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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08. 2023

눈치 없는 남편

"파티마가 만든건 맛있던데..."

2021년 6월 16일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되신 시부모님께서 우리 부부를 점심식사에 초대하셨다. 한낮 기온이 24도였는데, 파라솔의 시원한 그늘이 테라스에 드리워졌다. 

우리는 우선 샴페인과 함께 시부모님께서 스페인에서 사 오신 모르콘 (Morcón)을 맛보았다.


"이렇게 좋은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샴페인을 마시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야. 그렇지 않니?" 

시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오래전 명상원에서 배웠던 [현재를 살라, 항상 깨어있으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꽃들이 둘러싸인 테라스,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시부모님의 스페인 여행이야기, 사랑스러운 고양이들, 새소리, 파란 하늘, 맑은 공기...  나는 이 순간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더 집중했다. 시각, 미각, 청각을 모두 활짝 열었다. 열심히 맛보고 듣고 또 크게 웃었다. 진심을 다해.



이날의 메인메뉴는 닭고기 카레였다. 고구마를 갈아서 소스에 넣으셨다고 한다. 시판 카레에는 이것저것 첨가한 게 많아서 느끼한데 이렇게 집에서 강황가루로 직접 만들면 더 건강하고 맛있다고 강조하셨다. 아무렴요!


사이드로는 삶은 하얀 콩, 모르콘 조각을 섞은 샐러드 그리고 동남아식 당근 샐러드가 있었다.

당근 샐러드는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린망고, 파파야, 바나나꽃이 섞여있고 거기다 땅콩가루와 레몬즙을 뿌리신 것이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시원한 맛이었다.


잠시 후 어머님께서는 디저트로 휘바브 타르트를 내 오셨다. 요리를 잘하시는 시어머니께서는 다양한 종류의 타르트에 대해 특히 자부심이 크시다. 

나와 시아버지는 한입 먹자마자 너무 맛있다고 감탄을 했는데 웬일인지 자서방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자서방을 돌아보았을 때 자서방은 타르트를 오물거리며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저렇게 눈치가 없다고...? 

"넌 그거 먹지 마." 


시어머니의 말씀에도 남편은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난 맛만 좋은데?"

나는 남편에게 눈치를 주며 맛있다고 더 크게 말했다. 

"엄마의 타르트가 최고라는 건 나도 알아. 근데 나는 신걸 못 먹거든..." 

그렇다. 휘바브는 토란줄기같이 생긴 작물인데 요리하면 특이하게 레몬처럼 신맛이 난다. 그래서 디저트를 만들 때는 설탕을 충분히 넣어야 하는데 시어머니께서는 건강을 위해 설탕의 양을 많이 줄이신 것이다. 아무튼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남편이 쓸데없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파티마가 한 거는 맛있던데..." 

그 말에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파티마는 설탕을 많이 넣어서 그래!" 


시어머니의 반박에 나는 제대로 웃음이 터졌다. 


"파티마는 사랑하는 내 친구이고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그녀는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요리는 절대로 그중의 하나가 아니야." 

시어머니께서는 진지하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웃느라 소화가 다 될 지경이었다. 남편은 나를 보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지. 그녀는 요리는 영..." 

"그래도 그녀가 만든 휘바브 타르트는 맛있던데?

내 말에 시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그녀의 휘바브 타르트는 매번 맛이 달라. 지난번에는 나도 속으로 놀랬단다. 웬일로 맛있더라고..." 

파티마는 우리 시어머니께서 엄청 아끼시는 절친이다. 어머님은 그녀가 요리 빼고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파티마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 덕분에 남편의 눈치 없는 발언이 모두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우리 남편, 아직 아버님께 배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그리고 어머님, 설탕 조금만 더 넣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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