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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5. 2023

시어머니의 무화과 클라푸티

남편아, 나한테 프로포즈 해줘서 고마워.

2020년 9월 24일. 


[오늘 무화과 익은 걸 꽤 땄는데 너 집에 갈 때 들러서 가져가렴.] 


나는 어머님의 반가운 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수업 끝나자마자 시댁으로 달려갔다. 시댁 대문을 들어서는데 차고에서 일을 하고 계신 시아버지가 보였다. 큰소리로 시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양팔까지 흔들어가며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봉쥬 미셸! 별일 없으신가요!" 

별일 없다고 대답하시는 시아버지의 얼굴이 밝아 보이셔서 다행이다. 사고 이후 아버님을 뵐 때마다 나는 내 긍정에너지를 나눠드리고 싶어서 일부러라도 더 크고 밝게 인사를 드리고 있는 중이다.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죽만 드시던 아버님께서 오늘 점심때부터 조금씩 일반식을 드시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향긋한 버터향이 온 집안에 퍼지고 있었다. 


"무화과로 만든 클라푸티란다! 너 주려고 작은 것도 만들어놨어. 아직 따뜻하니까 꼭 오늘 저녁에 먹으렴!" 



클라푸티와 함께 무화과도 한통 주셨다. 요즘은 이렇게 시댁에 갈 때마다 무화과를 얻어온다. 미라벨처럼 한 번에 다 익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익은 것만 싱싱하게 따먹을 수 있는 게 참 좋다. 

"이 장난감은 무스카델 거야. 그 친절한 남자 기억나니? 우리에게 마스크도 만들어 줬던... 마리필립의 집에 세 들어 사는 키 큰 남자..."

"네! 그헝 미셸이요!" 

우리 시아버지와 이름이 같지만 이 남자는 키가 2미터는 족히 넘는다. 그래서 시어머니께서는 큰 미셸(그헝 미셸)이라고 부르신다. 그 친절한 남자가 무스카델을 위한 선물까지 챙겨주다니!

어머님께서는 무화과랑 같이 먹으면 맛있다며 장봉도 하나 주셨다. 어차피 무화과와 잠봉은 서로 만나지 않을 운명이란걸 나나 시어머니나 잘 알고 있다. 잠봉은 자서방 입으로 무화과는 내 입으로 들어갈것이다. 

시댁을 나오는데 시어머니의 친구 앙뚜와네트여사께서 마침 찾아오셨다. 빈 바구니를 들고 오신걸로 보아 이분도 무화과를 얻으러 오신게 분명하다. 일전에 내가 야생버섯을 얻으러 왔다가 시댁을 나설때도 이분이 빈 바구니를 들어오시다가 나랑 딱 마주쳤었는데 뭔가 데자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분은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시며 요즘 프랑스어 수업은 할만하냐고 안부를 물으셨다. 시어머니께서 내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게 분명하다. 하긴 나도 맨날 시어머니 이야기를 블로그에 하니까...      


"바로 가려구? 너 내일 프랑스어 수업없잖니. 우리끼리 차라도 한잔 하고 가지그러니." 


시어머니께서 붙잡으셨지만 집에서 기다릴 우리 남편과 무스카델이 보고싶어서 안되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차고에 시아버지께서 안보이시길래 목청이 터져라 시아버지 이름을 외르며 인사를 했더니 시어머니와 앙뚜와네트여사께서 재미있다고 크게 웃으셨다.  


집에 왔더니 먼저 퇴근해 온 우리 자서방이 아침에 먹으라며 나를 위해 크루아상과 초콜렛빵을 사다놓았다! 


"내일 아침에 클라푸티 먹으려고 했는데... 그럼 클라푸티는 지금 먹어야겠다... "


내가 꽤 곤란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더니 자서방이 웃었다. 



무화과가 들어간 클라푸티!

맨 위에는 고소한 아몬드조각들이 뿌려져 있는 시어머니의 클라푸티는 정말 맛있다!

행복한 표정으로 클라푸티를 우물우물 씹고 있는 나를 보며 자서방이 말했다.

"음... 그 정도 씹었으면 어느 순간에는 삼켜야한다는거 알지?" 

웃음이 터져서 입속에 있던 아까운 클라푸티를 뿜을뻔했다. 내가 너무 오래 음미했구나. 빨리 삼키기 아까웠나보다. 


남편아, 나한테 프로포즈 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나 이렇게 맛있는거 많이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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