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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6. 2020

나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좌절한 당신께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2008년 2월 마닐라 공항. 


겁도 없이 필리핀에서 사업에 도전을 했던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경험했지만, 그 직후에는 나락까지 떨어졌다.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크게 배신을 당했고 돈과 마음 그리고 건강까지 탈탈 털린 후 원망과 울분만 가득 안고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악재가 처음 터졌을 땐, 소리 내 엉엉 울기도 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혼자서 아등바등했다. 그러다 두 번 세 번 큰 악재가 이어졌을 때는 그저 '나더러 죽으라는 거구나'라는 마음이 들어 정말로 삶으로부터 도망가기로 결심을 했을 뿐이다.


오늘 떠날까 내일 떠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넋을 놓고 지내던 그 무렵, 한국에 있던 우리 언니가 수년간의 항암치료와 수십 번의 유산 끝에 드디어 조카를 건강하게 임신했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나는 마음이 약해질까 봐 가족들과의 전화통화조차 꺼리고 있었다. 그런데 언니가 울먹거리면서 전화기 너머로, 곧 태어날 조카가 자랄 때 이모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듣고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고, 고국으로 돌아올 용기를 낼 수가 있었다.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체크인을 위해 긴 줄의 맨 뒤로 가서 섰을 때, 바로 앞에 계시던 한국인 할머니 한분이 나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시며 한국인이냐고 물어오셨다. 맞다고 하자 그분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 티켓으로 오늘 한국에 갈 수 있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하시며 종이를 내미셨다. 


1년짜리 오픈티켓이었는데, 입국하신 지 10개월 정도 되신 상황이었다. 날짜 확정은 안되어 있었고, 그저 스케줄이 적힌 작은 메모지만 붙어있었을 뿐이었다.


일로일로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혼자 오셨단다. 영어도 전혀 못하시고, 비행기도 생전 처음 혼자서 타본 거라고 하셨다. 어째서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오신 것일까-


일로일로에 살고 있는 딸 부부가 약 10개월 전 그곳으로 모셔갔고, 원래 다음 주쯤에 다 같이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했었는데, 자식들이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겼으니 할머니께 혼자 떠나시라고 했단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싫다는 말도 못 하신 거라고... 


다행히 티켓팅은 무사히 끝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출국심사였다. 


나는 스탬프를 받고 통과를 했지만, 뒤에 계시던 할머니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셨다. 그간 비자 연장이 전혀 돼 있지 않았고, 거기다 6개월 이상 체류하셨기 때문에 일종의 Special clearance가 있어야만 출국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이분은 공항 밖을 나가시면 가실 데가 없고 어떻게든 이곳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고 내가 이민국 직원에게 사정해 보았지만 그 직원은 단호했다.


"방법은 하나. 일로일로에 돌아가서 비자를 처리한 후 다시 오시오." 


나는 할머니를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떠날까 봐 내 옷깃을 꽉 쥐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공항에서 무슨 일 있으면 돈을 주면 된다더라고. 그래서 사위가 돈을 많이 줬다며 본인의 가방을 나에게 두드려 보이셨다. 


뭐... 솔직히 돈 싫다는 필리핀 공항 직원은 나도 처음 봤다. 


나는 우선 사위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했고 일로일로로 다시 모셔가야 할 것 같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고 돈도 많이 드려서 보냈으니 이민국 캐셔에 가서 페이만 하면 되는일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뭘 모른단다. 그리고는 바쁜 듯 전화를 서둘러 끊어버렸다. 


아오... 


딸과 통화하시던 할머니는 딸의 전화도 나에게 바꿔 주셨지만 그녀는 그저 '어쩌죠.. 이일을 어째..' 이런 말만 반복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어도 한마디 못하시는 연세 드신 내 어머니를, 비자도 처리하지 않은 채로, 그것도 굳이 날짜 여유가 있는 오픈티켓으로 급하게 혼자 가시게 하다니... 


일로일로에서 국내선으로 도착하신 후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실 때에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지나가던 필리핀 남자를 붙잡고 티켓을 보여주며 몸짓으로 설명을 하셨고, 지갑도 열어 보여주셨다고 했다. 돈을 꺼내가라는 손짓과 함께 말이다. 그 사람은 지갑에서 한 장(얼마 짜린지는 모른다고 하셨다.)을 꺼내갔고 할머니를 무사히 국제공항 내 티켓팅 하는 줄까지 안내해줬다고 하셨다. 


아무튼 내 생각을 읽으셨는지 할머니께서는 연신 우리 사위가 내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바빠서 그렇지.. 비서는 나쁘지만 우리 사위는 좋은 사람이라며 사위를 두둔하셨다.


공항을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마침내 이민국 표지가 적힌 사무실을 발견했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 척, 최대한 겁먹은 표정으로 우리 두 사람의 여권을 펼쳐서 직원에게 보여준 후, 여기는 스탬프가 있는데 여기는 없다는 뜻을 서툴게 전달을 했고, 동료들 서너 명과 정신없이 수다를 떨며 웃고 있던 그 직원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할머니의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인데 본인들의 실수로 스탬프 하나를 빠트렸다고 오해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지갑을 열고 계시던 할머니를 모시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얼떨결에 스탬프를 받아서 우리는 출국 심사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줄을 서야 될까봐 겁이 나서 한 남자 직원에게 우리 두 사람의 여권 스탬프를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또 한 번 불쌍한 표정을 날렸다. 그분은 웃으며 별도의 통로를 통해 우리를 바로 통과시켜 주셨다. 


원래 비용 이외에도 엄청난 페널티가 있었을 텐데 운이 정말 좋았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서류 작업도 하나 없이 얼떨결에 스탬프를 받아 면세구역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아가씨, 나 김밥 싸왔는데 같이 먹을래? 2인분 넉넉히 싸왔거든."


오, 김밥!


나와 김밥을 드시면서도 할머니는 여전히 불안하셨던지 누가 쳐다만 봐도 고개를 떨구셨다. 나는 이곳에서는 아무도 우리의 여권을 검사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설명을 해 드려야만 했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셨는지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나 정말 하나님이 기도 들어주셨나 봐... 갑자기 자식들이 나더러 혼자서 한국에 가야 된다고 했을 때 나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기도만 했거든. 꼭 한국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좋은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들어주셨잖아."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특별히 와 닿지도 않았고 그저 김밥에 열중하며 고개만 끄덕끄덕하며 웃어드렸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였다.


"근데 할머니 한국 어디 사세요?"


"나? 안산."


"안산 어디요?"


"왜? 잘 모를 텐데... 안산 XX동."


타국에서 우연히 만나 내가 도움을 드린 이분은 바로 우리 동네, 그것도 우리 집 아주 가까이에 살고 계신 이웃이셨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진심으로 전율했다.


난 사실 마음속으로 '이 할머니는 나를 만나지 않으셨더라면 큰일 날뻔하셨어.'라고 생각하며 은근히 뿌듯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그런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젠간 라디오에서 들은 문구가 있다.


God has a way of allowing us to be at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이 얼마나 경이롭고 멋진 세상인지!


사업에 실패하고 사람들로부터 거듭해서 배신을 당했을 때 나는 절망했고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미웠다. 그리고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내가 겪었던 절망의 시간들 조차도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꼭 필요했던 과정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예수님을 믿건 부처님을 믿건 혹은 알라신을 믿건 그건 우리 삶에서 집중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에 온 우주가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내가 짠 하고 나타나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완벽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 당신이 극한 어려움에 처해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여기거나 절대적으로 혼자라고 느낀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나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내 도움이 "마침" 필요한 사람들을 몇 번 더 맞닥뜨렸고 작지만 꼭 필요했던 도움을 주게 되면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주변에 내 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꼭 알아채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세상보다 훨씬 더 멋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당신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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