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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9. 2023

"어머님은 부자시잖아요."

2021년 2월 18일


아들만 둘인 우리 시부모님께는 큰딸과 다름없는 조카딸이 있으시다. 파리에 살고 있는 조카딸, 그러니까 우리 자서방의 이종사촌 누나인 마리는 명절 때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이모인 우리 시어머니를 보러 온다. 그래서 그 가족들도 시댁과 매우 친밀하게 지내는데 심지어 스웨덴에 살고 있는 친 시동생의 가족보다 더 자주 왕래하는 듯하다.

마리의 남편 프랭크가 이번에 스트라스부르에 사업차 방문을 하게 되어 돌아오는 길에 시댁에서 2일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대학생이 된 그 집 큰딸 노에미는 낭시와 멀지 않은 쇼몽(Chaumont)이라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역시 낭시 시댁으로 방문해서 아빠와 함께 파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새해 때도 만나지 못했던 터라 시어머니께서는 그들의 방문소식에 전날부터 꽤 들뜨셨다. 비록 모든 가족들이 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시댁으로 갔다. 팬데믹 통금 때문에 저녁식사를 어려웠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전 11시에 시댁으로 갔다. 오전 샴페인이다! 



시댁에 갔더니 시어머니께서는 벌써부터 스테이크를 굽고 계셨다. 팬에다 버터를 두르고 먼저 겉을 구워준 후에 오븐에 넣고 천천히 오랜 시간을 익히실 예정이시다. 


순둥이 모웬은 자서방에게 자기 전용 의자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속도 없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시어머니께서 녹차를 권하셨지만 어느새 자서방이 디카페인으로 달달한 라테를 한잔 대령해 왔다. 아침에 내가 화장실을 먼저 양보했더니 내 희생정신에 감동해서 더 친절해졌다.




자서방은 이스탄불에게도 잊지 않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잠시 후 빵을 사러 가신 시아버지께서 돌아오셨고 자서방은 지하실에 내려가서 와인과 샴페인을 가져왔다. 



자서방이 좋아하는 생떼밀리옹 la couspaude. 자세히 보면 리들에서 19년도에 35유로를 주고 리들에서 구매했다는 메모가 보인다. 꼭 자서방과 시아버지는 이렇게 와인을 사고 나서 구매정보를 메모한 후에 보관을 해 둔다. 



다들 샴페인을 마실 때 시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포트와인을 갖다주셨다. 나는 식전에 가스가 차는 게 싫어서 차라리 독한 술을 선택한 것이다. 



오전 식전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수다가 폭발했다. 


이제 점심식사를 슬슬 시작하기로 했다. 테이블 세팅은 다 같이 했다. 본식을 먹기 전에 샐러드와 와인 그리고 빠떼를 바게트와 함께 먹었다.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빠떼 뚜껑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건 46페이지 레시피로 만들었단다. 호호호" 

"아, 이건 100페이지랑 다른 거예요?" 

보통 100이라고 써져 있었던 것이다. 


"거의 비슷해. 그런데 이건 돼지고기뿐 아니라 오리고기도 섞었어."




고기빠떼. 처음에는 꽤 낯설었는데 어느새 나도 시어머니의 수제 빠떼를 즐기게 되었다. 그건 사실 맛있는 바게트와 와인의 영향이 컸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소고기 안심스테이크와 파스타 그리고 줄기콩이다. 



줄기콩은 삶아서 시어머니의 비법 치즈페스토에 버무리셨는데 이게 짭짤하니 너무너무 맛있었다! 함께 주신 파스타까지 섞어먹어 보니 다른 요리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소고기는 말할 것도 없이 부드러웠다.

"제가 오븐에서 요리하면 이맛이 안나던데요..." 

"그건 너희 집 오븐이 별로라서 그래. 나중에 너희 집 장만해서 이사하면 내가 우리 집 거랑 똑같은 오븐을 선물해 줄 거야." 

음... 이럴 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지.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자서방도 한번 쳐다봤다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저희 집 오븐도 저한테는 충분히 좋은데요..."


본식이 끝났을 때 시어머니께서 치즈를 가져오셨다. 

사실 이때 상황이 좀 웃겼던 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식사를 마친 상태였는데 오직 나와 자서방만은 여전히 먹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 남은 음식이 부족해서 시어머니께서 줄기콩과, 스테이크 그리고 파스타까지 부엌에서 더 갖다주셨다. 다들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는 심지어 자서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저녁 안 먹을 거니까 지금 많이 먹어둬-" 

자서방은 안된다고 반발하면서도 일단 열심히 먹었다. 진심으로 너무너무 맛있었다! 시어머니 음식을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내가 식사를 끝낸 후에도 자서방은 남은 스테이크를 클리어하고 있었다. 급기야 스테이크의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자서방더러 이제 그만 먹으라며 접시를 치워가셨다.



"제가 샐러드를 너무 많이 담았나 봐요. 거의 다 남았네요. 줄기콩이 너무 맛있어서 샐러드는 많이 못 먹었어요. 아까워서 어쩌죠?" 

그 말에 우리 시어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괜찮아. 우리는 부자란다." 

이 한마디로 내 죄책감을 확 날려주셨다. 


대신 내가 작은 치즈 조각을 바닥에 떨어트렸을 때는 시어머니께서 나보다 더 놀라셨다. 아깝다는 듯이 바라보시길래 내가 웃으며 말했다. 

"부자시잖아요." 

내 말에 온 식구들이 다들 웃었다. 

보통 내가 아까운 뭔가를 떨어트리면 자서방이 주워 먹는데 안타깝게도 이번엔 자서방이 싫어하는 치즈였다. 그런데 어느새 시어머니께서 내가 떨어트린 치즈를 주워드셨다. 그거 3초 지난 건데요 어머님...



후식은 다 같이 우리 집으로 와서 내가 미리 구워놓은 초콜릿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었다. 


오늘 제대로 폭식하고 모두들 기분이 엄청 좋았다. 


소심한 우리 무스카델만 빼고... 


"손님들 아직 안갔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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