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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5. 2023

항상 나를 웃게 하시는 크리스티안 이모님

"너 이거 한번 깨 봐라. 네 시어머니가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

2020년 7월 28일. 


시부모님께서 주말 점심 식사에 우리를 초대하셨다. 


시어머니의 사촌 언니인 크리스티안 이모님도 오신다는데 어머님께서는 오랜만의 가족모임에 꽤 들뜨신 것 같았다.





내가 크리스티안 이모님을 처음 만난 건 프랑스에 이주해 오기 전 자서방을 따라 시댁에 휴가를 왔던 2007년도였다. 가족이나 친척이 많지 않은 우리 시댁에 찾아오신 이 우아하고 유쾌한 이모님께서는 나를 보시자마자 내가 예쁘다며 내 얼굴에 뽀뽀 세례를 하셨다. 연세가 여든이라고 하셔서 얼마나 놀랬던지... 그다음 해에 내가 다시 프랑스에 왔을 때 이분은 본인의 멋진 집으로 저녁식사에 초대까지 해 주셨다. 당시 나는 시어머니와 이모님께서 서로 다른 도시에 거주하신 후 낭시에서 재회하신 사연이 궁금했는데 이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우린 어렸을 때는 전혀 안 친했단다. 내가 마리엘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어린 시절 모습은 내가 16살 때야. 그러니까 마리엘이 7살 꼬꼬마였을 때 지. 그땐 얘가 너무 어리니까 나는 잘 놀아주지도 않았어. 그러다 나는 다른 도시로 시집을 갔고 그 후 몇십 년 동안 연락은 커녕 완전히 잊고 살다시피 했지. 내 딸이 지체장애가 있는데 마침 거주하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장애아동 시설이 생겼다기에 거기에 내 딸을 등록하러 갔단다. 그 시설을 방문하고 나오는 데, 얘가 팔짱을 낀 채로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지 않겠니? 나더러 "나 모르겠어요? 정말 이러기예요? 나 마리엘이라고요!"라고 말하길래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 줄 아니? 나는 마리엘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단다, 호호호]


참고로 그 시설은 우리 시아버지께서 원장님으로 계신 곳이었는데 시어머니께서도 당시 그곳에서 함께 근무를 하고 계셨다. 





우리가 시댁에 도착했을 때 먼저 와 계시던 이모님께서 세상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녀는 여전히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이셨다. 



이모님의 남자친구는 현재 코로나로 인해 몇 달째 병원에 입원 중이신데 자가 호흡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상심이 크신 이모님은 한동안 외출도 잘 안 하셔서 시어머니의 걱정 또한 크셨다. 다행히 오늘 이모님은 예전처럼 유쾌한 모습이셔서 다들 안도했다. 특히 자서방과 이모님 콤비의 재미있는 만담이 끊이지 않아서 시어머니께서는 급기야 나더러 남편 안 뺏기게 조심하라고 하셨다. 


"나 생각해 보니까 한국에 가본 적이 있더라고. 50년 전에. 그러니까 너희는 태어나기도 전이구나."


"50년 전의 한국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어떻던가요?"


"그때 남편이 출장 가는데 따라가서 딱 3일만 있었거든. 많이는 못 봤고... 채석장을 봤는데 굉장히 멋졌지..." 


정말 보신게 없나 보다... 



구운 감자, 오븐스테이크, 토마토, 줄기콩... 

 

식사를 차리시면서 시어머니께서 큼직한 물컵을 인원수대로 내오셨는데 이모님께서 이 값비싼 물건으로 물을 마시냐며 눈을 휘둥그레 뜨셨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향해 그녀는 컵을 뒤집어 보여주셨다. 


"이거 바카라잖아. 비싼 거야."


워낙 시어머니께서 크리스털을 좋아하셔서 나는 평소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뿐 그렇게까지 비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란 나를 향해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이모님께서 말씀하셨다.  


"너 이거 한번 깨 봐라. 네 시어머니가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


그걸 들으신 우리 시어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괜찮다. 이까짓 컵하나 깨진다면... 너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닌 게 되지."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내 컵을 돌려드렸다. 


"저는 물 안 마셔요... 와인이면 돼요... 진짜로요..." 


온 가족들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만날 때마다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이모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시어머니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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