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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3. 2023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먹방은 계속되었다.

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이브였던 어제 먹은 것들도 아직 소화가 덜 된 상태였는데 크리스마스 점심식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잘 먹겠다는 각오로 소화제까지 챙겨 먹고 시댁으로 갔다.


다행히(?) 식사를 하려면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고 다른 사람들이 샴페인을 마시고 있을 때 나는 물만 한잔 마셨을 뿐이다. 오늘 많이 먹으려면 술은 좀 덜 마시는 게 좋겠다는 자서방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메인 요리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어머니 표 오렌지 오리구이였다. 샴페인대신 물만 마신 보람이 느껴지는 메뉴다.

인원수가 많아서 빵은 오븐에도 굽고 식사 내내 토스터기에서도 계속 구워지고 있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푸아그라가 실로 곱게 잘렸다. 정말 맛있겠다...

오늘도 소테른 와인이 오픈되었다. 
하지만 자서방은 오늘 나의 과음을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명목으로 내 와인잔을 접수했고, 와인은 자기 잔으로 같이 마시자고 했다. 은근히 나랑 잔 같이 쓰는 걸 좋아한다니까. 간접키스.

푸아그라와 잘 구워진 바삭한 빵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다. 한때는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다. 


푸아그라를 각자 두세 조각씩 먹었을 때 메인 요리들이 테이블 위로 등장했다. 


오리기름에 고소하게 구워진 감자와, 향긋한 오렌지를 입혀서 구운 짭조름하고 부드러운 오리 안심구이.

오리구이를 한입 넣었더니 자서방이 옆에서 레드와인을 건네주었다. 이 오리구이는 푸아그라보다 더 맛있다! 심지어 저 오리껍질까지 맛있다. 

오리스테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한 조각 더 먹을까 잠깐 갈등했지만 치즈를 먹기 위해서 참았다.

나는 시동생에게 모든 치즈를 조금씩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뭐든지 조금씩은 모두 맛보아야 하니까. 아... 쓰고 보니 이런 게 식탐 인가 싶다. 


그런데! 왜 샐러드는 이제야 나오는 건가요...? 고기랑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요... 

내가 중얼중얼 불평을 했더니 자서방이 시어머니께 이르겠다며 장난을 쳤다. 프랑스는 원래 샐러드를 본식 끝나고 먹는단다... 고기랑 같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풀만 따로 무슨 맛으로 먹는 거지. 


시동생이 잘라준 '모든 치즈 조금씩'.
아직 치즈를 배워가는 치즈린이라서 골고루 맛을 비교해 가며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배에 더 이상 못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시어머니께서 어제 먹다 남은 부쉬드노엘을 가져오셨다. 

저 배불러서 더 이상 못 먹는데요... 하면서도 나는 왜 접시를 내밀고 있는 걸까. 자서방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실은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었다. 나 정말 식탐 있나 봐...

결국 이것저것 포기하지 않고 다 맛보느라 식사를 가장 늦게 마친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계신 시어머니 옆으로 가서 빛의 속도로 낮잠에 빠져들었다. 


자서방이 집에 가자고 나를 깨웠을 때 나는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굶자..."


시댁에서 배 터지게 점심을 먹고 낮잠까지 자고 나서 남편손에 이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팔자 좋은 며느리는 하는 일도 없는데 왜 이리 피곤한지 모르겠네... 아 위장이 피곤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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