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용 Jun 22. 2023

프랑스 시댁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2021년 12월 24일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다! 

자서방과 나는 식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시댁으로 건너갔다. 저녁 6시도 안 됐는데 벌써 어둑어둑하네..

산타가 다녀가신 듯 벌써 거실 한쪽 구석에 선물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나는 2층에 몰래 숨겨두었던 자서방의 선물을 직접 들고 내려오려다가 자서방 눈에 띌 것 같아서 사촌누나의 남편인 프랭크에게 부탁해서 대신 가지고 내려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넌 누구냐...


평소라면 앞장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을 모웬은 오늘따라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대신 이 낯선 녀석이 모웬의 자리를 꽤 차고 있었다.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된 이 파리지앵냥(?)은 기세가 등등해서 이스탄불과 모웬 형님들을 모두 내 쫒고 당당히 소파자리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름이 미니라는데 장차 멘쿤처럼 아주 커질 녀석이라고 한다. (믹스냥인데 엄마 아빠 둘 다 대형 냥이들이라고.) 원래는 우리 집에서 무스카델과 둘이 지내게 하려다가 미니의 주인인 자서방 사촌이 시댁에서 머무는 관계로 이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줄지어 쫄보형제인 이스탄불과 모웬이 더 쭈굴 해졌다.

 

자서방은 지하실에 내려가서 1.5리터의 커다란 샴페인을 한병 가져왔다. 일전에 시부모님께서 샹빠뉴 여행 중에 사 오신 것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다이닝룸에서 꼬치를 만들고 계시길래 내가 도와드렸다. 메추리알, 치즈, 올리즈, 토마토. 


"이건 아뻬리티브예요?"

"오늘은 아뻬리티브는 따로 없고 그냥 식사 겸 아뻬리티브겸 밤새 각자 알아서 갖다 먹고 마시면서 배를 채우게 만들 계획이란다."

우리 시어머니 현명하시다. 인원수가 많아서 거실에 아뻬리티브를 차리고 다이닝룸에 정찬을 차리고 디저트를 또 따로 준비하고 하다 보면 너무 힘드셨을 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따뜻한 식사는 따로 없고 술안주로만 넉넉히 준비할 테니 알아서 배부를 때까지 갖다먹으라는 말씀되시겠다.

은근히 만만하게 봤는데 자정까지 먹고 마셨다가 배가 너무 터질 것 같아서 자기 전에 결국 소화제를 먹어야만 했다. 내일 또 먹어야 하는데. 


샴페인뿐 아니라 자서방은 시댁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던 소테른 와인도 한병 가져왔다. 사촌 누나네 커플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두병을 준비했고 우리가 마실 것도 따로 추가로 주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촌누나는 샴페인에 꺄시스크림 (Cream de Cassis)이라는 액체를 섞어 마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아까운 샴페인맛 버린다고 나에게 속삭이셨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나도 따라서 한잔 마셔보았다. 

꽤 애주가인 나는 종류별로 한잔씩 맛본다는 명목으로 샴페인, 소테른, 샴페인믹스 그리고 레드와인까지 총 4잔을 마셨고 적당히 취기도 돌아서 완벽했다.


자서방도 오랜만에 좋아하는 와인을 맘껏 마셔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표정이었다. 쥬와 이유 노엘!      


마리와 그녀의 딸들도 다양한 먹거리들을 많이 만들었다. 


나에게는 생소한 음식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한식 없으면 못 살 줄 알았던 나에게는 놀라운 변화이다. 새로운 음식을 발견하고 맛보는 즐거움은 무한하다!!

훈제 대구살에 캐비어가 섞인 Tamara au Caviar와 트러플 페이스트를 얹은 카나페. 둘 다 맛있었다.


미니버거는 두 가지 맛이었는데 하나는 푸아그라 크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오이가 들어간 닭고기. 

맛있는 데다 크기도 부담 없어서 자꾸 집어 먹다가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 다른 것도 먹어야 되는데...

선물 교환식이 시작되었다.

각자 선물 꾸러미로 가서 이름을 호명해서 나누어 주었는데 두 명씩 진행을 해도 선물이 너무 많아서 끝이 없었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들 아이처럼 기쁜 표정으로 선물을 풀어보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시어머니께 우리 친정언니가 보내준 약과와 한복 장식품을 열어보시고는 너무 고맙다며 손키스를 진하게 세 번 날리셨다.

와인병에 한복 장식을 바로 입혀보고 다들 예쁘다고 언니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언니야 고맙다!)

나 역시 너무나 많은 선물을 받았다.

바질, 레몬, 강황 크레용. 말 그대로 크레용처럼 생겼는데 돌돌 깎아서 요리할 때 넣는 거라고 한다. 완소템!

손재주 좋은 노에미는 직접 만든 벽거울과 수제 초콜릿을 줬는데 직접 만든 거라 특별한 선물이었다.

이 사진들 외에도 받은 선물들이 너무나 많다. 어릴 적에 한 번도 못 받아본 크리스마스 선물을 프랑스 와서 다 받는 기분이다.

내 선물은 없냥?


다들 각자의 선물을 풀어보느라 시끌벅적 정신없을 때 나는 조용히 자서방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뭐야! 서로 선물하지 말자며! 선물하면 화낼 거라며!" 당황하는 남편.


한국에서 주문한 에어 마사지기. 퇴근하면 맨날 발이나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 남편에게는 꼭 필요한 선물이었다.

너무 좋아하면서도 나더러 이제는 직접 안 주물러줄 거냐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길고 길었던 선물 교환식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음식을 갖다 먹기 시작했다.

나 배불러서 진짜 더 못 먹는데... 성격상 또 하나씩은 꼭 맛을 봐야 하는지라... 미안하다 내 배야... 네가 고생이구나...


배부르다면서도 계속 먹고 있는 나에게 우리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부쉬드노엘 먹을 배는 남겨야 한단다..."

으악.. 케이크가 있었지 참... 시간은 이미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밤크림과 초코맛 두 가지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케이크를 원하는지 주문을 받고 또 서빙을 했다. 다들 배불러서 케이크를 못 먹겠다고 했으면서 막상 물어보니 거절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배가 너무 불렀지만 두 가지 케이크를 조금씩 맛을 보기로 했다.

거봐... 이렇게 맛있다니까 또...

크리스마스 때가 오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프랑스인들의 위장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모두들 진심 초인적으로 많이 먹는다. 


내일 점심에도 많이 먹으려면 빨리 소화시켜야 되는데! 

작가의 이전글 빌려달라고 했더니 새 걸로 사주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