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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3. 2023

프랑스 시어머니께 배추적을 가르쳐드렸다.

2022년 2월 19일

시어머니와 배추적을 함께 굽기로 한 날이다. 
오후 두 시쯤 시댁으로 갔더니 시어머니께서 우선 차 한잔 마시고 시작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아침에 구워두신 사과케이크를 보여주시며 나더러 다 먹으라고 하셨다. 

"와 맛있겠다! 저 지금 하나 먹고, 갈 때 두 개만 가져갈게요."

"다 가져가도 돼. 난 뱃살을 위해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거든."

"그런데 왜 만드셨어요?"

"만들고 싶으니까. 호호"

아참 괜한 질문을 드렸네.

커피를 드시는 시아버지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얌전한 모웬. 세계 개냥이 콘테스트가 있다면 모웬이 챔피언이다. 


차 한잔과 사과케이크 하나를 끝낸 후 우리는 배추적을 굽기 시작했다.

반죽은 튀김가루와 밀가루를 반반씩 섞어서 사용했다.
내가 배추 세장을 깔고 반죽을 살짝 얹은 후 숨이 죽도록 기다리고 있는데 성격이 급하신 어머님께서 그 위에 배추를 몇 장 더 얹으려고 하셨다.

"아니에요. 세장이면 충분해요."

"아 그래? 여러 겹으로 하면 안 돼?"

"그러지 말고 팬 하나 더 올려서 직접 구워보시는 게 어떠세요?"

처음에는 싫다고 하시더니 막상 내가 한 장을 구워내는 걸 보시더니 혼자서 구워보시겠다고 도전하셨다.

어머님께서는 곧 동그랗고 예쁜 배추적을 구워내셨다. 역시 금방 배우시는구나.

"옆집 마이달링이 어제 망고를 두 개 주더라고. 너 갈 때 하나 가져가렴."

옆집 잘생긴 남자를 어머님께서는 마이달링이라고 부르신다. 


"아참, 옆집에도 이거 좀 갖다 줄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글루텐 때문에 밀가루를 잘 못 먹는다고 하더라고..."

안타깝네... 나도 얻어먹은 게 많아서 한국 음식이라고 맛 보여주면 좋았을 텐뎅. 

우리는 총 5장을 구웠고 양념장도 만들었다.

어머님께서 너무 작은 조각으로 자르시길래 나중에 구운 두장은 내가 큼직하게 잘랐고 한통은 내가 가져가려고 반찬통에 따로 담았다. 

굽고 남은 배추는 원래 나더러 가져가라고 하셨었는데 막상 만들어보니 재미있으셨던지 그냥 드시겠다고 하셨다.

"이 배추는 레시피를 몰라서 한 번도 사본적이 없었거든. 이제 알았으니까 앞으로 종종 사다가 이렇게 만들어먹어야겠다."

프랑스에서 양배추는 - (chou)인데 그냥 배추는 슈 시노아, chou chinois, 즉 중국 배추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흔한 배추가 이곳에서는 더 이국적인 식재료인 것이다. 이렇듯 배추의 현지단어만 들어도 내가 고국에서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집으로 가져온 배추적으로 나는 전찌개를 끓였다. 우리 친정에서는 명절 다음날 꼭 이 전찌개를 끓이는데 배추적이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냉동실에 있던 굴림만두 몇 개랑 냉동새우를 넣고 피시소스 약간과 간장 고춧가루 마늘을 더했다. 

전찌개까지 먹고 나니 좀 늦었지만 나름의 명절을 보낸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로운 타지에서도 내가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남편보다 오히려 시어머니 덕분이 아닐는지... 역시 우리 시어머니는 내 베프가 맞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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