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본인 친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비폭령 투쟁에 대한 토론 도중에 어쩌다보니...

by 혜연

착한 일본인 친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주 수업의 주제는 [혁명]이었다. 아무래도 프랑스 역사와 정치에서 혁명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다 보니 매 학기마다 등장하는 단골 주제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혁명과 관련해 각국의 상황을 비교하는 소그룹 토론을 하던 중 알제리 친구가 말했다.

"알제리는 수년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어. 엄청난 사상자가 있었지만 그 결과 독립을 이끌어낼 수가 있었지."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감정에 이입이 되어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그녀에게 질문을 하셨다.

"폭력 투쟁이었나요?"

"네, 탄압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이해해요. 폭력은 나쁘지만 폭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관심을 끌기가 어렵지요. 일전에 파리 노란 조끼 시위 때도 결국 폭력이 동반되고 나서야 정부에서 관심을 기울여준 사례가 있지요."

그때 세네갈 친구가 말했다.

"솔직히 비폭력 투쟁은 의미가 없지 않나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요? 비폭력으로는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봐요."

웬만하면 내가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선생님까지 그 발언에 수긍하는듯한 분위기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비폭력으로 투쟁한 나라 여기 있네요... 우리 조상들은 식민지 시절, 특히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아무런 무장 없이 거리로 나가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의 독립을 외쳤어요. 모두들 죽을 각오를 하고 나간 거지요. 의지를 보여주려고요. 식민통치에 투쟁한다는 의지를요. 지금도 우리나라는 3월 1일을 휴일로 기념하고 있어요. 그 정신을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는 거지요."

일본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저쪽에 앉아있는 일본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반면 그녀 앞에 앉아있는 중국소녀가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나도 이해해... 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한국의 비폭력 투쟁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어요. 정권에 투쟁할 때면 한국인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요. 폭력이 없이도 우리는 대통령을 처벌했고 정권의 교체를 달성했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폭력이 동반된다면 지지를 받기 어려워요."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내 나라 이야기만 나오면 왜 이리 목소리가 높아지는지 원.

그나저나 프랑스를 포함한 다른 나라 학생들에게는 비폭력 투쟁이라는 표현이 와닿으려나 모르겠네.

그리고 일본인 친구야, 개인적인 감정은 없단다. 한 반에 일본인 친구가 있으니 말할 때마다 자주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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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선생님께서 어디서 들으셨는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툭 던지셨다.

"일본에서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사이가 안 좋은 나라의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배신이다 뭐 그런 느낌인가요?"

일본소녀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선생님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며 횡설수설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는 한국 음악과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해요.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말은 어디서 들으셨나요?"

그러게 말이다. 대체 어디서 저런 걸 들으신 걸까...
일본 친구가 너무 당황해하길래 내가 옆에서 답변을 거들었다.

"제 생각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언론들이 있는 것 같아요.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기사의 제목을 점점 더 자극적이고 과장되게 작성을 하는 것 같아요. 한일 간에 정치나 역사에 대해서는 민감한 이슈들이 있지만 젊은 세대들은 서로의 문화를 좋아해요. 저 역시도 미야자키의 에니메이션 영화들의 큰 팬이거든요."

"아, 진짜?"

일본 소녀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저녁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 선생님은 한일관계가 민감하다는 걸 아시는 것 같은데, 다른 나라들,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나 이란 같은 나라에 비해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심하게 말씀하시더라."

"우크라이나, 이란등의 사태에 대해서는 프랑스인들이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거든. 아마 그 선생님은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편하게 물어보시는 것 같아. 그러니 당신도 편하게 대답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는 과정에서 일본인 친구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 예의 바르게 의견을 말해줄 것 같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류가 유명해지는 요즘, 한일양국의 역사가 잘 고증된 드라마나 영화가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일본인들과 잘못된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진실을 습득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비록 일본 정부는 싫지만, 이 일본인 친구는 너무 상냥해서 볼 때마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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