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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5. 2023

프랑스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

떨리던 그날의 기억

나를 별로 안 좋아하시면 어쩌지?


2016년 8월. 

당시에는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 자서방을 따라 난생처음 프랑스 낭시에 있는 그의 부모님 댁으로 가는 여정 내내 나는 이 걱정을 했다. 


그가 2주간의 휴가를 자신의 고향에서 부모님과 같이 보내자고 했을 때, 나는 단 한번 가보았던 파리의 낭만적인 테라스가 있는 거리들을 떠올리며 흔쾌히 OK를 외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출발일이 되어 비행기에 오르자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혼은커녕 약혼조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 아들이 여자 친구를 (그것도 외국 여자를) 집에 데려와 2주간 (그것도 한방에서) 지내겠다고 한다면, 어떤 부모님들이 두 팔 벌려 환영을 해 줄 것인가? 적어도 한국인 기준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걱정 마. 우리 부모님 굉장히 좋으신 분들이야. 그리고 네 말대로 우린 아직 장래를 약속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님 앞에서 부담 가질 필요가 없잖아?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성공적인 휴가를 보내면 되는 거야. 난 그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과 2주 동안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행복하다고. 우린 우리 엄마의 맛있는 요리를 실컷 먹게 될 거고, 훌륭한 와인도 많이 마시게 될 거야."


그는 이미 잔뜩 들떠 있었다. 


우리가 룩셈부르크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와 계시던 시부모님을 난생처음으로 만났다. 시아버지는 흰머리와 흰 수염을 가진 넉넉한 인상이셨고, 시어머니는 처음 보는 나를 마치 오랜만에 만난 조카라도 반기듯 친근하게 맞아주시며 여행이 편안했는지를 물으셨다. 두 분과 차례로 볼 키스를 나눌 때 나는 생각했다. 이거 참 좋은 거구나... 처음 만난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친밀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 말이다. 이미 두 분과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룩셈부르크 공항에서 시아버지의 차를 타고 자정 무렵이 다 되어서야 낭시에 있는 그의 고향집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으로 대문을 지나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낯설면서도 뭔가 아늑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빼꼼히 나를 바라보던 두 마리의 고양이들도 내 긴장을 한층 풀어주었다.  



자, 피곤하겠지만 부엌 먼저 보여줄게요. 내일 혹시라도 일찍 일어나게 된다면 여기 냉장고에 있는 거 뭐든지 편하게 꺼내먹도록 해요.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골고루 채워놨어요. 휴가 온 거니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 집처럼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시어머니께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으신 분이시다. 처음 만난 그날도 무심한 척하시면서 세심하게 챙겨 주셨다. 휴가로 온 거니 집안일은 일절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내가 청소를 하려고 하면 이 집은 아무도 청소를 안 하는 집이라며 끝까지 만류하셨다. 매일매일 맛있는 프랑스 음식을 만들어 주셨고 항상 내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스칼롭스를 좋아한다는 걸 아시고는 스칼롭스를 잔뜩 사 오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해 주시며 내 눈과 입을 행복하게 해 주셨다. 


시아버지께서는 비록 나와 직접 말이 통하진 않으셨지만 내가 캐슬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듣고서 콜마르에 있는 오쾨니스부르에 데려가 주셨다. 산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성이었는데 차가 많이 막혀서 고생을 하셨고, 그 큰 성을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일일이 보여주시느라 또 고생을 하셨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날 또 다른 캐슬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을 하셔서 온 식구들을 놀라게 하셨다. 그리고 바게트를 사러 가실 때 종종 나를 위해 슈크림 디저트나 작은 초콜릿케이크들을 따로 사 오곤 하셨다. 


남편은 그때 여행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스타니슬라스 광장에 갔을 때 우리 엄마가 너랑 사진 찍으시면서 갑자기 네 볼에 입맞춤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 엄마 아빠 두 분 다 그렇게 애정표현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시거든. 단순히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서 그런 정도가 아니셨어. 널 처음부터 사랑하신 거야  



첫 낭시 여행에서 2주간 나는 남자 친구의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고 무엇보다 이렇게 멋진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이 남자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남자와 결혼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멋진 두 분과 가족이 된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았다. 


우리의 약혼 소식을 시부모님께 알렸을 때 그분들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단다. 처음에는 그저 네가 난생처음으로 여자를 데려온다고 해서 놀랐지만, 막상 둘이 함께 있는 걸 보니 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더구나. 네가 누군가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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