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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3. 2023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초대받은 친구네 생일파티!


필리핀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반에 코로나 등의 이유로 아파서 결석하는 친구들은 제외하고 나니 나와 콜롬비아 소년 두 사람만 남았다. 

수업이 끝난 후, 우리 세 사람은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갔는데, 콜롬비아 소년은 프랑스에 와서 버스를 처음 타봤다며 좋아했다. 


필리핀 친구 E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위해 혼자 부지런히 아뻬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역시 필리핀 사람들은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나처럼 음주가무를 좋아하며, 인정이 많아서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안주를 뚝딱 준비하더니 이내 능숙하게 스프리츠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로마에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여전히 프랑스보다 이탈리아를 사랑한다.)

우와... 뚝딱 준비했는데 너무나 근사하다!


집에서 미리 준비해 온 생일선물을 건네주었더니 그녀는 크리스마스트리 밑에다가 고이 진열해 놓았다. 이국적인 디자인의 향초 세트를 사 왔는데, 태우지 않아도 향이 좋아서 그냥 장식용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검은색을 좋아하는 그녀는 집안의 모든 인테리어를 블랙&화이트로 꾸며놓았다. 심지어 화장실에 갔더니 화장지조차 블랙&화이트인걸 보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차마 검은색 화장지는 사용할 용기가 안 난다고 했더니 콜롬비아 소년이 자기가 먼저 써보고 색이 묻어나는지 확인해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 후 그녀의 남자친구와 또 다른 친구들이 도착했다. 총 9명이 모였는데, 국적이 그야말로 다양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프랑스인이지만 부모님이 필리핀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프랑스, 콜롬비아, 필리핀, 한국, 인도, 러시아, 칠레, 영국. 언어도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가 마구마구 뒤섞였는데 다들 너무 재미있었다.

저녁식사는 메뉴는 라끌렛! (프랑스 발음으로는 하끌렛)


내가 하끌렛을 처음 먹는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앞다투어 하끌렛 먹는 법을 알려주었다. '코리안바비큐'처럼 맨 위에는 잠봉을 굽고 밑에서는 하끌렛치즈를 녹였다. 그러고 나서 삶은 감자와 함께 먹었다. 


식사도 맛있었지만 오가는 대화들도 너무 재미있었다. 

러시아인 친구는 프랑스 이중국적자인데 최근 법이 바뀌어서 이제는 러시아에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운이 좋았지. 이제 한동안 러시아 갈 일은 없을 것 같아. 갔다가는 징집될지도 모르니까! 하긴 어차피 핵폭탄이 터지면 안전한 곳은 없을 거야. 아, 있다! 스위스는 말이야, 모든 집들이 지하에 방공호를 갖고 있대! 그러니까 핵폭탄이 터지면 스위스인들만 살아남을 거야." 

그는 엔지니어인데 제네바와 낭시를 오가면서 근무하는 탓에 스위스 국경에도 집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국적별 여권파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국이 세계 여권파워 2위라는 사실! 1위는 일본인데 우리랑 차이점은 중국 한 군데라고 들었어. 일본인들은 우리와 달리 비자 없이 중국에 갈 수 있다더라고." 

"아, 그럼 일본인이랑 결혼해서 국적을 바꾸면 여행 다니기 편리하겠네!" 

"중국 갈 거 아니면 한국인도 괜찮다니까."

칠 레인은 지난주에 프랑스인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여전히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다들 위로는커녕 짓궂게 놀려댔다. 그리고는 그는 또한 칠레에서 거미에 물려서 다리를 절단할 뻔했던 적이 있다며 당시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스파이더맨 되고 싶어서 일부러 물린 거 아니고?" 

"나도 거미줄 쏘는 거 한번 해 봤는데, 안 나오더라고..." 

그는 허공에다 손목을 연신 휘두르며 스파이더맨을 흉내 내면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실연 극복했네. 


사실 대부분 친구들의 나이가 20대였는데, 처음 만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함 전혀 없이 너무나 즐겁게 어울렸다. (우리나라처럼 호칭이나 존칭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더욱 편했던 것 같다.)

이런 좋은 기회를 준 인정 많은 필리핀 친구에게 참 고맙다. 다음 주에 수업 마치고 뱅쇼 한잔 사줘야겠다. 아니 두 잔 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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