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비법 카레
2019년 7월 20일
시어머니께서 몸살에 걸리셔서 며칠째 고생 중이실 때의 일이다.
“미셸이 파리에서 병균을 달고 와서 나만 고생이네. 너희한테는 옮기면 안 되는데!!”
시아버지께서 며칠 전 파리에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감기에 걸려 오셨는데 시어머니까지 감기에 옮으셔서 계속 시아버지께 잔소리를 하고 계신것이었다.
시아버지께 짜증을 내시다가도 고양이들이 들어오면 목소리가 180도 상냥하게 바뀌셔서 "오~ 내 아기~" 하시고, 고양이들이 사라지면 또 시아버지께 내가 다 알아들을 수 없는 잔소리를 이어가곤 하셨다.
잔소리를 묵묵히 듣고만 계신 시아버지도 여전히 심한 기침을 한 번씩 하셨고 그럴 때마다 자서방은 물에 탄 기침약을 갖다 드렸다. 자서방은 우리도 감기에 옮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가 이 집에서 지내면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면 참 운이 좋은걸 거야... 조심하자..."
시어머니께서 오후에 낮잠을 주무시는 사이 시아버지께서는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맥주가 떨어졌다며 사러 가겠다고 하셨고 자서방은 와인을 더 사고 싶다고 했기에 우리도 따라나섰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맥주뿐만 아니라 플레인 요구르트와 과일도 사셨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잔소리를 하셨는데도 저렇게 다정하시다.
자서방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꽃 파는 곳으로 가더니 장미꽃 두 다발을 바구니에 담았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거든.”
순간 시어머니께서 언젠간 나에게 웃으며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나는 고양이를 입양할 때도 무조건 수컷으로만 데려와. 왜냐면 이 집에 여자는 나 하나여야 하니까. 난 이 집의 여왕이야”
(며느리는 가끔 오는 거라 괜찮다고 하셨다.) 여왕이 맞으신 듯하다. 이렇게 두 남자의 사랑을 받고 계시니. 나의 롤모델- 고양이는 수컷만 - 메모 완료.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누워계시던 시어머니가 깨어나신 걸 보고 내가 장미 꽃다발을 내밀며 자서방이 어머니 선물로 산거라고 했더니 시어머니는 매우 좋아하시며 "오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셨고 꽃향기를 맡으시며 화병에 물을 담아 꽃을 옮겨오셨다.
그런데 저녁에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갑자기 말씀하시는 것이다.
“고맙다 우리 며늘.”
“네?”
"꽃 말이다."
옆에 있던 자서방이 말했다.
”네가 사자고 해서 산거잖아 엄마 드린다고- 난 계산만 했을 뿐- “
요물!
이 무뚝뚝한 남자의 지혜로 나는 더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다.
다음날에는 시어머니께서 기침이 더 심해지셔서 저녁 요리는 내가 대신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시어머니께서는 꼭 오늘 저녁에 해 주고 싶은 요리가 있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시어머니의 예전 직장 동료인 파티마가 얼마 전 방콕 여행을 다녀오면서 강황가루를 선물로 사다 주었는데 그 강황가루에 닭고기를 절여서 어제 냉장고에 넣어두셨던 것이다. 오늘 카레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말이다.
시어머니께서는 요리를 하시면서도 기침을 심하게 하셨지만 카레는 어느새 너무 맛있는 냄새를 뿜으며 익어가고 있었다. 닭고기가 타지 않도록 열심히 냄비를 저으며 나는 곁에서 내 사진을 찍고 있던 자서방에게 말했다.
"냄새가 너무 좋다. 태국 마사만 카레 냄새랑도 조금 비슷한 것 같고 슈퍼에서 파는 카레보다 훨씬 건강한 냄새가 나."
“우리 엄마는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는 그런 카레 말고 이렇게 직접 강황가루로 만드셔. 차원이 다르지.”
자서방이 뿌듯한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대답했고, 저쪽에서 코코넛 밀크를 꺼내고 계시던 시어머니께서도 웃으시며 한마디 더 보태셨다.
"내가 말이지, 인도, 베트남, 태국 현지 요리교실에서도 직접 배웠고, 요즘에는 또 우리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중이란다."
선생님? 의아해서 자서방을 쳐다봤더니 큰 입모양으로 작게 속삭였다.
'유튜브'
“신기한 향신료들이 많이 들어갔네요. 이건 시나몬이죠? 이거는 뭐예요?"
자서방이 옆에 와서 끓고 있는 냄비를 보며 바쁜 시어머니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응 여기에 뭐가 들어갔는지 내가 알려줄게. 우선 치킨이 들어갔고, 강황가루랑 아니스, 레몬그라스, 시나몬, 그리고 인플루엔자가 들어가 있지.”
"와하하하하!!"
진심으로 빵 터져서 자서방이랑 둘이서 깔깔거리고 웃고 있으려니 시어머니께서 오셔서 무슨 일인지 물으셨다. 자서방이 시어머니께 우리 대화 내용을 말씀드리더니 갑자기 정색하며 나에게 말했다.
"넌 우리 엄마 아픈 게 그렇게도 좋니? 어떻게 그렇게 웃어?"
지도 웃었으면서... 그래 내가 더 웃었다.
시어머니께서도 서운하신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래 넌 나쁘다. 넌 오늘 내 카레 먹을 생각하지 말고 밤에는 정원에 나가서 자거라"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면서도 계속 웃었다. 역시 자서방은 내 웃음 아킬레스를 잘 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인플루엔자라니...
그날 저녁 우리 가족들은 인플루엔자 카레를 맛있게 먹었고 나는 무사히 침실에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