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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09. 2023

시댁에서의 식사는 언제나 즐겁다.

맛있는 음식과 샴페인 그리고 웃음이 있다. 

2021년 9월 27일 


랭스여행에서 돌아오신 시부모님께서는 이틀 후 우리를 점심식사에 초대하셨다. 늦었지만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시댁에 들어가자마자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선물이라고 종이가방을 하나 내미셨는데 그 안에는 머리핀 두 개가 담겨있었다. 내가 얼마 전에 머리핀을 잃어버렸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 외출할 때마다 항상 잊어버려서 못 사고 있었는데 내 말을 항상 경청해 주시고 마음 써 주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 어떤 큰 선물보다 감동스러웠다. 바로 머리를 올려서 새 핀으로 고정하고 마음에 꼭 든다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옆에 보이는 설탕들은 아버님께서 나를 위해 챙겨오신 거라고 한다. 내가 까페에 갈때마다 설탕을 챙기는 것을 기억하고 계셨던것이다. 


나도 이제는 휴대폰 메모장에다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것들, 그러니까 선물로 드리면 좋을만한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랭스에서 장식용 거울을 판매하는 가게에도 들르셨는데 그곳에서 거울을 4개나 사 오셨다며 꺼내서 보여주셨다.

우리 시어머니는 거울 장식품을 참 좋아하신다. 거실 한쪽 벽은 이미 거울 가게 못지않은 모습이다. 

"혹시 아침마다 거울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어보시나요?" 


"오, 안 궁금해. 나는 확실히 아니니까."

 

"랭스(샹빠뉴지역)에서 샴페인도 사 오셨나요?" 


"엄청 많이 사 왔지! 미슈, 지하실 내려가서 샴페인도 가져올 겸 우리가 사 온 거 요용한테도 보여주지 그래요?"


나는 시아버지를 따라서 지하실로 내려가보았다. 

오와... 저 상자들이 모두 샴페인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다 가져오신 거지..??

오른쪽에 11 상자 그리고 앞쪽에는 더 큰 용량으로 3 상자...

시아버지께서 상자를 뜯어서 보여주셨는데 병이 굉장히 크고 무거웠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마실 샴페인은 바로 이것.

우리가 샴페인을 마시는 동안 남편은 혼자서 레드와인을 마셨다. 샴페인을 안 좋아한다기보다는 레드와인을 유독 좋아한다. 우리는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며 일일이 잔을 부딪혔다. 




시어머니께서 샴페인 안주로 준비하신 이 과자 너무 맛있었다. 토마토소스, 파슬리, 치즈가 얹어져 있는데 파삭파삭한 식감도 좋고 안주로 최고였다. 이런 건 어디 가면 살 수 있나요...      



이 올리브는 시아버지께서 직접 담으신 거라고 하셨다. 

"와! 이거 정말 아버님이 직접 담으신 거예요?" 

"응, 이건 작년에 담은 거고 올해도 담을 거야. 매년 내가 하지."

"식초도 넣나요?"

"아니 식초는 안 들어가. 소금이랑 레몬을 넣고 오랫동안 발효시킨 거지."

"그럼 김치네요! 올리브 김치!"

시아버지께서 만드셨다고 하니 괜히 더 많이 집어먹게 된다. 이 올리브맛도 예전에는 잘 몰랐던 건데 이젠 다 맛있게 먹는 내가 스스로도 신기하다. 

밖에서 실컷 놀다가 모웬이 이제야 돌아왔다. 야... 큰형 생일인데 빈손으로 오는 거냐, 도마뱀도 하나 없이...


샴페인 한 병이 다 비워졌을 무렵 우리는 식사를 위해 다이닝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장 먼저 시어머니께서는 전채요리로 토마토냉수프를 내오셨다. 가스파초냐고 여쭤보니 이건 빵을 갈아 넣은 스페인식 냉수프, 살모레호(salmorejo)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다른 전채요리로 자서방이 좋아하는 고기파이 뚜흐뜨(Tourte à la viande)를 내 오셨다. 시댁에서 지낼 때 시아버지께서 종종 사오셨던 건데... 새삼 작년에 함께 지내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메인메뉴는 닭 오븐구이와 토마토소스 병아리콩이었다. 둘 다 냄새가 기가 막혔다.

시어머니께서 각자 접시에 닭고기를 배분해 주셨는데 생일자인 남편 접시에 가장 먼저 넓적다리 한 조각을 놓아주셨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이다. 

그다음으로는 내 접시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인 닭다리를 놔주셨다. 그리고 시부모님 두 분은 가슴살을 드셨다. 

"한국에선 닭다리는 할아버지나 아빠가 드시거든요. 가장 선호하는 부위라서요."

"잘됐네! 닭다리는 네가 두 개다 먹으렴. 먹는 게 불편해서 우린 별로야. 차라리 이 가슴살이 건강하고 맛있지."

닭다리가 엄청 컸다. 오븐에서 기름이 쫙 빠진 껍질도 맛있었다. 함께 곁들인 토마토소스 병아리콩도 잘 어울렸다. 더 먹고 싶었지만 케이크를 먹을 배는 남겨둬야 하니 닭다리는 한 개만 먹었다. 



어머나, 여보? 내 잔이 비었네? 

와인을 따라 달라고 잔을 내밀었더니 남편이 나더러 그만 마시라며 와인병을 꼭 쥐고 놔주질 않았다. 샴페인 두 잔에 와인 한잔 마시는걸 다 세고 있었나 보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시어머니께서도 이번에는 남편말이 맞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며칠 전 한국친구들이랑 추석을 보내던 날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다음날 못 일어났던걸 기억하고 계신가 보다.

나는 와인병을 뺏아오기 위해 시아버지께 "와인 더 드실래요?"라고 여쭤보았다. 


"아니, 괜찮아." 

시아버지의 대답에 시어머니와 자서방이 크게 웃었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신 시아버지께서는 자서방이 쥐고 있던 와이병을 빼앗아서 내 잔에 따라주셨다. 내 잔에 와인이 채워질 때도 자서방은 "스톱! 스톱!"을 외쳤다. 

누가 보면 당신 와이프 알코올중독자인 줄 알겠다야...


오랜만에 시댁에서 둘러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며 실컷 웃었더니 작년에 시댁에서 함께 지내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변한 점이 있다면 내가 프랑스어로 어설프게나마 대화에 좀 더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참, 술도 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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