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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0

시어머니의 반짇고리

어린 시절 자서방이 고사리손으로 바느질해서 만든 바늘꽂이를 만났다.

한가롭던 어느 여름날의 오후였다.


나는 시댁 거실 소파 위에 편하게 늘어져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남편은 근처에서 모웬과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때 시어머니께서 반짇고리를 가지고 내 옆에 오셔서 옷감을 수선하기 시작하셨다. 어릴 적 친정엄마가 바느질을 하실 때면 옆에서 지켜보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온 세상의 어머니들은 많이 다르지 않구나... 


가만히 시어머니의 바느질을 지켜보던 나는 반짇고리 속에서 눈에 띄는 핑크색 천 쪼가리를 발견하고는 집어 들고 여쭤보았다.


"이거 뭐예요?"


그러자 저쪽에서 모웬과 놀고 있던 자서방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와! 저게 아직도 있네? 엄마, 저걸 아직도 쓰고 계셨어요?"


자서방은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어서 말했다.


"저거 내가 초등학교 때 수업 중에 만든 거거든. 거기 한번 펼쳐볼래? 단추 같은 것도 많이 달아서 장식한 거 보이지? 난생처음 바느질을 해서 만든 건데 엄마한테 선물로 드렸지. 내가 얼마나 뿌듯했었다고. 그거 이리 좀 줘봐, 오우 엄마, 이걸 여태 간직하셨어요? 정말 감동이에요..."


내가 전달해 준 바늘꽂이를 받아 들고는 이리저리 만져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자서방을 보니 너무 사랑스럽고 흐뭇했다. 그리고 그걸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신 시어머니의 마음 또한 감동스러웠다.


그때 이어진 시어머니의 충격적인 대답.


"뭐?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난 몰랐네... 그냥 여기 있길래 수십 년간 별생각 없이 사용해 온 거지, 꼭 간직하려고 했던 건 아니란다. 이제는 알았으니 지금부터는 우리 아들 생각하면서 소중히 잘 쓰도록 할게."


이때 자서방의 허탈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비디오라도 찍어놨다면 두고두고 웃었을 텐데...


자서방은 정말 충격을 받았고 나는 소파에서 뒹굴며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냐며 자서방은 펄쩍 뛰었지만,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바느질에만 열중하셨다. 


이게 어린 자서방이 고사리 손으로 직접 만든 거란 말이지..


처음에는 그냥 난잡한 천 쪼가리로 보였을 뿐이지만 다시 뜯어보니 바느질이 들어간 부분이 꽤 많았다. 삐뚤빼뚤한 바느질을 보면서 콧물을 훔치며 이것저것 장식도 달고 했을 어린 자서방의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한테 드려야지 하면서 정성껏 만들었고 엄마는 정말 수십 년간 그걸 간직하고 계셨다. 비록 출처는 까맣게 모르셨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서방의 바늘꽂이를 만지다가 그만 바늘 하나를 떨어트렸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나는 소파 구석에 손을 넣고 뒤지기 시작했다. 이때 시어머니와 자서방이 동시에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외쳤다.


"안돼!"  

"멈춰!"


놀래서 멈칫하는 나에게 두 사람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서방이 어릴 적 바늘을 찾다가 응급실에 실려간 이야기를 말이다. 자서방이 12살 때 야구글로브 직접 꿰매다가 (바늘꽂이를 만든 후 바느질에 자신감이 붙었던 모양이다.) 바늘이 손바닥을 관통하는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바늘이 손바닥을 뚫을 수가 있지?"


"내가 야구글로브를 꿰매다가 중간에 바늘을 카펫 위에 살짝 세워놨었거든. 다시 찾으려고 보니까 오후라 어두워서 바늘이 안 보이는 거야. 불을 켜거나 손으로 살살 찾았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급한 마음에 손바닥을 편채로 카펫 여기저기를 세게 두드린 거지. 그러다가 세워져 있던 바늘이 손바닥으로 푹 들어갔는데, 바늘은 부러지고 손바닥 안에는 부러진 바늘 조각이 그대로 남아있었어. 응급실로 갔다가 상태가 꽤 심각해서 결국 수술하고 하룻밤 입원까지 해야 했지."


시어머니께서는 지금 생각해도 한심하다는 듯이 자서방을 바라보시다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다음 날 퇴원 안 하겠다고 병원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창피했던지... "


"퇴원하는 걸 거부했다고요?"


자서방은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는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대신 대답해주었다.


"난 그때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고, 난생처음 입원이라는 걸 했더니 친척들이 맛있는 걸 사 가지고 줄줄이 찾아오는 거야. 사람들이 너무 잘해주니까 그곳을 떠나기가 싫었던 것 같아. 나도 다 기억나. 내가 막 소리치고 난리 친 거."


시어머니께서도 이제는 함께 웃으시며 당시 진상 어린이 자서방의 병원 난동에 대해서 상세히 들려주셨다.


아 귀여워...


그 진상 어린이는 자라서 바늘을 무서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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