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과 샴페인 그리고 웃음이 있다.
2021년 9월 27일
랭스여행에서 돌아오신 시부모님께서는 이틀 후 우리를 점심식사에 초대하셨다. 늦었지만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시댁에 들어가자마자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선물이라고 종이가방을 하나 내미셨는데 그 안에는 머리핀 두 개가 담겨있었다. 내가 얼마 전에 머리핀을 잃어버렸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 외출할 때마다 항상 잊어버려서 못 사고 있었는데 내 말을 항상 경청해 주시고 마음 써 주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 어떤 큰 선물보다 감동스러웠다. 바로 머리를 올려서 새 핀으로 고정하고 마음에 꼭 든다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나도 이제는 휴대폰 메모장에다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것들, 그러니까 선물로 드리면 좋을만한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랭스에서 장식용 거울을 판매하는 가게에도 들르셨는데 그곳에서 거울을 4개나 사 오셨다며 꺼내서 보여주셨다.
우리 시어머니는 거울 장식품을 참 좋아하신다. 거실 한쪽 벽은 이미 거울 가게 못지않은 모습이다.
"혹시 아침마다 거울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어보시나요?"
"오, 안 궁금해. 나는 확실히 아니니까."
"랭스(샹빠뉴지역)에서 샴페인도 사 오셨나요?"
"엄청 많이 사 왔지! 미슈, 지하실 내려가서 샴페인도 가져올 겸 우리가 사 온 거 요용한테도 보여주지 그래요?"
나는 시아버지를 따라서 지하실로 내려가보았다.
오와... 저 상자들이 모두 샴페인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다 가져오신 거지..??
오른쪽에 11 상자 그리고 앞쪽에는 더 큰 용량으로 3 상자...
시아버지께서 상자를 뜯어서 보여주셨는데 병이 굉장히 크고 무거웠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마실 샴페인은 바로 이것.
우리가 샴페인을 마시는 동안 남편은 혼자서 레드와인을 마셨다. 샴페인을 안 좋아한다기보다는 레드와인을 유독 좋아한다. 우리는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며 일일이 잔을 부딪혔다.
시어머니께서 샴페인 안주로 준비하신 이 과자 너무 맛있었다. 토마토소스, 파슬리, 치즈가 얹어져 있는데 파삭파삭한 식감도 좋고 안주로 최고였다. 이런 건 어디 가면 살 수 있나요...
이 올리브는 시아버지께서 직접 담으신 거라고 하셨다.
"와! 이거 정말 아버님이 직접 담으신 거예요?"
"응, 이건 작년에 담은 거고 올해도 담을 거야. 매년 내가 하지."
"식초도 넣나요?"
"아니 식초는 안 들어가. 소금이랑 레몬을 넣고 오랫동안 발효시킨 거지."
"그럼 김치네요! 올리브 김치!"
시아버지께서 만드셨다고 하니 괜히 더 많이 집어먹게 된다. 이 올리브맛도 예전에는 잘 몰랐던 건데 이젠 다 맛있게 먹는 내가 스스로도 신기하다.
밖에서 실컷 놀다가 모웬이 이제야 돌아왔다. 야... 큰형 생일인데 빈손으로 오는 거냐, 도마뱀도 하나 없이...
샴페인 한 병이 다 비워졌을 무렵 우리는 식사를 위해 다이닝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장 먼저 시어머니께서는 전채요리로 토마토냉수프를 내오셨다. 가스파초냐고 여쭤보니 이건 빵을 갈아 넣은 스페인식 냉수프, 살모레호(salmorejo)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다른 전채요리로 자서방이 좋아하는 고기파이 뚜흐뜨(Tourte à la viande)를 내 오셨다. 시댁에서 지낼 때 시아버지께서 종종 사오셨던 건데... 새삼 작년에 함께 지내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메인메뉴는 닭 오븐구이와 토마토소스 병아리콩이었다. 둘 다 냄새가 기가 막혔다.
시어머니께서 각자 접시에 닭고기를 배분해 주셨는데 생일자인 남편 접시에 가장 먼저 넓적다리 한 조각을 놓아주셨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이다.
그다음으로는 내 접시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인 닭다리를 놔주셨다. 그리고 시부모님 두 분은 가슴살을 드셨다.
"한국에선 닭다리는 할아버지나 아빠가 드시거든요. 가장 선호하는 부위라서요."
"잘됐네! 닭다리는 네가 두 개다 먹으렴. 먹는 게 불편해서 우린 별로야. 차라리 이 가슴살이 건강하고 맛있지."
닭다리가 엄청 컸다. 오븐에서 기름이 쫙 빠진 껍질도 맛있었다. 함께 곁들인 토마토소스 병아리콩도 잘 어울렸다. 더 먹고 싶었지만 케이크를 먹을 배는 남겨둬야 하니 닭다리는 한 개만 먹었다.
어머나, 여보? 내 잔이 비었네?
와인을 따라 달라고 잔을 내밀었더니 남편이 나더러 그만 마시라며 와인병을 꼭 쥐고 놔주질 않았다. 샴페인 두 잔에 와인 한잔 마시는걸 다 세고 있었나 보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시어머니께서도 이번에는 남편말이 맞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며칠 전 한국친구들이랑 추석을 보내던 날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다음날 못 일어났던걸 기억하고 계신가 보다.
나는 와인병을 뺏아오기 위해 시아버지께 "와인 더 드실래요?"라고 여쭤보았다.
"아니, 괜찮아."
시아버지의 대답에 시어머니와 자서방이 크게 웃었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신 시아버지께서는 자서방이 쥐고 있던 와이병을 빼앗아서 내 잔에 따라주셨다. 내 잔에 와인이 채워질 때도 자서방은 "스톱! 스톱!"을 외쳤다.
누가 보면 당신 와이프 알코올중독자인 줄 알겠다야...
오랜만에 시댁에서 둘러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며 실컷 웃었더니 작년에 시댁에서 함께 지내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변한 점이 있다면 내가 프랑스어로 어설프게나마 대화에 좀 더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참, 술도 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