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용 Jun 23. 2023

날이면 날마다 오는 비빔밥이 아닙니다.

2022년 3월 18일


시어머니의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우리는 시부모님을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비빔밥이 가장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메뉴는 비빔밥으로 정했고, 후식으로는 자서방의 강력한 추천으로 사과케이크 당첨. 

비빔밥에 들어갈 재료들은 이미 어젯밤에 대부분 준비를 해두었다. 당근, 쥬키니, 가지, 시금치...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미리 양념에 재워두었던 소고기를 볶고, 버섯도 볶고 나서 오이도 돌려 깎기 해서 채를 썰었다.


밥을 짓고 사과케이크도 구웠다. 항상 사과를 4개씩 넣다가 5개를 넣었는데 더 맛있었다! 다른 재료는 하나도 안 늘리고 사과만 늘렸는데 말이다. 


내가 부엌에서 음식준비로 바쁠 때 자서방은 시어머니의 선물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바카라 크리스털 화병이다. 작년 생신 때도 선물을 제대로 못 해 드려서 이번에는 좋은 걸로 하자고 말했더니 크리스털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자서방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알고 보니 바카라가 이 지역 브랜드였다네?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었구나!


시부모님께서 현관에 도착하시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미 무스카델은 얼었다. 도망칠 준비 완료.

시부모님께서는 예쁜 꽃다발을 가지고 오셨다.

꽃이름을 까먹었다. 며칠 전 내가 드린 꽃다발과 비교가 안되게 너무 예쁘다.

우리는 어머님께 생신 선물을 드렸다. 그런데 어머님께서는 선물을 뜯어보시다 말고 다시 뚜껑을 꼭 닫으셨다.

"안돼... 이건 너무 비싸... 난 이걸 받을 수 없어..."

옆에 계신 시아버지께서는 궁금하셔서 상자 뚜껑을 열려고 하시는데 어머님께서 두 손으로 완강하게 꼭 누르고 계셔서 우리 부부는 웃음이 터졌다. 

"난 이걸 받을 수 없어. 환불하면 안 되니? 그냥 비빔밥으로도 나는 충분히 좋은데..."

"작년 생신 때 선물을 제대로 못 해 드려서 이건 2년 치예요. 그리고 아버님도 좀 보여주세요. 궁금해하시잖아요."

"아...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지 엄마."

그때 옆에 계시던 아버님께서 씩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대신 고맙다고 말해줄게, 고맙다 얘들아..."

"아빠는 아직 보지도 못하셨잖아요."

그제야 어머님께서도 웃으시며 화병을 꺼내 감상하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하긴 이거 어차피 다 니 거지 뭐. 나중에는."

사실 웃으면 안 되는 농담인데 어머님의 말투와 표정 때문에 저절로 다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뻬리티브로 화이트와인을 준비했는데 내일 여행 때문 에라도 술은 안 드시겠다고 하셔서 그냥 콜라를 마시며 대화를 하다가 메인식사로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정말 메뉴가 덩그러니 비빔밥밖에 없네.
그래도 참기름을 바르고 밥과 나물들을 얹은 후 돌솥을 스토브에 뜨겁게 달군 상태라 지글지글거리는 소리만큼은 제대로였다. 어머님께서는 지글거리는 돌솥의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몇몇 친구분들께 보내셨다. 볼륨을 높여서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강조하시면서 말이다. 

가운데에 나물을 갖다 놨더니 다들 재료 하나하나씩 음미하며 너무 맛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건 어떻게 만든 거니? 볶은 거니 삶은 거니? 특히 가지가 너무 맛있구나. 비빔밥 식당보다 훨씬 더 맛있어! 쎄봉! 쎄 트레트헤봉!

준비한 것에 비해서 칭찬을 너무 많이 들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저녁까지 여기서 먹고 가야겠구나."

"네! 가실 때도 좀 싸드릴게요."

"아니야, 우리 내일 바르셀로나 여행 가잖니. 그전에 냉장고에 있는 남은 음식들 다 처리해야 해."

"하지만 다음 비빔밥은 내년까지 기다리셔야 될 건데요?"

더 자주 못 해 드려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도 부족할 텐데 이런 뻔뻔함이라니! 하지만 내 말에 모두들 공감하며 박장대소를 했으므로 후회는 없다. (더 자주 해드릴게요.)

식사가 끝난 후 자서방은 커피주문도 받고 또 내가 구운 사과케이크도 직접 내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한스쿱씩 얹어왔다. 


시부모님께서는 내일 바르셀로나로 열흘간 여행을 떠나신다. 그리고 그동안 고양이들은 내가 돌 볼 예정이다.

"고양이들에게 내일 두 분 여행 가신다고 잘 말씀하셨지요?"

"얘기는 몇 번 했는데 집중을 잘 안 해서... 집에 가서 다시 한번 말해볼게."


집으로 돌아가신 후 어머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고양이들에게 내일 엄마아빠는 여행을 갈 거고, 요용이 열흘간 니들 보스가 될 거라고 알아듣게 잘 설명하셨다고 하셨다. 

역시 어머님은 내 스타일이시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시어머니께 배추적을 가르쳐드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