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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1. 2023

나이 마흔에 등교를 앞두고 설레다.

프랑스인 남편을 따라 나이 마흔에 그의 부모님이 계신 낭시라는 작은 도시에 뒤늦게 정착하게 되었다. 


낯선 프랑스 생활에 열심히 적응하는 나를 항상 응원해 주는 남편이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친구가 없어서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나 친구 있는데?" 


"우리 엄마는 당신의 친구가 아니야."

앗, 내가 시어머니 얘길 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았지.


"친구 맞아, 내 베프 셔." 

"사실 엄마도 당신 외로울까 봐 걱정이 많으시대."


"아 그래서 자꾸 만날 때마다 나더러 행복하냐고 물어보시는 거구나." 

우리 시어머니는 꼭 한 번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으신다.

너 행복하니...? 

프랑스 사는 거 만족하니...? 

안 외롭니...?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건가 싶었는데 남편 말을 듣고 보니 이제야 어떤 마음으로 자꾸 물으신 건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외로울까 봐 일부러 더 자주 연락 주시고 꽃도 자주 사다 주시는 거였나 보다. 이렇게나 나를 아껴주는 가족이 생겼는데 내가 외로울 리가!?

 

괜찮다는 내 말에도 여전히 남편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살다 보면 친구들도 자연스레 생기겠지. 그러면 나는 남편이 소외감 들 정도로 친구들이랑 놀러 다닐 거야. 근데 지금은 왠지 집에서 프랑스어 공부도 하고 남편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주 하면서 집안일하는 게 더 좋아. 나 지금도 행복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던 얼마 후 남편은 나에게 어학연수를 제안해 왔다. 


"낭시에 있는 어학원 몇 군데를 비교해 봤는데 로렌대학교 Défle가 가장 좋은 것 같아. 이곳에서 당신은 원하는 대로 프랑스어로 배울 수 있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게 될 거야." 


막상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내가 대학교에 간다고? 


학교에 등록하고 레벨테스트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학교 홈페이지에는 최종 반편성과 시간표가 공지되었다. 수준별로 가장 초급레벨인 D1에서 고급레벨 A1까지 총 7개의 그룹이 있는데 그중에서 5번째인 M3이면 꽤 잘 나온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남편은 어느새 내 시간표를 출력해서 냉장고 문에 떡하니 붙여놓았다.


"월요일부터 학교에 가려면 학용품 같은 거 필요한 거 있지 않아? 지금 사러 나갈까?" 

남편의 말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 무슨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이가 된 기분.

"공책이 필요하기는 해. 그리고 필기하기 좋은 펜도 갖고 싶어."

"나가자, 사줄게." 

나는 그렇게 아빠, 아니 남편을 따라서 공책을 사러 나갔다.      


남편차를 타고 동네 모노프리에 가는 길에 남편의 전화벨이 울렸다. 파리에 사는 사촌 누나 부부였는데 흥이 많은 이 부부는 오늘도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로 둘이 함께 인사말을 외쳤다. 


"살뤼! 별일 없지 우리 사촌?" 

"나 지금 운전하고 있어. 우리 '쁘띠'가 월요일부터 학교에 가잖아. 학용품 사러 가." 

"요용 학교 가는구나. 축하해! 와이프가 학생이라니 좀 멋진데?"

아, 그 쁘띠가 나였구나.... 

남편이 사준 공책과 볼펜을 소중히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아 동네 한 바퀴를 드라이브한 후 집으로 왔다. 자랑스러울 것도 많은 우리 남편. 내가 레벨테스트를 잘 봐서 자랑스럽다더니 이번에는 후진 주차를 잘해서 자랑스럽단다.


나 등교할 때 무슨 옷 입고가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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