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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09. 2023

퐁타무송에서의 완벽한 저녁식사

좋은 사람들, 좋은 음식


2021년 8월 25일


시부모님을 따라 파티마 모자와 함께 메츠에 있는 퐁피두 센터에서 열리는 샤갈과 아르침볼도의 전시를 관람했던 날이었다. 관람이 끝난 후 파티마는 그녀의 남편이 일하고 있는 퐁타무송이라는 동네로 가서 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메츠 시내를 지날 때 파티마는 30년 전에 일했던 첫 직장이라며 한 건물을 가리켰다. 나보다 언니인 건 알았지만 나이차가 10년 이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진짜 동안이시구나... 그녀는 우리 시어머니와 직장동료로 만났고 시어머니께서 은퇴하신 뒤에도 두 가족은 여전히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이렇게 친구가 되는 문화는 참으로 부럽다. 그녀의 고등학생 아들 노암이 자연스럽게 시부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도 볼 때마다 신선하다. 


차 안에서 우리는 전시회의 감상평을 서로 나누었다. 이런 프랑스식 토론도 나에게는 그저 새롭다. 평소 말씀이 잘 없으시던 시아버지께서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셨다.  




퐁타무송 Pont-à-Mousson

낭시와 메스 사이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인데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골 전경이 펼쳐졌다.


Abbaye Des Prémontrés 라는 수도원 앞에서 차가 멈춰졌는데 그곳에서는 La mousson d'été 라는 제목의 공연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뮤지션인 파티마의 남편 마누가 일주일째 집에 못 오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공연이었던 것이다. (파티마말에 의하면 마누는 이 합숙을 아주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마누를 만난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만난 노암과 마누부자는 살가운 볼키스와 포옹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껌딱지같이 딱 붙어있었다. 매너 좋은 외동아들이 애교 많은 딸노릇까지 다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부러운 남의 집 아들. 내가 노암을 칭찬할 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놀린다. "미안하지만 너한테는 너무 어려서 안돼."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창살이 없는 낮은 창문들이었다.

그 창가에 앉아 이웃과 이야기를 하는 주민들도 있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음식냄새, 달그락거리는 식기소리 혹은 가족들의 대화소리 모두 나에게는 동화 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특히 해 질 녘이라 더 마법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시골마을을 걷는 게 나는 너무 좋았다.





마누가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식전주로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주문했다.

시어머니를 따라서 알자스 맥주를 시켰는데 달콤한 과일향이 나서 너무 맛있었다. 내 스타일이야! 

갑자기 난데없이 비가 쏟아져서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금방 그쳤고 오히려 비 온 후의 저녁공기가 너무 상쾌해서 야외에서의 저녁 식사가 한층 더 즐거워졌다. 

"거봐! 외출하니까 좋잖니!" 

내 옆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시던 시어머니께서 내 옆구리를 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네, 정말 좋아요. 오늘은 특히 더요!" 

내가 시아버지와 마누 그리고 내 잔에 와인을 따른 후에 물었다. 

"노암은 18세니까 법적으로 술을 마셔도 되지 않나요?"

그 말에 노암과 마누는 좀 격렬한 목소리로 "그럼요! 맞아요!" 라며 격하게 끄덕였고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대답이 없는 파티마에게로 향했다. 노암은 조금만 따라 달라며 이미 와인잔을 나에게 내민 상태였는데 나는 선뜩 따르지를 못하고 파티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끄덕이며 말했다. 

"마셔도 되는 건 맞는데...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니까... 그래도 노암이 결정은 노암이 하는 거지 뭐..." 

그 말에 나는 노암의 잔에 와인을 아주 조금만 따라준 후, 내가 중학교 때 우리 엄마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제가 중학생 때요, 더운 여름이었는데 엄마가 덥다며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컵이랑 가져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갖다 드렸더니 시원하게 맥주를 한 컵 들이켜시더니 혼자 다 못 마시겠으니 조금만 마시라고 따라주시대요? 싫다고 했더니, 계속해서 마시라고 혼자 다 못 드신다며 진짜 괜찮으니까 조금만 마셔보라고 하시길래 마지못해서 잔을 받아 들었거든요? 그랬더니 엄마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시더라고요. 테스트였나봐요.

다들 웃고 있을 때 파티마만은 진지하게 우리 엄마의 다음 행동을 물어보았다. 

"제가 짜증 내면서 맥주잔을 돌려 드렸더니, 다시 주시면서 그냥 마시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안 마셨어요."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부모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동안 우리가 주문한 메인 요리가 하나씩 나왔다.  
내가 고른 메뉴는 블루베리 소스 오리필레와 통감자!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시 저 레스토랑을 가더라도 나는 같은 메뉴를 고를 것이다. 정말 맛있었다. 블루베리 소스라서 갸우뚱했는데 오래 졸려서 단맛은 은은해지고, 진한 레드와인소스 같은 느낌이 기름진 오리필레와 잘 어우러졌다. 소스에 바게트를 찍어먹어도 너무 맛있었다. 짭짤한 허브양념에 구워진 통감자도 완벽했다. 

미디엄레어로 구워달라고 했는데 시어머니께서 옆에서 "뿌앙"이라고 대신 말씀해 주셨다. 뿌앙은 미디엄에 더 가깝지만 프랑스에서는 우리보다 기본적으로 덜 익히기 때문에 딱 내가 원하는 정도로 구워졌다. 


시어머니는 샐러드를 시키셨고 노암과 마누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파티마는 베지테리언 라자냐,

그리고 시아버지는 그라탱을 시키셨는데 안에 잠봉(jambon)이 들어있었다.

다들 각자의 음식에 만족해하며 맛있게 먹었다. 


한참을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다 보니 해가 졌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디저트도 주문했다. 

파티마는 시아버지를 따라 피즈타치오 푸딩을 시켰는데 에스프레소와 작은 디저트들이 함께 나왔다. 그녀는 나더러 이건 꼭 맛봐야 한다며 강조해서 한입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시어머니와 마누, 노암은 초콜릿 스프링롤을 시켰다. 초콜릿을 밀가루 반죽에 감싸서 튀겨냈는데 고소한 튀김과 초콜릿의 향이 아찔했다. 아이스크림이랑 샹티크림이 같이 나오는 줄 미리 알았다면 나도 이걸로 시켰을 텐데... 

내가 시킨 디저트도 맛있었다. 아이스크림 세 스쿱에 초코시럽이 뿌려졌고 샹티크림과 아몬드 그리고 머랭쿠키도 들어있었다.


완벽한 식사였다! 


식사가 끝난 후 마누와 시어머니는 서로 계산하겠다며 실랑이를 했고 결국 오늘도 우리 시어머니께서 승리하셨다.


낭시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달마저도 완벽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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