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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0. 2023

프랑스에서 홀로 서기 연습을 시키시는 시어머니

2021년 4월 1일 


한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병원이라도 그곳에서 바로 혈액검사나 소변검사를 진행해 주지만, 프랑스에서는 진료만 의사에게 받고 검사는 검사를 하는 곳에 따로 가서 받아야 한다. 그것도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필수로 해야 한다. 


얼마 전 시어머니와 혈액검사를 받으러 아침 일찍 검사소에 갔던 날이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시며 나더러 혼자 혈액검사를 받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감히 친정엄마도 아니고 시어머니께 으으으응~ 하며 응석을 부렸다. 지금 생각하니 좀 웃긴데 그 당시에는 진심으로 겁이 나서 혼자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께 그런 응석이라니... 


시어머니께서는 결국 울랄라... 하시며 같이 들어가 주셨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에는 동행이 안된다니까 그러네..." 

"안된다고 하면 그때 차로 다시 오시면 되쟈냐요~" 

평생 애교 없이 살아온 내가 이 나이에 시어머니 앞에서는 애교가 저절로 나온다. 콧소리로 우기기신공.


그날 접수데스크에 줄이 엄청 길었는데 시어머니와 수다 떨며 기다리다 보니 금방 차례가 왔다. 접수하시는 분이 앞사람에게 꽤 불친절했는데 그걸 보시더니 시어머니께서 혀를 차셨다. 


"저런 저런... 저렇게 불친절하다니..." 

"그러니 제가 혼자 왔으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다행히 그 직원은 우리 시어머니의 포스를 감지했는지 우리에게 꽤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때론 남편보다도 더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며칠 후 내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갈 때도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약국에 데려다주셨다. 

"동네 약국에서는 그 약들을 못 구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큰 약국으로 데려다 주마." 

난생처음 약국에 가보는 터라 걱정이었는데 시어머니께서 계셔서 너무나 든든했다. 

그런데! 

약국에서 내 차례가 오자 시어머니께서는 나더러 혼자 가 보라며 손짓을 하셨다. 내가 머뭇거리며 아기새 마냥 시어머니를 바라보고 서 있었더니 시어머니께서는 "네 차례잖니." 하시며 한 발자국 오히려 뒤로 물러나셨다.

평소에는 나 대신 다 말씀해 주셨는데... 내가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봉쥬 므슈"

나는 용기 내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약사님께 가서 처방전을 내밀었고, 그분은 내 의료보험과 개인정보들을 확인하며 전산에 등록을 한 후에 약을 내주셨다. 물론 그분의 질문을 내가 못 알아들어서 몇 번씩 다시 물어보기도 했다. 

약사님께서 빠른 속도로 약의 복용방법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실 때 나는 다시 한번 뒤에 계신 시어머니를 흘끔흘끔 바라보았지만 시어머니께서는 내 시선을 피하시며 약국 내부를 구경하고 계셨다. 살짝 야속했지만 나는 딱딱한 말투의 약사님께 "여기 좀 써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부탁을 드렸고 그분은 알았다고 하시며 (내가 절대로 알아볼 수 없을) 지렁이 같은 글씨로 꾸불꾸불 뭔가를 써주셨다. 프랑스인들은 알아보겠지...



"이제 너 혼자서 할 수 있겠지?" 

실컷 진땀을 빼고 약국을 빠져나오는 나에게 시어머니께서 웃으며 물으셨다. 살짝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 약 어떻게 먹으라고 하든?"

"모르겠어요..." 

대신 약사님께 부탁해서 메모를 받아왔다고 했더니 잘했다고 하셨다. 


프랑스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제는 서서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야겠다. 



밤에는 집들이 마치 종이 상자로 만든 장난감처럼 보인다. 예쁜 풍경을 볼 때마다 새삼 내가 프랑스에 와있구나 하고 한번 더 깨닫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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