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용 Jun 23. 2023

봄볕이 유난히 눈부신 오후였다.

2022년 3월 18일

시부모님을 집에 초대해서 점심식사로 돌솥비빔밥을 대접해 드렸던 바로 그날 오후.

후식까지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 있으면 낮잠을 잘 것만 같아서 시부모님께서 나가실 때 배웅해 드릴 겸 따라나섰다. 그런데 오후의 봄날씨가 너무나 좋았던 것이다! 재킷도 안 입고 나왔는데 어머님께서 동네 산책이나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아버님만 배웅해 드리고서 우리 둘은 세상 느긋하게 걸으며 평화로운 오후의 봄햇살을 만끽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길옆에 테라스 카페가 보였다.

"우리 저기 잠깐 앉아서 커피라도 마실까요?"

"저기? 저 집 커피 맛없어..."

잠시 생각하시던 시어머니께서는 근처에 아주 좋은 테라스가 있다며 거기로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어느 가정집 대문 앞이었는데 알고 보니 어머님의 친구집이라고 하셨다. 



"너 아까 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지? 저기 작은 공원 있네, 호호. 여기 있으면 아마 마실 것도 줄 거야."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예쁜 정원을 가리키시며 저게 공원이라고 하시더니 우리를 맞이해 주신 집주인 베르나르 아저씨를 보시며 당당히 마실 것을 달라고 하시는 우리 어머님. 

어머님의 절친이신 에디뜨 아주머니의 남편인 이분은 우리 시아버지의 가장 절친이신 수다쟁이 베르나르 아저씨와는 이름만 같으신 동명이인이시다.

그런데 이 두 분은 내 이름까지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주시며 친근하게 나를 반기셨고 내 프랑스어가 많이 늘었다며 칭찬까지 해주셨다. 내가 이분들을 뵌 적이 있었던가...? 어머님께서 친구분들께 내 얘기를 많이 하신 것 같다.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봄햇살이 가득 부서지는 정원이 그림처럼 예뻤다.



"우쥬 라잌 썸띵 투 드링?"

"오올...!"

베르나르 아저씨께서 나에게 영어로 한마디 하셨다가 시어머니와 에디뜨아주머니의 놀림을 받으셨다. 


베르나르 아저씨께서 급하게 방석을 갖다 주셨지만 두 분은 계단이 뜨끈해서 좋으시다며 방석을 거절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에디뜨아주머니와 볕 좋은 계단에 앉아서 수다 삼매경에 빠지셨고 아저씨께서는 정원구경을 나가는 나를 따라오시며 정원 구석구석을 소개해주셨다.


"자 이 로즈메리를 한 움큼 쥐었다가 손에 냄새를 맡아봐요! 향이 정말 좋지요?"

아저씨께서 하시는 대로 한 움큼을 쓸었다가 손에 향긋한 허브향을 감상하는 것으로 정원 투어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가꾸신 정원이 매우 뿌듯하신 듯 열정적으로 가이드해 주셨다.


히아신스는 알아요! 하지만... 다른 꽃 이름들을 알려주신 건 다 까먹었다. 



"이것들은 사과나무예요. 나중에 열매가 열리면 손주들이 놀러 왔다가 좋아하겠지요?"

"튤립도 많이 심었는데 아직 꽃은 안 폈어요."

우리 시댁 정원처럼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내가 뒤돌아보니 시어머니께서는 여전히 친구분과 볕 좋은 계단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우리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들과 해가 잘 드는 베란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시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베르나르 아저씨께서는 갑자기 찾아온 우리가 귀찮지도 않으신지 연신 웃으시며 에너지를 뿜으셨고 곧 부지런하게 혼자서 음료까지 차려오셨다. 내가 도와드린다고 했지만 착하다고 칭찬만 하시고는 혼자서 뚝딱 준비하셨다. 그 와중에 에디뜨 아주머니께서는 어머님과 대화하시느라 엉덩이를 한 번도 안 떼시며 "난 안 마실래."라고 쿨하게 한마디 하셨을 뿐이었다. 


"자아, 이건 사과주스고, 여기 탄산수에 달콤한 레몬 진액을 섞어 마시는 것도 괜찮아요. 어떤 걸로 줄까요? 아니지, 둘 다 마셔보도록 내가 조금씩 줘볼게요."

"네, 좋아요!"

아저씨 저랑 절친하실래요.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만들어 드린 돌솥비빔밥을 자랑을 하시며 돌솥이 지글지글거리는 동영상까지 볼륨을 높여서 두 분께 보여주셨다. 또 두 분은 내 학교 얘기나 프랑스 적응하는 이야기도 궁금해하셨는데 내가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들려드렸더니 (가령 우리 시어머니께서 욕을 가르쳐주신 거라든가) 매우 좋아하셨다. 베르나르 아저씨께서는 또한 열심히 내 프랑스어를 교정해주기도 하셨다.

봄볕이 너무 뜨거워서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을 때 유리잔에서 반사되어 강렬하게 모아지는 햇빛을 발견했다. 저 테이블보가 먼저 탈것인가 내 얼굴이 먼저 불탈 것인가...


이날 오후의 봄 햇살은 눈부셨다. 그리고 너무나 따뜻하고 정다웠다.

두 분의 배웅을 받으며 그 집을 나왔을 때 우리 둘의 입가에는 웃음이 여전히 걸려있었다.

"너무 좋은 친구들이지? 재미있고, 그렇지?"

"네! 너무 즐거웠어요. 정말 좋은 분들이세요."


번아웃으로 맘고생하던 직장생활이 엊그제 같은데 내 일상에 이런 평화가 찾아오다니...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날이면 날마다 오는 비빔밥이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