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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0. 2023

슈퍼맨처럼 달려오시는 시아버지

2021년 4월 30일 


내 생일이 다가오면서 우리 집으로 자꾸만 이상한 택배가 오고 있다. 

분명 작년 크리스마스 때 남편은 나에게 아이폰 12 프로맥스를 사주면서 그건 다가올 내 생일 선물까지 퉁치는 거라고 말했고 나 역시 흔쾌히 동의했었다. 맞벌이를 하다가 이제는 남편의 외벌이로 바뀐 상황에서 남편의 비싼 선물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받은 만큼 돌려줄 자신도 없으니 그냥 안 받고 안 주는 게 더 마음 편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집으로 자꾸 크고 작은 택배 상자가 줄줄이 오고 있는데 그게 다 내 생일선물이란다. 몇몇 선물은 남편을 잘 달래서 환불하자고 설득했다. 특히 내 블로그를 위해 전문적으로 음식이나 소품을 촬영하기 위한 장비들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나한테는 과한 것 같았다. 나는 음식을 만들면 대충 촬영하고 오히려 먹기에 바쁜 사람이다. 결국 선물은 받은 걸로 치고 다시 상자에 고이 담아서 환불을 하기로 했다. (심지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선물도 있다길래 인터넷으로 함께 주문 취소를 했다. 남편은 입이 좀 나왔지만 그래도 착한 어린이처럼 내 말에 따라주었다.)


물품을 환불할 때는 번거롭게도 동네 담배가게에 물건을 맡겨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당장 물건을 차에 싣고 담배가게로 출발했다. 그런데 50미터도 못 가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이다. 



자서방은 능숙하게 차를 들어 올리고 타이어 너트를 하나씩 풀었다. 그런데! 타이어가 안 빠지네? 

남편은 발로 차고 망치로 때려도 봤지만 타이어는 꿈쩍도 안 했다. 결국 남편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곧 보슬비를 뚫고 우리에게 달려오신 분은 바로 우리 시아버지셨다. 이 나이에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서방은 맨 먼저 아버님을 찾는다. 그리고 아버님은 그 연세에도 큰아들이 부르면 달려오신다.  


우리 시아버지는 바퀴를 꼼꼼히 살피시더니 자서방에게 시댁 지하실에 가서 장비를 하나 가져오라고 시키셨다. 그리고 잠시 후 자서방이 가져온 장비로 안쪽 어딘가를 세게 돌리셨는데 타이어가 신기하게도 쏙 빠졌다.  


그 사이 빗줄기가 커져서 시아버지께서 흠뻑 젖으셨다. 나는 급하게 우산을 가지고 내려왔지만 시아버지께서는 점심식사때문에 어머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다며 집으로 바로 돌아가셨다. 



와중에 스패어타이어에 [한국타이어]라고 적혀있어서 나 혼자 반가웠다. (자서방말이 가벼워서 싣고 다니기에 좋다고 한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직후 비가 뚝 그치더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갑자기 개었다. 다음 주면 새 차가 나오는데 일주일만 더 참지 타이어야...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택배 환불을 처리하고 왔는데 뒤늦게서야 비에 젖어서 돌아가시던 시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비 때문에 흠뻑 젖으셨는데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지? 커피도 한잔 못 드리고 너무 죄송하다." 

"아니야. 엄마가 점심식사준비 다됐다고 전화하셔서 급하게 가신 거야. 걱정 마. 내가 방금 전화통화도 했는데 괜찮으셔."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지? 항상 도와주신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돼..." 


아들내외가 바로 옆에 사는 탓(?)에 시부모님 두 분이 참 고생이 많으시다. 두 분 다 워낙에 못하시는 게 없으셔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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