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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6. 2023

남편이 제정신이 아닌 줄 알았다.

"이렇게 매번 속으니까 자꾸 놀리고 싶잖아.”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토요일이라 우리 부부가 평소처럼 오전에 장을 보고 돌아왔을 때 시어머니께서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우리 빵 사러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인데 잠깐 너희 집에 들러도 되니? 너희 줄 빵도 샀단다.]

[네 그럼요! 점심도 드시고 가시게 준비할까요?]

[아니다. 점심은 안 먹어도 돼. 어제저녁에 먹었어.]

?? 

우리 어머님, 거절도 역시 평범하게 하지 않으신다. 

이미 소파에 널브러진 자서방에게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지금 잠깐 들르신대. 곧 도착하실 테니까 빨리 일어나." 

자서방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전화기를 꺼내며 말했다. 

“주말이라 쉬고 싶은데! 오시지 말라고 해야겠다.” 

자서방이 정말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나 저 말이 농담이 아니면 어쩌지 싶었다. 자서방이 헛소리를 하기 전에 시어머니와 통화 중인 자서방의 등짝을 세 개 때렸더니 있는 대로 인상을 다 쓰면서도 꿋꿋이 할 말을 다 하고 있었다. 자서방이 워낙에 빠르게 말해서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통화를 끝낸 자서방을 다그쳐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말씀드렸어?”

“오시지 말라고 했지. 무스카델이 아직 낯선 사람들 오면 무서워한다고.” 

“미쳤구나?!” 

내가 노발대발하며 바로 전화기를 꺼내는 걸 본 자서방은 깔깔 웃으며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거 봐, 우리 와이프 놀리는 건 진짜 재미있다니까! 이렇게 매번 속으니까 자꾸 놀리고 싶잖아.” 

아오...      


매번 말려드는 나 자신이 정말 싫다. 자서방의 어깨를 소리 나게 한번 더 때려도 분이 안 풀린다. 



잠시 후 창문을 통해 주차장에 시부모님의 차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자서방은 조금 전 전화통화 때 시어머니께 현관에서 벨을 누르지 말라고 부탁을 드린 거라고 했다. 창가에 세워진 캣타워 바구니에 앉아 고요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무스카델을 쓰다듬으며 자서방이 덧붙여 말했다. 

"오늘 아빠가 무스카델을 처음으로 만나시는 거잖아. 벨소리 듣고 무스카델이 숨어버릴까 봐... 아빠한테 꼭 보여드리고 싶어서."

자서방의 손길을 즐기던 무스카델은 곧 현관으로 낯선 사람이 둘이나 들어오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서방은 열심히 무스카델을 쓰다듬고 간식까지 동원해서 안심시켰고 덕분에 우리 시아버지께서는 무스카델과 첫인사를 나누실 수가 있었다. 



무스카델을 처음 만나는 시아버지께서는 조심스럽게 무스카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인사말을 건네셨고 다행히 무스카델은 부드러운 시아버지의 손길과 음성에 편안하게 반응했다. 나와 시어머니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시부모님께서는 바게트, 브리오슈 그리고 보르디에 버터를 주고 가셨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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