유형 팔 돌리기, 배영 팔 돌리기. 그냥 눈치껏 내 맘대로 했다.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고, 이건 내 수태기를 의미했다.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저 연습을 했다. 선생님은 두 번째 레인의 다이빙 강습에 집중하고 계셨다.


그래도 자유형 연습을 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 지난주에 선생님이 말한 내 몸이 휘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내가 스스로 느낀 것이다. 아.. 파-을 하는 지금 내 몸이 바나나 모양으로 휘어져 있구나. 의식을 하면 그게 나아질까? 근데 저번 주에 선생님이 뭐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고 하셨지? 문제는 인식했으나 해결책을 찾을 마음은 백지같이 하얗기만 한 상태.


수업이 끝나갈 즈음 선생님은 나에게 피드백을 주셨다. 왼팔과 오른팔의 회전 각도가 너무 다르다고. 왼팔은 돌아올 때 옆으로 돌아오고 오른팔은 돌아올 때 하늘을 향해 돌아온다고. 초보 분들은 하늘을 향해 돌아오는 편인데, 어쨌든 양 팔이 통일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은 지난주에도 들었던 왼 어깨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한 번 더 해봤는데, 왼쪽 어깨를 돌리려고 통제권을 내려놓으니 몸이 다시 막 휘청거렸다. 아, 혼란스럽다. 어깨를 정확히 어떻게 쓰는 게 맞는지 팔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게 맞는지, 이해도 잘 되질 않는데, 동쪽으로 가라 그러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라 그러면 서쪽으로 갔을 뿐인데 왜 또 중앙으로 가지 않냐고 하니까. 어제 새롭게 배운 듯한 팔꺾기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같이 수업 듣는 분께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팔을 계속 돌리면 팔이 아플 것이고, 팔 꺾기를 하면 또 다르다는 것. 이 분은 선생님이 자신을 봐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계시다. 이미 모든 것을 할 줄 알고 딱히 못 하는 게 없기 때문에 지적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선생님이 진도를 빼지 않는 스타일이셔서, 전체 분위기가 산만한 것도 있다.


이런저런 고민이 있지만, 그냥 재등록을 했다. 사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굉장히 큰데.. 잠깐 다녀가는 충동과 우울(치고는 좀 길다)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취소하면 되니까.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서 아까 수다 떨었던 분과 마주쳐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내가 요즘 수영이 하기 싫다고 하니, 너무 매일 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하셨다. 반은 다른 걸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나는 수영 수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몰라, 백수라 시간이 넉넉한 지금 많이 들어두려고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수영을 단기간에 빨리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매일 같은 걸 연습하다 보니 금세 질린 것 같다. 분명 다른 스포츠도 재밌을 테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전시를 보러 갔다. 특별전 표는 저녁 시간밖에 남지 않아, 나는 6시간 이상을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다행히 다른 전시도 있었지만, 수많은 작품을 서서 관람하는 건 전시가 아무리 재밌어도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전시를 보기 시작한 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힘들기 시작했다. 몇 시간 자지도 않고 공복에 수영, 그리고 휴식하지 못한 채 추운 에어컨 바람 속에서 전시 관람이라니. 그렇게 6시간 가까이를 고비로 가득 채워 보냈고, 또 2시간을 더 쏟았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눈은 계속 잠겨 왔다. 그래도 한 점이라도 허투루 볼라 얼마나 열심히 보았는지 모른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빗소리가 들렸고, 드문드문 우산 쓴 사람들이 보였다. 감기몸살 각이네..


우산이 없는 나는 겨우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모자가 있으니까, 조금만 더 가면 집이니까, 가까스로 위안을 삼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배는 고프고 머리는 아팠다. 거의 몸살 직전의 컨디션이라 입맛은 없었지만 체력 회복을 위해서라도 먹어야 했다. 억지로 컵라면 하나를 먹고는 생각했다. 내일 수영은 못 가겠는 걸. 편하게 누워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은 컨디션이 회복된 듯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분명 눈을 떴고, 내 몸이 수영 스케줄에 적응을 했는지 생각보단 팔팔했지만 수영을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가고 싶은, 아니 배우고 싶은 의지와 열망도 마이너스에 가까웠다. 그래서, 늦잠이라는 그럴듯한 사유도 없이 그냥 땡땡이를 쳤다. 오늘 수업을 못 갔을 때의 아쉬운 점은 오늘 선생님의 오늘 커리큘럼을 놓친다는 것, 사람 적은 환경에서 여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요일이 오늘이라는 것. 그런데 그것들이 내 체력과 바꿀 만큼 아쉬운 일인가? 저울질을 하다가, 시간이 흘렀고, 나갈 시간은 한참 지나쳐 있었다. 지난달 자전거를 오래 타느라 지금처럼 컨디션이 바닥을 쳐서 땡땡이를 친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텼다. 스스로가 기특하다. 올출은 못했어도 이 정도면 얼마나 훌륭한 출석률인가. 마음이 덜 우울하라고 몸이 대신 고생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비록 오늘의 우울함은 수영으로 씻어내지 못했지만.


땡땡이를 치고 나니 애써 지우려 했던 피로감과 두통이 다시 몰려왔다. 자고 깨고 자고 깨기를 반복. 식욕도 사라졌다. 먹을 힘도 식사를 준비할 힘도 없어서 방울토마토만 주워 먹었다.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다, 왜 내 냉장고엔 이런 것밖에 없는가. 그나마 힘을 되찾는 데 효과가 좋았던 건 초콜릿 잼이다. 단 것을 먹어서 착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오늘 일요일처럼 쉬었으니 내일은 컨디션이 훨씬 더 괜찮겠지? 내일 수영은 꼭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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