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6일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너희 주려고 디저트용 접시를 주문했었는데 그게 도착했거든. 그거 내가 오후에 갖다 주마.]
이렇듯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집에 부족한 살림을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저 무스카델한테 캣그라스를 사주고 싶은데 혹시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아세요?]
[그럼 같이 보타닉에 가보자. 안 그래도 접시 말고도 너희에게 줄 것들이 더 있단다. 함께 보타닉에 갔다가 오는 길에 너희 집까지 차로 실어 다 줄게.]
시댁으로 갔더니 시어머니께서는 일전에 사주신 커다란 접시와 같은 무늬로 디저트 접시를 두상자 건네주셨고 그 외에도 꽁떼 치즈, 빵집에서 사 오신 피자, 곡물빵 그리고 호두 까는 도구까지 주셨다.
모든 선물 들을 일단 어머님의 차에 싣고서 우리는 보타닉으로 갔다.
보타닉은 막연히 커다란 꽃집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접 가보니 동물용품과 정원용품등도 판매하는 엄청나게 큰 가게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캣그라스는 모두 품절이었고 가게 직원은 우리더러 목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다.
캣그라스 대신에 캣그라스 씨앗을 구매하신 어머님께서는 대형마트 코라에도 가보자고 하셨다. 다행히 우리는 코라에서 캣 그라스 화분을 구매할 수가 있었다.
마트에 온 김에 나는 와인, 치즈, 야채 등 필요한 물건을 담았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할 때가 되어서야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아챘다.
계산대에서 어머님과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확인해 보니 내 신용카드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분명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어디다 흘렀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신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안심시키시며 일단 내 물건들을 모두 계산해 주셨다.
"걱정 말거라. 다시 보타닉으로 가보자."
아... 칠칠맞은 며느리...
내가 한숨을 자꾸 쉬었더니 시어머니께서는 급하게 운전을 하시면서도 내 팔을 살며시 누르시며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을 시키셨다.
보타닉에서 우리가 갔던 장소들을 거꾸로 한 바퀴 돌고 난 후 계산대에 있던 직원에게 연락처까지 남기고 우리는 그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부탁으로 코라에도 다시 한번 가서 거꾸로 우리가 갔던 장소들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그래도 카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어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이걸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비밀번호 없이 결제할 수 있는 최대금액이 50유로잖니. 그 이상은 못 훔쳐가... "
자서방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더니 자서방은 의외로 잔소리도 안 하고 꽤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집으로 와. 앱으로 카드 정지하고 다시 신청하자."
우리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함께 들어오지 않으셨다. 트렁크에 있던 접시 상자를 꺼내주시며 자서방과 상의해서 카드 정지나 잘 처리하라고 하셨다.
카드를 정지한 후에 시어머니께 메시지를 드렸다.
[카드 정지 무사히 다 했어요. 누가 제 카드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내일 볼 수 있대요. 오늘 저 때문에 피곤하셨을 텐데 죄송해요. 아, 접시 엄청 예뻐요! 이래저래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별일 아니니까. 나는 내일 놀러 가마.]
시어머니께서는 무스카델이 캣그라스를 좋아하는지 물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고로 다 무스카델 탓이야. 캣그라스 사러 가느라 잃어버린 거니까...]
아 또 그렇게 되나요...
다행히 다음날 카드 앱으로 확인해 보니 내가 모르는 결재 내역이 없었다! 신용카드는 새로 신청을 하긴 했지만 발급을 받을 때까지는 자서방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신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