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용 Jun 14. 2023

프랑스 연금개혁 파업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2023. 3. 23. 목요일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버스에 오른 후에서야 수업 장소가 갑자기 다른 캠퍼스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파업이 또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늦지 않게 수업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4명의 학생들만 와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음성메시지를 3개나 보내셨다. 


[소식을 늦게 들어서 캠퍼스로 출근했다가 지금 다시 나가고 있어요.]
 
[혹시 캠퍼스로 온 학생들이 있으면 최대 4명까지 내 차에 태워갈 수 있으니 같이 오세요.]
 
[사무실에 열쇠를 부탁해서 강의실 문 좀 열어주겠어요?]
 
지난 학기 때도 함께 했던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반장처럼 대하고 계신 듯하다. 
 


원래 이날 수업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대학원생과 소그룹 토론을 하는 날이었는데, 파업으로 그 친구 역시 못 오게 되었고 학생수도 적은 관계로 우리는 오후에 있을 토론수업을 각자 준비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화가 난 건 이해가 가지만요... 이미 연금개혁안은 확정이 되었고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파업을 이어가는 목적이 뭐예요...?" 
 
나는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해외에서 프랑스인들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안 봐도 알 것 같아요. 어린아이들처럼 떼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답니다. 대통령은 헌법 조항을 이용해서 하원의원의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켜 버렸어요.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끼는 거예요."
 
"재정이 부족하다면 꼭 필요했던 결정이 아닐까요? 또 제가 읽은 한국어 기사에서는 마크롱이 말하길 노조에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것을 유감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이때부터 나는 선생님과 개별 토론이 시작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괜히 등교했나 싶어 후회가 될 뻔했는데 오히려 선생님께 많은 것을 여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 대안을 제시했는데 대통령이 귀를 닫는 게 문제예요. 그리고 프랑스는 가난하지 않아요. 충분한 돈이 있어요. 정치적인 이야기라 상세하게는 설명이 곤란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대통령은 슈퍼부자들이 이용하는 투자은행에서 일하던 사람이에요. 서민들보다 부자들에 대한 이해가 더 빠른 사람이지요. 슈퍼부자들의 부담은 늘리지 않고 서민들만 괴롭히고 있어요. 특히 프랑스의 공공서비스 분야는 몇 년째 퇴행하고 있답니다..."
 
이건 남편도 얼마 전에 말했던 내용이다. 마크롱은 처음 당선되었을 때 [거대기업들의 부담을 늘려서 그들이 나라를 떠나게 만들면 결국 손해가 되므로 그들이 국내에 남아 일자리도 창출하고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하는 게 이득이다.]라고 강조했는데 그 거대기업들은 결국 세금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본사를 옮겼다고 한다. 

 
"연금개혁도 단순하게 62세에서 64세로 2년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지요? 이제 연금을 모두 받으려면 43년 동안 쭈욱 쉬지 않고 근무를 해야 해요. 프랑스에서는 대학원이 필수나 마찬가지라서 학생들이 총 5년을 공부하고 나서 해외 경험도 쌓고 하다 보면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단 말이지요. 만일 27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면 쉬지 않고 쭈욱 일할 경우 70세가 되어야 연금을 모두 받게 돼요. 그런데 중간에 실업기간이 생길 수도 있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육아 휴직이나 파트타임 근무가 흔해서 대부분 43년을 채우기가 어려운 게 실상이라는 거지요." 
 
꽤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선생님께서는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셨다. (부디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기를.) 

"슈퍼 부자들은 변함없이 전용기를 타고 해외 별장들을 다니고 있을 때 서민들의 형편은 몇 년째 더 힘들어지고 있어요. 물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위기들이 연이어 닥치긴 했지만 정부는 어느 정도는 위기에 대비를 하고 있었어야 하는데 정부의 대처는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아 또 흥분할 것 같네요. 마크롱 얘기만 하면... 처음 당선되었을 땐 국민들 모두 그의 젊은 매력과 활기에 매료되어 기대가 컸어요. 하지만 노란 조끼 시위 때 이미 그는 기존 대통령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었고 점점 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어요." 
 
하지만 마크롱은 국민들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에 대해서 남편은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마크롱이 좋아서 뽑은 게 아니라 극우파인 마린르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뽑은 거야.]라고... 
 

 
"저 며칠 전 시청에 비자 인터뷰 갔을 때 담당자도 프랑스 공공서비스가 몇 년째 거꾸로 가고 있다고 하시며 저더러 프랑스에 사는 게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요! 한국보다 프랑스에 사는 게 더 좋은 게 맞나요?" 

"장단점이 있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던 프랑스의 의료시스템은 솔직히 한국과 비교해서 좀 실망스러웠어요."
 
 

"아, 몇 년 전에는 확실히 지금보다 좋았답니다." 
 

결석자가 많아서 썰렁한 교실

 

앞에 조용히 있던 중국인 학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시위하면서 쓰레기는 왜 태우는 거예요? 환경오염되잖아요..."
 
"아 그건 정말 문제예요. 소수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 혼란을 틈타서 불을 지르거나 가게 유리를 깨며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어요. 인파들에 숨어 있으니 잡아내기 어렵다는 걸 이용하는 거지요. 정말 그들은 골칫덩이들이에요."



실컷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금방 흘렀다. 

 
"공강이 3시간이나 있는데 다들 뭐 할 건가요? 공지를 보니 오늘 12시 반에 학교에서 포럼이 열린다고 하네요. 학생, 교사, 학교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파업과 관련해서 토론회를 갖는 거예요. 프랑스식 토론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볼만하답니다. 쉽게 흥분하고 상대방 발언을 함부로 자르는 등 아주 열정적이지요. 바비큐도 한다고 하니 가서 참여해 보는 걸 적극 추천해요!" 
 
오 바비큐라니! 
 
나는 점심약속이 있어서 시내로 나갔는데, 나머지 친구들 3명은 바비큐를 먹으러 포럼에 갔던 모양이다. 그 친구들에게 오후에 다녀온 후기를 물었더니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바비큐는 아마 학교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끼리 먹는 거였나 봐. 그래서 우리는 못 먹었어...(가엾어라!) 대신 토론은 정말 흥미로웠어. 파업 때문에 불편하다며 화가 난 사람들도 꽤 많더라고. 공감되더라." 

기차 파업 때문에 2주 동안 결석 중인 내 친구는 누가 보상해 주나...

그런데 이날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하굣길이었다. 저녁때 모든 시내버스가 끊기는 바람에 무려! 한 시간 동안! 걸어서 집에 돌아와야 했다는 점이다. 부슬비까지 맞으면서 말이다! 조선시대입니까... 택시도 없고... 

시위 때문에 시내 진입이 막혀서 거리마다 차가 정체되어 있었다.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요. 제발 좀 멈춰줘요...  엉엉... 
 
 
 

매거진의 이전글 비오는 날 점심시간 외국인 친구들과 끓여먹은 라면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