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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9. 2020

사촌언니와 재회하신 시어머니

"꼬꼬마였던 너를 내가 무슨 수로 알아봤겠니..."

2017년 7월 31일

시어머니께는 낭시에 살고 계신 사촌언니가 한 분 계시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안.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이분은 나를 처음 보셨을 때 내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부으며 예쁘다고 말씀해 주신 훌륭한(?) 분이시다.


그녀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자서방과 시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그녀의 집에 방문을 하게 된 날이었다.


우리는 알자스에서 사 온 초콜릿 케이크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시댁으로부터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젊은 시절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 낭시로 오신 거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사촌언니가 계셔서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친언니도 일찍 잃으신 상태에서 말이다... 


크리스티안의 집은 으리으리했다.


나를 위해 그녀의 남자 친구는 집안 곳곳을 구경시켜 주셨는데 집이 굉장히 넓었다. 넓은 거실뿐 아니라 복도와 부엌 그리고 모든 방에 멋진 그림들과 장식품들이 진열돼 있었고 가구들도 모두 고급스러워 보였다. 마치 미술관에 온 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열돼 있는 느낌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 중 서명이 없는 것은 크리스티안이 취미로 직접 그린 거라고 하셨다.


거실에는 샴페인과 간단한 음식이 준비돼 있었는데 팬케이크 위에 생선알 등이 얹어져 있는 음식에서 준비한 사람의 정성이 가득 느껴졌다.

길고 긴 샴페인 타임이 끝나고 식사를 위해 테이블로 다 같이 이동했다.


크리스티안은 테이블을 교체할 예정이라고 하며 카탈로그 속의 고급스러운 둥근 테이블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떠냐고 물으시길래 내가 대답했다. 

 

"지금 이 테이블도 너무 예쁜데요? 지금 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이즈와 모양인 것 같아서 저는 이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라운드 테이블은 엄청 비싸네요"  


그러자 크리스티안은 내 머리를 꼭 안아주고는 내 이마에 소리 나게 뽀뽀를 여러 번 하고는 말씀하셨다.


"오, 사랑스러운 것! 너의 한마디로 얼마를 절약하게 되었는지 넌 모를 거다. 결정하는데 도움을 줘서 정말 고마워.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자서방이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전채요리로 오이와 토마토 등을 갈아서 만든 냉수프를 먼저 먹었는데 식기들이 참 고급스러워 보였다. 

스테이크는 크리스티안의 남자 친구가 혼자 비 오는 테라스의 지붕 아래에서 구워오셨다. 나가서 도와드리도록 자서방을 보냈지만 그는 거절을 당하고 그냥 돌아왔다. 

 

스테이크에 라따뚜이와 버섯볶음을 곁들였다. 버섯은 오리 기름을 넣고 볶았다고 하셨는데 정말 일품이었다. 내가 잘 먹는 걸 보고는 자서방이 남은 버섯을 모두 내 접시에 덜어 주었다.

본식이 끝나고 여러 종류의 치즈를 내 오셨다.


옆에서 치즈를 계속 잘라주셔서 다 받아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렀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가져온 케이크가 드디어 등장했다. 


 "다들 주목하세요~"


크리스티안의 남자 친구는 모두를 주목시킨 후 포크로 케이크를 톡톡 두드려서 산산조각을 내셨다. 그걸 보고 엄청난 쇼를 보는 것 마냥 다들 손뼉을 치며 좋아하길래 이게 무슨 상황 인가하고 봤더니 단단한 초콜릿 안에 또 다른 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건 내가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초콜릿 케이크보다 맛있었다.

이제는 배도 부르고 크리스티안에게 내가 질문을 시작했다.  


"고향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두 분이 가까이 살고 계셔서 너무 좋아 보여요. 두 분 어릴 적에도 이렇게 친하셨어요?"


"우린 어렸을 때 전혀 안 친했단다. 내가 마리엘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어린 시절 모습은 내가 16살 때쯤? 그러니까 마리엘이 7살 정도로 꼬꼬마였을 때지. 얘가 너무 어리니까 나는 놀아주지도 않았어. 그러다 나는 멀리 시집갔고 몇십 년 동안 연락은커녕 서로를 완전히 잊고 살다시피 했지."  


우리 시어머니께서도 공감하시는지 옆에서 고개를 끄떡이며 듣고 계셨다. 


"내 딸이 지체장애가 있는데 마침 치료도 받고 거주도 할 수 있는 좋은 장애아동 시설이 생겼길래 그곳에 내 딸을 등록시켰단다. 두 번째로 그곳을 방문하고 나오던 날, 얘가 글쎄 팔짱을 이렇게 끼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지 않겠니? 나더러 그러더라, [나 모르겠어요? 정말 이러기예요? 나 마리엘이라고요!] 처음에는 여전히 못 알아보고서 계속 마리엘이 누군지 나는 모른다고 했지 뭐니."


이 대목에서 온 식구들이 다 같이 웃었다. 


이제는 서운함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표정으로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난 처음 본 순간 딱 알아봤는데...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달려갔더니 글쎄 나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겠니? 못 알아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화도 나고 서운하더라고... 두 번째 본 날도 나는 일부러 근처에서 계속 서성였단다. 언제까지 나를 못 알아보나 싶어서. 결국 끝까지 못 알아보길래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지 뭐."

 

크리스티안은 시어머니의 얼굴이 꼬꼬마 때와 너무 달라져 있어서 못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셨고 그러는 와중에도 사촌언니를 단번에 알아보신 시어머니께서는 지지 않고 계속 반박하시며 온 가족을 유쾌하게 해 주셨다. 


참고로 그 장애 아동 시설은 우리 시아버지께서 원장으로 계시던 곳이었다. 


인연이라는 건 정말 희한하다. 


이렇게 먼 곳에서 오랜 세월 후에 사촌언니와 우연히 재회해서 서로 의지하며 가까이 살고 계신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또한 자서방과의 인연으로 먼 타국에서 이렇게나 좋은 분들과 가족의 끈으로 엮어지게 된 나 또한 너무나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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