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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3. 2023

먹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어머니표 카술레

2021년 12월 28일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자서방의 사촌누나네 가족들과 미니가 모두 돌아간 후 시댁에는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시어머니께서 카술레를 만드셨다며 우리 부부를 점심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미니가 떠난 후 모웰역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스탄불은 여전히 나를 문지기로 취급했다.

넌 나만 보면 문 열어달란 소리밖에 안 하냐...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친정엄마가 명절 끝날 때마다 하시는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식구들이 찾아올 땐 참 반갑더니, 다 떠나고 나니 또 좋네. 호호" 


빠떼와 샐러드로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빠질 수 없는 레드와인도 함께!

그러고 나서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카술레 (Cassoulet)가 등장했다. 

겨울마다 시어머니께서 꼭 한 번씩은 만들어 주시는 음식인데, 흰콩에 오리나 소시지등을 넣고 오랫동안 오븐에서 익혀낸 것이다. 콩은 강낭콩처럼 크지만 맛은 우리나라 메주콩과 흡사했다.

오늘도 나는 오리 다리 당첨이다. 소시 스도 한 조각 주세요, 골고루 맛보게요. 

맛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자서방과 시동생을 보면서 문득, 오랜만에 엄마의 집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장성한 두 아들을 보시며 시어머니께서는 얼마나 흐뭇하실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다 말고 나는 헛소리를 우아하게 해 버렸다.

"이건 소시스 드 '마르세유'인가요?"

"넌 또 이름을 바꿨구나. 이건 소시스 드 '뚤르즈'란다. 이스탄불 보고도 한동안 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더니 호호호"

내가 아무래도 우리 친정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식구들이 나로 인해서 웃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내가 제일 크게 웃었다. 민망함을 날려버리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오리고기는 매우 부드럽고 쫀득하고 '뚤루즈' 소시지의 짭짤한 맛이 콩에 베어서 간이 딱 맞았다. 시어머니께서는 너무 오래 익히는 바람에 콩이 으깨졌다며 살짝 아쉬워하셨다.

다들 메인 식사를 끝내고 누군가가 후식 케이크를 가져왔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 카술레를 먹고 있었다. 혼자만 많이 먹은 건 아닌데 너무 떠드느라 속도가 뒤처진 것 같다.

시어머니께서 케이크에 칼을 갖다 대시자, 시아버지께서는 황급히 시어머니를 멈추시며 나더러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다. 이미 빚의 속도로 찍었답니다.

상큼한 오렌지 크림이 들어간 초콜릿 케이크이었다.
과일맛난 케이크를 별로 안 좋아하는 자서방도 이건 너무 맛있다며 두 조각이나 먹었다.

조명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오렌지 초콜릿 케이크.


"그럼 우리 12월 마지막날 저녁때 또 볼까?"

맘 같아선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싶은데 시어머니께서는 시댁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게 더 좋겠다고 하셨다. (하긴 우리 집에서 식사하게 되면 시부모님께서 너무 많은 것들을 무겁게 들고 오신다. 와인, 샴페인, 아뻬리티브, 후식 케이크 등등...)

아참, 시아버지께서는 나에게만 은밀히 말씀하신 것이 있다.

"조만간 우리는 굴을 또 먹어야지?"

"네! 좋아요! 언제 먹어요?"

"네가 원하는 아무 때나!"

우리는 둘이서 좋다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굴을 안 좋아하는 시어머니, 남편, 시동생은 그저 우리를 시큰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맛을 모르다니... 안타까운지고...

"저는 아무 때나 콜입니다!!"

철제통은 오렌지잼이 든 노네트-

집으로 돌아올 때 시어머니께서는 카술레 남은 것을 한통 담아주셨고 시동생은 과자를 선물로 주었다. 스위스에서 사 온 페헤호호셰라고 했다. 시동생의 프랑스식 발음이 웃겨서 또 나는 대놓고 웃어버렸네. 프랑스어를 오래 하면 폐활량이 좋아질 것 같다. 페헤호호셰.... 페헤호호셰...

카술레도 얻어왔고 시댁에서 이미 얻어왔던 빵이나 과일들도 집에 쌓인 상태라 아무래도 한동안 집에서 요리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아버님이랑 굴을 먹을 생각에 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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