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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4. 2023

프랑스 연금 개혁 반대 시위 때문에 피해를 본 느낌이다

2023년 2월 7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유독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애써 일어나 샤워를 마쳤다. 학교에서 마실 뜨거운 차도 텀블러에 담고 간식까지 챙겨서 집을 나서는 찰나, 문득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학교로부터 새로운 이메일이 하나 와있네. 뭔가 중요해 보이는 느낌...


[봉쥬- 캠퍼스의 blocage로 인해 오늘 모든 수업은 취소되었습니다. 상황에 변동이 생기는 대로 공지하겠습니다.]



하... 이게 머선 일이고... 몸도 안 좋은데 일어나서 준비를 마쳤건만 나한테 왜 이래...
그래도 집을 나서기 전에 확인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런데 blocage? 학교에 못 들어가게 막아놨다는 건가...? 시위구나...

지난달 31일에도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노조 연합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 이날 낮에는 기차나 버스등의 대중교통이 전면중단되었고 그 이유로 장거리 통학하는 학생들은 등교를 하지 못했다. 수업 중 창밖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는 또 어찌나 시끄럽던지.

[연금제도 개혁은 이미 우리 부모님과 우리 조부모님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인 우리에게도 영향이 있다. 수년간 공부하고 미래의 직업을 위해 훈련받는 기간은 고려되지 않았고, 우리 대부분은 뒤늦게 사회생활에 뛰어든다. 64세에 은퇴하는 걸 반대한다. 1월 31일 카르노 광장에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겠다.]



결국 등교 대신에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 않은 나는 시어머니께 메시지로 상황을 알려드렸다. 허탈감에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프랑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럼 대체 수업은 안 해주겠지요? 등록금 비싸게 내고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만 피해자네요...]

[그러게 말이다. 기차 파업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랑 다를 바가 없어. 아무 잘못 없는 시민들을 인질로 삼는 멍청이들이야.]


그나저나 9시 수업이었는데 이메일은 8시가 넘어서 왔다. 멀리서 통학하는 친구들은 이미 출발했을 시간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카자흐스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아침에 이메일 안 본단 말이야. 학교에 도착하니까 건물들이 죄다 잠겨있는 거야. 하아... 아침에 몸이 안 좋았는데 그래도 애써 운전해서 나왔더니, 진짜 화난다. 우크라이나 친구는 나보다 더 불쌍해. 벤치에 멍하게 앉아있길래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그녀는 평소 기차로 1시간씩 통학하는데 하필 오늘 남편이 낭시로 출근하면서 아침 일찍 학교까지 태워다 줬대. 그런데 이제는 파업 때문에 집에 돌아가는 기차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저녁에 남편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된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아무것도 이해가 안 돼." 

"우리 시어머니 말씀이, 연금개혁 때문에 학생 노조가 벌인일이래. 사실 이 학생들이야 거의 공짜로 학교 다니니 손해 볼 게 없지. 교직원들도 일 안 하니까 좋을 거고. 비싼 등록금내고 다니는 우리만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네. 학교 책임이 아니니 대체 수업도 안 해준다고 하겠지..." 

내 말에 황당해하던 친구는 학교에다 당장 항의 이메일을 보냈고 오래지 않아 이렇게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 상황은 노조의 시위활동에 의한 것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건물들에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예견할 수도 없었으며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공지한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농담을 했다.

"정문은 평소처럼 열려있길래 그냥 들어왔는데 캠퍼스에서 노조학생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더라고. 그런데 나만 안주더라? 나는 이미 은퇴한 나이로 보였나 봐."

집에 다시 돌아갈 걱정에 한숨을 쉬던 그녀는 그래도 아직 웃음이 나오는가 보다. 

"건물이 다 잠겨있어서 우크라이나 친구는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추운 벤치에 앉아 있었대. 커 페테리아나 학생회관도 다 잠겨있어. 이제 그녀는 커피숍을 찾으러 간다네. 저녁까지 남편을 기다릴 만한 곳으로." 

우크라이나 친구는 학교 측에다 대체수업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학교 측에서는 온라인으로 자율학습 분량을 공지하겠다는 안내만 보내줬을 뿐이라고 한다.


저녁에 이 소식을 들은 남편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프랑스는 진짜 이게 문제야. 파업을 헌법으로 인정하고 있으니 너도나도 파업이지. 심지어 고등학교에도 노조가 있다니까? 어느 정도까지는 나도 필요성을 인정해.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잖아. 헌법에도 파업의 기준은 명시돼 있어.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고, 최소한의 서비스는 유지해야 하지. 무엇보다 48시간 이전에 미리 공지해야 하고." 

"우리는 수업 시작 직전에 들었는데?" 

"직장인들은 직장을 잃을까 봐 미리 보고를 하겠지만 학생노조는 무서울 것이 없는 거지." 

"너무 이기적이다. 자기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정의로운 운동가라고 스스로 믿겠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학생들의 피해는 아무도 생각 안 하나 봐." 

"노조는 이 blocage를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도구로 쓰는 것뿐이야. 내일 뉴스에 어디 어디 캠퍼스가 blocage로 인해 수업이 취소되었다고 뉴스 기사가 뜨기를 원하는 거지. 연금개혁에 이만큼 반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저녁에 카자흐스탄 친구에게 한차례 더 전화가 왔다. 

"나 방금 라디오에서 정말 웃긴 거 들었다? 라디오 앵커가 [여러분,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위해 거리로 당장 나오세요!] 하면서 뭐라는 줄 알아? [여름휴가철이 오기 전에는 시위를 모두 끝내야 합니다!] 가더라. 파업은 해도 휴가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거지. 진짜 웃겼어!" 


아... 정말 웃기는 짬뽕...... 


피해는 봤는데 사과하는 이가 아무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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