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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4. 2023

비오는 날 점심시간 외국인 친구들과 끓여먹은 라면의 맛

아... 너무 행복하다...!

프랑스는 여전히 파업의 연속이다. 


학생 노조의 파업시위 때문에 우리는 사흘 연속으로 다른 캠퍼스로 등교를 하고 있다. 연일 비까지 오니까 더 기분이 우중충하다. 

낡고 휑한 이 건물이 바로 우리의 임시 캠퍼스이다. 교실도 엄청 크고 화장실도 큰데 어딜 가나 그냥 휑한 느낌.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매점이나 식당이 없다는 점. 


특히 오늘은 점심시간을 포함한 공강이 3시간이나 있어서 어떻게 점심을 해결할지 전날 필리핀 친구와 둘이서 고민을 했었는데 그녀가 자기네 집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에 홍콩 친구와 일본인 친구도 합류했다. 



비 오는 날엔 라면이 최고지!

항상 아낌없이 베푸는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집에서 미리 챙겨 온 라면 2 개랑 망고를 테이블에 꺼냈다. (4명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 우리 집에도 라면 있는데 뭐 하러 가져왔어." 


하지만 친구가 꺼내온 라면은 온통 불닭면이다. 


"오! 나도 저거 좋아하는데!" 


아기같이 귀여운 외모의 일본 소녀가 의외로 손뼉을 치며 불닭에 환호했다.


"아니야, 지금 저거 먹으면 우리 오후 수업에 못 돌아가... 설사하느라고..."

결국 내가 모두를 진정(?) 시킨 후 열라면 2개랑 친구네 집에 있던 진라면 2개를 한데 넣고 끓였다. (어쩌다 보니 다 매운맛 라면이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는 홍콩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신라면은 좋아해." 


"그럼 너는 매운 음식을 잘 먹는 거란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매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계란도 넣었다.   


나랑 일본친구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필리핀, 홍콩친구들은 더 편한 포크를 택했다. (홍콩친구는 영국에서 자랐다.) 


다들 한국 라면이 역시 최고라며 극찬을 하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모두 흡입했다. 


"나는 불닭볶음면도 좋지만 떡볶이도 좋아해! 주말에 아시아마트 가서 떡볶이 사다가 먹었는데 너무너무 맛있었어!" 


다들 한국음식 마니아들이다. 


국적이 모두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라면을 끓여 먹으니 맛있는 건 둘째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학창 시절 학교 끝나고 부모님 안 계시는 친구집에 몰려가서 라면 끓여 먹는 그 느낌이랄까...  



친구가 후식으로 냉동 치즈케이크를 꺼내왔는데 매운 라면을 먹고 나서 먹는 차가운 치즈케이크는 평소보다 열 배 맛있었다!

아... 너무 행복하다...! 


우리가 후식을 천천히 먹으며 수다를 떠는 동안 친구는 우리가 먹은 냄비등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내가 가져온 망고는 저녁에 남자 친구랑 먹으라고 그 집 과일 바구니에 놓고 나왔는데, 아낌없이 다 주는 이 친구는 고작 망고 하나에 엄청 고마워했다. 


넌 항상 더 많은 걸 주잖니. 


사춘기 소녀들처럼 우리는 다시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버스에 올랐다. 학교에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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