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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0. 2023

그래도 우리는 소녀처럼 웃었다.

고작 공짜 아이스크림 하나에.

우리가 7박 8일간 묵었던 이 호텔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어머니 말씀으론 5성급 호텔치고는 가격도 저렴하다고 하는데 나는 일단 조식이 너무 맛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호텔에서 머무는 내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생수였다.


바로 이런 재활용 유리병에 채워진 생수가 첫날 두병이 제공되었는데, 다음날 빈병들은 수거되었고 새 물은 제공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둘째 날 조식을 먹으면서 시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이 호텔은 첫날에만 무료로 물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게 되었다. 

"나도 메이드가 깜빡한 줄 알고 리셉션에 전화를 해서 말했지. 그랬더니 중년의 남자직원이 말을 빙빙 돌리면서 미니바에 있는 물을 마시면 되지 않냐는 거야. 그거 무료냐 물으니 아니래. 무료로 물은 안 주냐 다시 물으니 복도에 정수기가 있다는구나. 다행히 어제 마시다 남은 작은 플라스틱병이 있어서 미슈가 복도에 나가서 정수기 물을 받아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만일 우리가 7박 8일을 연속으로 예약하지 않고 1박씩 지불했다면 매일 물을 줬으려나? 몸이 불편하신 시아버지께서 5성급 호텔에 묵으시면서 물 심부름까지 하셔야 된다니. 

"나는 이따위 구두쇠호텔에서 내 돈 주고 물은 사 먹지 않을 거야. 이따 외출하면 마트에 들러서 생수를 잔뜩 사 오자꾸나." 

"제 방에 사실 에어컨이 안되거든요. 처음부터 안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구두쇠호텔이라면 일부러 전기세를 아끼려고 방치한 걸 지도 모르겠어요! 당장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해야겠네요." 

"암! 이 호텔은 하당(radin: 구수쇠)이고 꽁(con:멍청이)이야!"

이렇게 나는 시어머니께 새로운 프랑스어 단어 두 개, 하당과 을 배웠다. (입에 착착 달라붙길래 남편과 전화통화 할 때 써먹었더니 꽁(con)은 정말 나쁜 말이니까 쓰지 말란다. 하지만 어머님 덕분에 벌써 입에 붙어버렸다고. 꽁꽁꽁!)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리셉션으로 전화를 했다. 친절한 젊은 남자가 응답했는데 에어컨 수리를 요청하면서 동시에 "근데 무료생수는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그 직원은 "아, 물도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시부모님이 계시는 391호에도 부탁합니다." 

"네, 물론이죠!"

잘 해결된 줄 알았지만 내가 몇 분 후 리셉션에 다시 전화했으때 응답한 중년의 남자직원은 쌀쌀함의 극치였다. 시어머니께서 통화하셨다는 그 문제의 직원이었던 것이다. 

"제가 지금 외출할 건데요, 외출한 사이에 에어컨 수리 진행해 주세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물도 잊지 말아 주세요." 

"물은 미니바에 있으니 그걸 드세요. 따로 드리지 않아요." 

"방금 통화한 직원은 준다고 하던데요?"

"물은 첫날에만 제공됩니다. 대신에 복도에 정수기가 있습니다." 

"물병을 수거해 가셨잖아요. 저는 방금 통화한 직원에게 물은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지 문의했을 뿐인데 그분이 제공해 주겠다고 먼저 말씀하신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무얼 원하시나요?" 

으악! 더 이상 대화가 안 되는구나 싶어서 그저 "Never mind"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마트에 들러서 생수를 잔뜩 사들고 들어왔는데 객실에는 결국 무료 생수 두병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사실 이 거만하고 불친절한 직원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에 항상 카를로스 곤이라고 부르셨다. 검색해 보니 진짜 얼굴이 닮았다! 





며칠 후 우리가 수영장에 있을 때였다. 옆에 있는 바에서 여직원이 나오더니 수영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닌가!



무료아이스크림 덕분에 나를 비롯해 풀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잠깐의 행복이 찾아왔다. 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잠시동안 은근한 유대감마저 느껴졌다. 

"... 완전 하당은 아닌가 봐요..." 

"그러게.. 뭐 싸구려 아이스크림이지만... 맛있네..." 

우리는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에 마음이 다 풀려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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